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H공사 아파트와 민간 아파트 수평 비교는 무리
부족한 공급으로 인한 아파트 가격 상승, 건설사에 전가 우려
[헤럴드경제=최정호 기자] 서울주택도시공사(SH공사)가 지난 2019년 분양한 강동구 고덕강일 4단지의 원가를 공개하자 건설업계의 속앓이가 깊어지고 있다. 최근 2~3년간 이어진 원자재가 상승, 서울과 수도권 등에 적용된 분양가상한제 등으로 이윤폭이 제한된 상황에서 건설사들이 폭리를 취한다는 오명을 쓸까 전전긍긍하는 모습이다.
지난 15일 공개된 고덕강일 4단지의 건축비는 ㎡당 271만7119원이다. 이는 비슷한 시기 인근에서 분양한 민간 아파트의 분양가보다 ㎡당 약 250만원 가량 싸다. 힐스테이트 리슈빌 강일의 택지비와 건축비 포함 ㎡당 분양가는 약 670만원, 고덕강일 제일풍경채는 약 730만원에 달했다.
정부 정책 실패와 공급 부족으로 촉발된 집값 상승에 그렇잖아도 심기가 불편한 소비자들을 충분히 공분하게 할만한 가격차다. SH공사가 스스로 세부 분양원가를 공개한 것도 이 같은 자극을 통해 민간의 분양가를 조금이라도 낮출 수 있도록 압박하기 위함이다.
실제 김헌동 SH공사 사장은 이날 분양원가 공개와 함께 “풍선처럼 부풀려진 주택분양가의 거품 제거에 기여할 수 있길 바란다”며 “주택가격 안정화를 위해 모든 노력을 다하겠다”고 말했다. SH공사의 셀프 분양원가 공개 목적이 민간 건설사의 분양가 인하 압박에 있음을 분명히 한 셈이다.
이 같은 서울시와 SH공사의 압박에 민간 건설사들은 불편한 심기를 감추지 않았다. 한 대형 건설사 관계자는 “공식적으로 할 수 있는 말이나 밝힐 수 있는 회사 입장은 없다”고 말했다. 또 다른 건설사 관계자도 “분양가를 낮추려는 목적이 아닐까 싶다”며 “하지만 분양 시장에 큰 파장을 몰고올 조약돌이 될 지는 조금 더 봐야 할 것 같다”고 에둘러 불만을 표현했다.
최근 2~3년간 이어진 철근과 시멘트 등 각종 건축자재 가격 급등, 그리고 인건비 상승 등 건설 원가의 주요 요소 변동에 대한 설명이 생략된 점도 건설사들의 불만을 사고 있다.
시장의 수요와 공급에 따라 결정되는 가격을 원가를 이유로 압박하는 것에 대한 불만도 나왔다. 업계 한 관계자는 “제조 원가가 판매가의 10%선인 화장품이나, 영업이익률이 50%를 넘는 게임과 소프트웨어, 200달러 수준의 부품을 조립해 700달러 넘는 가격에 파는 아이폰 가격 모두 시장에서 수요와 공급에 따라 결정되는 것”이라며 “원가를 가지고 판매가인 분양가를 낮추라는 것은 기본적인 경제학 개론에도 어긋나는 일”이라고 항변했다.
이미 정부가 ‘분양가 상한제’로 사실상 가격을 통제하고 있는 상황도 이번 SH공사의 분양원가 공개의 한계로 지적된다. 이미 분양가 상한제를 2019년 재도입한 이후 주변 시장가에 못 미치는 가격을 바탕으로 묻지마 청약 열풍이 불며 ‘로또 아파트’라는 신조어가 탄생하고 있는 상황이다. 근본적인 공급 확대가 없는 강제적인 가격 인하는 건설사와 토지 소유자가 아닌 제3자의 이익만 늘릴 뿐이라는 비판이 나오는 이유다.
건설업계의 한 관계자는 “분상제로 가격을 통제했지만, 아파트값은 계속 올라왔다”며 “심지어 분양 시장에 과수요를 부르기도 하고 전월세 가격을 불안하게 만드는 요인으로도 작용했다”고 강조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