<전영수 한양대 국제대학원 교수>
코로나19, 재택근무 확산…주거 가치 선호도 바꿔
‘도심과 좀 멀어도 큰집, 단독주택 인기 갈수록 높아져
1인가구화 진행 빠른 일본도 ‘큰 주택 선호도 높아’
안정적인 도쿄 중심 집값…외곽은 지역별로 차별화
코로나19 사태의 후폭풍은 넓고 깊다. 완전한 종식은 커녕 새로운 변이로 인해 더 심각해지는 건 아닌지 걱정해야 할 정도다. 쉽게 끝나진 않을 것처럼 보이니 바이러스와 함께 사는 방법을 생각하자는 목소리가 점점 힘을 발휘한다.
코로나19 사태와 함께 1년을 보낸 현재, 바뀌지 않을 듯했던 견고한 상식이 하나둘 무릎을 꿇는다. 거리두기가 빚어낸 신풍경 중 몇몇은 달라진 ‘뉴노멀’로 흡수됐다. 재택근무, 모임자제, 가상교류 등이 대표적이다. 집을 둘러싼 인식 전환도 빠르게 일어났다. 바람직한 주거 가치에 대한 상식도 시나브로 흔들린다.
코로나19는 집의 재구성 실험을 부추긴다. 직주(職住) 관련 수요가 변한 탓이다. 근무환경이 달라지고 거주 선호가 변화하니 나타나는 트렌드다. 잊고 있던 집의 가치와 기능의 ‘위치찾기’가 본격화하는 것이다. 집은 무엇이며, 어떤 모습이어야할까? 값비싼 필수재일까 혹은 표상의 사치재일까? 위기일 때 본질을 찾자는 기제와 맞물린다.
이 와중에 집값은 폭등세다. 집값 급등으로 인한 부동산 시장의 주연은 안도하는 ‘샴페인족’과 저주하는 ‘살풀이족’으로 나뉜다. 집의 본질적 가치에 비해 집값은 정당한가? 온국민이 집값에 흥분하고, 정치인마다 집값에 대해 한 마디씩 거들어 ‘부동산 정치’란 표현이 나올 정도지만, 뜨거운 ‘갑론을박’만큼 정답은 나오지 않는다.
어쨌든 중요한 건 만고불변의 철칙은 없다는 점이다. 시장심리란 게 순식간이어서 집의 본질을 찾으려는 기운은 의외로 빨리 안착할 수 있다. 수급·구매를 가르는 인구변화와 저성장 흐름을 거스를 수 없는 배경이다. 그간 고집스럽게 지켜졌던 절대적인 게임의 법칙이 약화될 수밖에 없는 상황이란 이야기다.
먼저 선호하는 공간이 변화한다. 인구변화발 ‘1인화’(1인·2인가구 증가추세)와 재택근무 확산 추세는 변화의 물꼬를 텄다. 집에서 체류 시간이 늘어나면서 선호공간이 달라지는 현상이다.
원가가 비쌀수록 가격이 높은 건 당연하다. 아파트도 클수록 비싸야 맞다. 다만 선호는 가격을 왜곡한다. 한때 같은 단지에서도 중형이 대형보다 비싼 현상이 나타난 적 있다. 수요가 적고 유지비가 높아서다. 1인당 최대 10평(33㎡)이 풍수 기운상 적당해 4인 가족도 30평대(99~129㎡만)대면 충분하다고 한 때가 있었다. 지금은 다르다. 크기보다 입지가 결정적이나, 크기도 클수록 좋다는 인식이 생겼다. 코로나19로 재택시간이 길어졌고, 1인화가 진행된다고 해도 1~2인 가구 조차 특화된 개별 공간을 원하기 때문이다.
우리보다 1인화가 빠른 일본을 보면 혼자 사니 작은 게 좋다는 인식은 별로 없다. 구매력이 관건일 뿐 지향은 넉넉한 집이다. 실제 코로나19 전후의 거주·공간 선호키워드를 보면 위안을 줄 집으로 바다·마당을 함께 검색한 경우가 3.29배 늘었다고 한다. 중정(1.36배), 테라스·발코니(1.45배)도 자주 검색됐다(야후재팬).
역세권은 어떨까. ‘교통편리=가격상승’ 공식은 ‘전가의 보도’처럼 받아들여진다. 특히 축적자산이 적고 만혼·비혼의 1인화를 이끄는 ‘MZ(밀레니얼·Z)세대’라면 도심한복판 역세권의 소형 크기 주택을 선호할 수밖에 없다. 값비싼 아파트가 아니더라도 통근 피로를 경감시키고 편의시설을 이용하기 좋은 주택이라면 역세권에 상대적으로 공급이 많은 오피스텔도 인기다.
다만 역세권도 나홀로 고공행진을 펼칠 수 없다는 점을 기억해야 한다. 코로나19 등으로 재택근무 등 일하는 방식이 자유로워지고, 도심 외곽시설의 기반시설이 좋아지면서 역세권이 보유한 선호가치는 희석될 수 있다. 우리나라도 대기업 사무직의 경우 3분의 1씩 나눠서 재택근무를 하는 곳이 늘어나는 등 자리를 잡아가고 있고, 집과 가까운 거점 사무실 출퇴근도 늘어나는 추세다. 굳이 비싼 돈을 써가며 도심·역세권을 고집할 이유가 줄어들고 있다는 이야기다.
