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헤럴드경제=최준선 기자] 배달의민족(이하 배민)이 기존에 60시간이었던 배민라이더스의 근무 시간 제한을 완전히 완화하는 방침을 검토하고 있다. 노동자 과로사를 방지하기 위한 차원에서 지난해 초부터 시작한 정책이지만, 오히려 시간에 제한을 둔 것이 과속을 유도해 과로사 위험을 높인다는 지적이 나오면서다.
23일 관련 업계에 따르면, 배민을 운영하는 우아한형제들은 주간 60시간으로 제한된 일부 직고용 배민라이더스(지난해 3월 4일 이후 계약한 라이더)의 근무 시간을 무제한으로 완화해 달라는 노조 측 요구를 검토하고 있다. 최종 합의는 이뤄지지 않았지만, 일반인 아르바이트 개념인 ‘배민커넥트’의 근무 시간 제한도 기존 20시간에서 40시간으로 확대돼야 노조 측 입장을 수용할 수 있다고 내부 입장을 정리한 것으로 알려졌다.
우아한형제들이 근무 시간을 제한하기 시작한 것은 지난해 3월부터다. 장시간 배달이 사고 위험을 증가시킬 수 있다는 판단이 반영됐다. 60시간은 택배 노동자 과로사 대책을 위한 사회적합의기구가 권고한 주당 제한 근로시간이기도 하다. 이와 동시에 배민커넥트의 경우 전업보다는 부업의 형태를 지향한다는 애초의 취지에 맞춰 20시간으로 제한을 뒀다.
이후 배민라이더스 소속 라이더들은 근무 시간 제한을 완화해달라고 꾸준히 회사에 요구해 왔다. 일하는 시간 및 처리한 주문 건수가 수입으로 직결되기 때문이다. 결국 지난해 10월 회사와 노조(민주노총 서비스연맹 서비스일반노동조합)간 단체협약에도 배민라이더스에게 근무 시간 제한을 두지 않겠다는 내용이 반영됐다. 다만 최근 택배 노동자 과로사가 심각한 사회적 문제로 떠오르면서 회사는 근무 시간 제한을 고수하고 있는 상황이다.
아울러 노조 측은 근무시간을 제한한 것이 오히려 라이더들의 사망 위험을 높인다고 지적한다. 올해 1월부터 시작한 ‘번쩍 배달’ 서비스가 기폭제가 됐다. 기존에는 라이더가 방향이 비슷한 주문 2~3건을 묶어 한 번에 처리하는 복수 배달이 가능했지만, 번쩍배달에선 단건 배달만 가능하다. 쿠팡이츠 등이 이같은 서비스로 시장 점유율을 높이는 상황에 대응해 내놓은 서비스다.
결국 같은 시간 내에 처리할 수 있는 주문 건수가 줄어들면서 라이더의 수입도 함께 줄었고, 이를 상쇄하기 위해 과속 운행 등 스스로 위험을 감수하는 라이더들이 많아지고 있다는 게 노조 측 진단이다. 60시간 제한을 없애면 라이더들이 보다 여유를 갖고 운행할 수 있어 사고 위험이 떨어질 것으로 내다보고 있다.
하지만 회사는 배민커넥트와 배민라이더스 사이의 ‘제로섬 게임’을 우려한다. 즉 배민라이더스의 근무 시간이 늘어날 경우, 상대적으로 배정되는 호출 건이 줄어들 것으로 내다본 배민커넥트 가입자들이 쿠팡이츠 등 경쟁사로 떠날 수 있다는 관측이다. 그렇지 않아도 배달 인력 부족 문제를 겪고 있는 상황에서, 배민라이더스의 근무 시간 상향 조정이 서비스 질을 떨어트리는 결과를 초래할 수 있다고 판단하고 있다.
결국 회사는 ‘배민라이더스의 근무 시간을 높이려면 배민커넥트의 근무시간도 함께 높여야 한다’는 방향의 타협안을 노조 측에 전달한 것으로 알려졌다. 다만 노조 측은, 근로 시간을 늘리기 보다는 픽업거리 할증을 높이는 등 기존 가입자의 참여율을 끌어올리는 것이 근본적인 해결책이라며 팽팽히 맞서고 있다. 현재 배민커넥트에 등록된 인원은 10만명에 육박하지만, 이중 5분의1 수준만 실제 배달 업무를 보고 있다.
한 이륜차 배달업계 관계자는 “할당량이 정해져 있는 택배, 물류 업계와 출퇴근이 자유롭고 업무량을 스스로 조절할 수 있는 이륜차 배달 업계의 과로사 해결책은 다른 접근법이 필요해 보인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