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구더기 무서워서 장 못담그냐’는 말이 있잖아요! 집값을 자극하더라도 공급물량이 충분하면 장기적으로는 소비자들은 기다립니다.” 오세훈 서울시장이 보궐선서 활동 기간 중 했던 말이다. “민간 공급을 활성화 시키려면 용적률이나 층고제한 등의 규제를 완화해 스스로 움직일 수 있게 해야 하는데, 초기엔 기대감이 생겨 집값이 들썩일 수 있다”는 오 시장의 생각을 전한 것이다.
시장은 정말 예상대로 흘러가는 것처럼 보인다. 선거기간 여론조사에서 오 시장 당선이 유력하다고 나오기 시작한 이후, 강남권 재건축 단지부터 양천구 목동, 노원구 상계동 등지의 재건축 아파트값은 다시 들썩였다. 이달 들어 호가는 더 뛰고, 신고가 계약 건도 속출하고 있다. 여당 지지자들은 벌써부터 오 시장이 집값을 다시 자극하고 있다고 비판한다.
사실 시장 전문가 대부분은 오 시장 당선 전부터 올해 서울 재건축 시장은 크게 오를 수밖에 없을 것으로 전망했다. 역대급으로 돈이 풀리는 데 넣어둘 곳이 마땅치 않아서다.
당장 지표 몇 개만 보자. 한국은행에 따르면 올 1월 광의통화(M2)는 3233조원으로 전년 동월(2922조원) 대비 10.1%(311조원)나 늘었다. 10년 전인 2011년 1월(1669조원)과 비교하면 거의 두 배가 됐고, 문재인 정부 출범 직전인 2017년 1월(2402조원) 보다는 35%(831조원) 급증했다. M2는 현금, 은행예금 등 바로 현금화가 가능한 통화량을 보여주는 지표다.
올해 토지보상금은 수도권에서만 9조원 풀린다. 향후 3년간 3기 신도시 토지보상금은 30조원 이상이 될 것으로 보인다. 토지보상금은 보통 부동산으로 다시 유입되는 경향이 강하다.
물론 이렇게 넘치는 유동성의 대부분은 상위 20%에 해당하는 이야기일 수 있다. 주목할 건 현금자산이 많은 계층이 선호하는 첫 번째 자산 보존 수단은 부동산이라는 점이다. 금융권에서 나오는 거의 모든 ‘부자 리포트’에서 조사한 결과다. 그런데 이런 부자들이 살 부동산은 한정돼 있다.
가장 인기 높은 서울 주택 공급은 사실상 정체 상태다. 서울 주택수는 2016년 283만857채에서 2019년 295만3964채로 4% 늘어나는데 그쳤다. 주택수를 가구수로 나눈 주택보급률은 2016년 96.3에서 2019년 96%로 오히려 줄었다. 임대로 사는 가구가 그만큼 늘어났다는 의미다.
그런데 올해부터 향후 2~3년간 서울 주택공급량은 감소한다. 당장 올해만 작년 대비 반토막 수준이다. 올해 서울에서 재건축, 재개발을 통한 입주 물량은 1만7402가구로 작년(3만8451가구)의 절반에도 미치지 못한다. 서울 올해 전체 아파트 입주물량은 3만471가구로 작년(4만9245가구)보다 대폭 줄어든다.(부동산114 조사)
통화량이 많아지면 화폐가치는 하락하고, 실물자산의 가치는 상승한다. 시중에 물건은 그대로인데 돈만 많아지면 물건 값이 오르는 건 자연스러운 경제 원리다. 지금 서울 주택시장은 공급 부족과 과도한 유동성으로 오를 가능성이 훨씬 높은 상황이란 이야기다. 인기 높은 지역 아파트는 희소성이 높아져 시세가 더 뛸 수밖에 없는 구조다.
이런 상황에서 오세훈 시장의 서울 시정이 시작됐다. 지자체장이 할 수 있는 권한을 모두 동원해 서울시 내 민간 주택 공급을 늘리겠다고 한다. 이걸 단순히 부자를 위한 대책이라고 폄훼할 수 있을까. 오 시장 말처럼 단기간 집값이 들썩이더라도 중장기적으로 공급이 늘어나 시장 안정에 훨씬 더 도움이 된다는 전문가들의 의견도 있다.
수급 문제를 이해하기 위해 좀 과하게 상상해 보자. 강남 지역 용적률을 두 배로 확대하고, SF영화처럼 층고를 50층 이상 대폭 높여 지금보다 두 세배 주택을 짓는다면 강남 집값이 지금과 같을까? 모든 시장에서 ‘공급에 장사는 없다’는 건 역사적 사실이다.
사실 재건축 규제가 조금 풀린다고 시장이 크게 달라질 것 같지도 않다. 이미 대출규제로 누구나 무리하게 투자하겠다고 덤빌 수 있는 상황이 아니다. 재건축초과이익환수제 등 이미 집주인의 과도한 시세차익을 환수하는 장치도 만들어 놨다.
정말 언제까지 ‘구더기 무서워서 장 못담그는’ 상황을 이어갈 것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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