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강도 금융권 대출규제에 주택시장 선택지 줄어
정부, 전세대출은 풀어주겠다…‘살던 집 계속 살자’ 차선 선택 ↑
임대차시장 매물 감소, 전세대출은 DSR 규제도 제외
업계 “전셋값 지속 상승할 수밖에 없는 구조”
[헤럴드경제=이민경 기자] “내년 초에 제가 들어가 살려고 전세 낀 집을 미리 사뒀습니다. 전세보증금액만큼 전세퇴거대출(주택담보대출의 일종)을 받아 세입자에게 주려고 했어요. 그런데 DSR(총부채원리금상환비율)가 강화된다고 해서 자금 사정이 불안정해졌습니다. 아무래도 저희 집 세입자 계약 연장해주고 저도 지금 사는 전셋집 계약 연장을 시도해봐야 할 것 같습니다. 정권 바뀔 때까지는 이게 최선인 것 같아요.”(경기도 거주 1주택자 A씨)
“방 2개짜리 집에서 전세 살고 있는데 아이가 곧 초등학교 들어가서 큰 집으로 옮기려고 했습니다. 그런데 요즘 전세대출이 가능한지를 놓고 (정부 정책이) 오락가락하면서 불안해서 이사 스트레스가 큽니다. 게다가 이사비며 복비(중개수수료) 생각하니 옮기는 게 손해라는 생각도 들고요. 계약갱신권이 남아 있으니 전세보증금 조금만 올려주면서 2년 더 사는 쪽으로 생각이 기울고 있습니다.”(서울 거주 무주택자 B씨)
최근 금융권 대출 규제 강화로 거주 이전의 자유가 침해당했다고 호소하는 사례가 늘어나고 있다. 자금 마련에 불확실성이 커지다 보니 쉽사리 결정을 내리지 못하겠다는 것이다.
금융 당국이 가계부채 관리대책에서 ‘전세대출 규제’는 빼기로 했지만 수요자는 전반적인 대출 규제의 강화와 관련 정책의 변동성을 우려하고 있다. 이에 따라 기존에 살던 전셋집에서 최대한 버티는 방안을 택하는 모양새다.
22일 국회에 따르면 고승범 금융위원장은 전날 국회 정무위원회 종합국정감사에 참석해 “전세대출에 직접 DSR를 규제하는 방안은 이번 대책에 포함시키지 않기로 했다”고 밝혔다.
전세대출을 새로 받는 대출자들은 기존 신용대출금액과 상관없이 여태처럼 전셋값의 80%까지 대출을 받을 수 있게 됐다. 다만 임대차계약 갱신에 따른 전세대출은 대출 한도가 ‘임차보증금(전셋값) 증액 범위 내’로 제한된다. 전세계약을 갱신할 때 전셋값이 2억원 올랐다면 2억원보다 적게 대출받을 수 있다는 뜻이다.
문제는 기존 전셋집에 머무는 차선의 방법을 택하는 사람들이 늘어날수록 주택임대차시장 매물 공급은 줄어든다는 것이다.
전세매물 감소는 지난해 하반기 임대차2법(계약갱신청구권제·전월세상한제) 도입 이후 나타난 것처럼 전셋값 상승으로 이어진다.
공급은 줄어드는데 전세대출은 그대로 풀어두면 가격은 상승할 수밖에 없는 논리다. 시장참여자들 역시 이를 알고 움직인다.
서울 송파구의 한 공인중개사는 “전세보증금대출은 규제에 포함이 안 된다고 하니 전셋값은 최소 현재 시세 유지 또는 상승이라고 본다”고 말했다.
그는 또 “전셋값이 밑에서 받쳐주는 한, 매맷값이 그보다 떨어질 확률은 거의 없다”면서 “집 매매거래는 대출 규제로 인해 얼어붙겠지만 매맷값이 극적으로 하락하는 일 또한 없을 것”이라고 전망했다.
한국부동산원 10월 셋째 주(18일 기준) 주간 아파트 가격 동향에 따르면 서울 아파트 전세 가격은 0.13% 오르며, 지난주와 상승폭이 같았다. 전국 기준 아파트 전세 가격도 0.18% 올라 지난주보다 상승폭이 단 0.01%포인트 줄어드는 데 그쳤다.
부동산업계의 한 관계자는 “주거용 부동산은 테트리스와 같아 한 사람이 어떤 선택을 하면 다른 사람도 선행된 움직임에 영향을 받아 다음 선택을 할 수밖에 없다”면서 “가령 세입자 한 사람이 안 나가겠다고 하면 그 집에 들어가려던 집주인이 발이 묶이고, 그 집주인이 세를 살던 집의 소유주도 연이어 계획이 틀어지는 것”이라고 설명했다.
아울러 “전월세 매물을 안정적으로 공급하는 다주택자를 규제하는 중이라, 앞으로도 주택임대차시장은 불안정할 것으로 보인다”고 말했다.
한편 금융위원회는 이달 26일 DSR 규제 강화 등을 골자로 하는 가계부채 추가 대책을 발표할 예정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