일본도 상황이 비슷하다. 1인화로 인한 가족구성 변화와 코로나19에 따른 자가 체류시간 증가는 선호하는 집에 대한 생각을 더 빠르게 변화시키고 있다.
일본인이 가장 선호하는 주거 입지는 도심·역세권 위주다. 지금도 이런 생각엔 변함없으나, 매일 출근하지 않아도 되는 상황이 생기면서 상황은 미묘하게 변하고 있다.
한자로 짧게 정리하면 ‘安(안:값은 싸고)·近(근:직장과 가깝고)·短(단:작은 공간)’에서 ‘安(안:값은 싸고)·遠(원:직장과 멀어도)·廣(광:넓은 공간)’으로의 변화다.
일본 리크루트주택컴퍼니에서 2020년 5월 설문조사한 결과를 보면 이런 현상이 뚜렷하다. 수도권에서 주택을 살 때 중시하는 항목에 대한 질문에 ‘넓이’가 52%, ‘역세권’이 30%라고 답했다. 같은 질문에 1년 전에는 넓이가 42%, 역세권이 40%로 답해 꽤 달랐다. 크기 선호는 10%포인트 많아졌고, 역세권 선호는 10%포인트 줄어든 셈이다. ‘통근시간이 대중교통으로 30분을 넘겨도 좋다’는 응답도 34%에서 44%로 늘었다. 재택근무로 교통보다 집안 환경이 더 중요해진 것이다.
같은 맥락에서 아파트(맨션) 등 ‘집합주택’에서 ‘단독주택’으로 선호가 바뀌는 현상도 나타난다. 집의 크기가 넓은 쪽을 좋아하기 시작했다는 얘기다. 위의 설문조사에서 단독선호는 1년만에 56%에서 63%로 늘었다. 반대로 아파트는 32%에서 22%로 줄었다. 단독주택 선호는 역시 확대된 재택근무와 집안에서의 활동증가 탓이 크다.
그럼에도 현실은 좁고 답답하다. 조사를 보면 재택 중 근무 공간 1순위는 거실(55.3%)이 압도적이다. 의외로 서재(23.2%)보다 2배 이상 많다. ‘토끼집’이란 별명이 있을 정도로 평균적인 일본 집이 작기 때문이다. 이에 따라 재택근무지로 자동차(1%), 욕실(1%), 화장실(0.8%)까지 거론된다(미사와홈종합연구소). 당연히 거실은 일하기 어렵다. 가족이 오가는 등 방해요소가 많기 때문이다. 반면 근무공간의 추가확보는 단독주택일 때 쉽다.
가령 일본의 신축아파트 전용면적은 평균 68㎡인데 비해 단독주택은 100㎡에 달한다. 여러모로 일에 집중할 공간을 확보할 여지가 충분하다. 단독주택은 리모델링을 하기에도 유리하다.
결과적으로 중장기적으로 공고했던 도심 선호도 변할 수 있다.
서울은 인구가 주는데도 집값은 뛰는 아이러니한 공간이다. 값비싼 서울살이의 살인적인 거주조건이 1000만 인구마저 깼지만, 서울 선호는 건재할 뿐 아니라 더 강화되는 추세다. 세대분화의 실수요와 증여 욕구의 가수요가 맞물린 결과다. 서울이 갖는 특유의 희소성으로 전국에서 돈 좀 있다면 누구든 서울에 집을 가지고 싶어 한다.
앞으로는 어떨까. 내릴 변수만큼 오를 여지를 주는 항목도 많아 쉽게 예단하기 어렵다. 무엇보다 일자리의 서울 독점이 관건이다. 직업으로 묶였으니 주거로 떠나기란 힘들다. 견고한 ‘직주’ 연결고리다. 도쿄를 봐도 서울이 조정될 것이라고 예단하긴 섣부르다. 복합불황을 거친 20년 동안에도 도쿄 중심 집값은 내려가지 않았다. 도쿄 교외도 인구가 몰리는 지역이나 역세권은 잘 버텼다. 반면 몇몇 신도시는 말 그대로 버블이 터졌다. 수도권도 차별화가 진행된 것이다. 교외도 교외 나름이다.
그럼에도 ‘탈경(脫京)’은 대세다. 서울 근교는 그 타협공간이다. ‘안근단’에서 ‘안원광’으로 트렌드 변화를 실험할 최적지다.
일본도 도심보다 교외로 눈을 돌리는 수요가 많다. 2020년 부동산 시장의 주도 물건은 신축·근교였다. 수도권 신축맨션 판매는 3358가구로 전년동월대비 67.3% 늘었다(2020년 10월). 호당 가격은 6130만엔(약 6억4300만원)으로 1년만에 138만엔 뛰었다. 비싸졌지만, 계약율은 70.4%로 호황선(70%)을 넘긴다. 교외물건도 호조세다. 수도권 사이타마의 판매건수는 전년보다 3.1배 늘었다(부동산경제연구소). 중고수요인 재고물건은 11개월 연속 줄었고, 판매는 전년동월대비 31.2% 늘었다. 저렴한 중고주택을 리폼·리모델링하려는 수요 때문이다.
이런 현상은 코로나19가 촉발시킨 새로운 변화다. 요컨대 인구변화가 묵직한 ‘어퍼컷’이라면 팬데믹은 날선 ‘잽’으로 집의 재구성을 예고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