후분양 권장하던 정부, 공급 급하자 돌변
선분양보다 빠른 사전청약 부활시켜
최근 민간주택까지 사전청약 확대
건설사들 “믿지 못한다”는 분위기
향후 부실 책임은 누가 질지 의문
[헤럴드경제=민상식 기자] 문재인 정부는 정권 초기 ‘선(先)분양’이 시세차익에 대한 투기수요를 부추긴다며 ‘후(後)분양’을 권장했다.
2017년 10월 국토교통부 국정감사에서 김현미 전 장관은 “공공주택의 경우에는 단계적으로 후분양을 할 수 있도록 로드맵을 만들겠다”고 했다. 이후 2018년 ‘후분양 가이드라인’을 내놓으며, 후분양을 유도했다. 후분양을 하면 부실공사 등으로 소비자가 피해를 볼 위험이 낮아진다고 강조했다.
그런데 정부는 지난해 후분양과 정반대 방식인 ‘사전 청약’을 9년만에 부활시켰다. 지난해 5·6대책을 통해 3기 신도시 등 수도권 공공택지에 본청약보다 1~2년 일찍 당첨자를 선정하는 사전청약제를 도입한다고 발표했다. 낡은 아파트를 ‘패닉 바잉(공황구매)’하지 말고 새로 짓는 아파트를 주변 시세보다 저렴한 가격으로 선구매하라는 취지다.
연일 치솟는 집값에 공급이 다급해진 정부는 최근 사전청약 물량을 크게 늘리겠다고 밝혔다. 정부는 2024년까지 3기 신도시 등에서 조성되는 민간주택 등 10만1000가구를 사전청약 방식으로 공급하기로 했다.
국토부 관계자는 “예정된 공급을 당겨 조기화하는 게 효과적인 시장안정 수단이라고 판단한다”고 설명했다.
그러나 사전청약은 보여주기식 ‘조삼모사’ 처방에 불과하다고 지적하는 전문가들이 많다. 실제 공급을 늘리는 대책이 아닌 예정된 물량을 당기는 것이기 때문이다.
특히 민간주택 사전청약은 민간이 자발적으로 참여하지 않으면 성사되기 어려운 공급방식이다. 민간 건설사에 사전청약 참여를 강제할 수도 없다.
정부는 앞으로 매각하는 토지는 사전청약하는 건설사에만 팔고, 이미 매각한 택지는 건설사가 적극 사전청약에 참여하도록 공공택지 우선권을 부여하기로 했다. 민간건설사가 사전청약을 더 많이 하도록 유도하기위해서다.
건설업계에서는 정부의 오락가락 정책에 “믿지 못하겠다”는 분위기다. 한 건설사 관계자는 “얼마 전까지 후분양을 강조하더니 이젠 사전청약을 요구하는데 앞으로 또 안바뀐다고 누가 장담하겠나”고 했다.
정권이 바뀐 이후 건설사 부실로 공급이 차질을 빚으면 그 책임은 누가 질 지도 의문이다. 실제로 역대 정부의 주택 공급은 정권이 바뀔 때마다 이전 정권의 주택 계획을 폐기하고 새로 짰다.
이명박 정부는 수도권 그린벨트 해제 지역에 2018년까지 ‘반값 아파트’를 내세운 보금자리주택 150만가구를 공급하기로 했지만, 박근혜 정부가 들어서며 신규 지구지정을 중단했고 공급 물량도 대폭 축소했다.
입주가 늦어져 ‘희망고문’이 될 수 있다는 우려도 여전하다. 보금자리주택은 사전청약 이후 토지보상 절차가 늦어지면서 당첨 후 10년이 지나서야 입주한 곳도 있었다.
본 청약 때 실제 분양가가 추정분양가보다 상당히 높아질 가능성도 있다. 주변 시세의 60~80%에 공급한다고 해도 주변 시세가 워낙 많이 올라 ‘고분양가’ 논란도 제기된다.
정부는 정책 기조를 바꿀 때 그 타당성을 국민에게 설득해야 한다. 문재인 정부는 주택공급 부족을 뒤늦게 인정하고 공급 대책을 마련했지만, 국민이 공감할 만한 설명은 하지 않았다. 정부가 신뢰를 잃으면 시장은 불확실성에 빠진다. “과거의 국가경영책임은 결국 국민의 부담으로 돌아온다”는 한 전문가의 조언을 새겨들어야 할 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