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사-기소권분리 ‘검찰 때려잡기’만 혈안
“직접 수사-수사 지휘 통제 분리” 주장
“태어나지 말았어야 할 공수처” 비판
일반수사·중요 대형범죄 인지수사 등
검찰·경찰·특별수사 3각구도 정립 필요
검찰수사권 완전 박탈, 일명 ‘검수완박’법이 사회 각계의 반대에도 국회를 통과한 지 한 달이 지났다. 지방선거에 밀려 관심사에서 멀어졌지만 여파는 이제부터다. 중대수사청 설치와 헌재에 제소된 권한쟁의심판 등 해결해야 할 법적 문제가 남아있고, 근본적으로는 올바른 형사사법제도와 검찰의 역할과 기능을 다시 찾는 작업을 해야 한다.
20년 간 검사로 재직, 유럽 검찰 제도를 직접 겪고 깊이 있게 연구해온 김종민 변호사는 ‘법치는 어떻게 붕괴하는가’(천년의상상)에서 국민이 정확히 인지하지 못하는 검찰 개혁의 실체와 ‘검수완박’의 문제점, 선진적인 사법 개혁의 방향은 무엇인지 경험과 연구를 토대로 명쾌하게 제시한다.
저자는 2017년 문재인 정권 출범 후 대검찰청 검찰개혁위원회 위원으로 1년간 논의에 참여했다고 밝혔다. 하지만 법무부는 자체적으로 구성한 법무부 검찰개혁위 의견만 선별적으로 정책에 반영했다며, 결론은 이미 정해 놓은 듯했고 일사천리였다고 돌아봤다.
지금의 검찰개혁은 잘못된 진단과 처방으로 오히려 경찰에 막강한 권력을 몰아주는 경찰국가라는 역사적 과오를 낳았다는 평가다.
그렇다면 올바른 검찰개혁의 방향은 어떠해야 할까?
저자는 우선 검찰 개혁의 당위성으로 두 가지를 든다. 하나는 군사정권, 권위주의 시대의 유산으로서의 검찰개혁의 필요성과 범죄의 첨단화 ·세계화 시대에 발맞춘 선진 시스템으로의 요구다.
이를 통해 범죄 대응 역량을 높여 국민이 안심하고 살 수 있고 국가가 건강하게 성장할 수 있도록 돕는 것이다.
그런데 현재 검찰개혁은 오로지 ‘검수완박’, 즉 ‘수사-기소권’ 분리가 전부인양 호도되고 있다.
저자가 보기에 수사-기소권 분리는 잘못된 문제 설정이다. 한국 형사사법제도는 프랑스, 독일 등의 대륙법을 따르고 있다. 이 체계에서 검찰이라는 제도는 애초 수사와 기소가 분리되지 않는다. 수사기관의 권력 남용을 방지하기 위해 모든 수사는 사법관인 판사와 검사가 수사의 적법성과 적정성을 감독하기 때문이다. 다만 검찰의 역할은 직접수사보다 경찰수사를 지휘 통제하는 데 있다. 반면 한국은 그동안 검찰이 직접수사에 치중해왔다.
문제는 ‘검수완박법’이 검찰의 직접 수사권을 박탈할 뿐만 아니라 경찰 수사에 대한 사법 통제 장치마저 모조리 폐지한 데 있다.
검찰개혁의 방향은 ‘수사-기소권 분리’가 아니라 ‘직접 수사와 수사 지휘 통제의 분리’가 돼야 한다는 게 저자의 주장이다. 그래야 적절한 사법 통제가 가능하고 검찰의 과도한 권력 집중 방지와 효과적인 수사가 가능하다.
전 정권의 검찰개혁이 잘못된 방향으로 간 데는 우리 형사사법제도 전반에 대한 이해 없이 검찰 때려잡기에만 혈안이 된 결과라는 지적이다. 검찰개혁은 다른 축인 경찰과 법원과 긴밀하게 맞물려 있어 고리를 함께 풀어가야 한다는 것이다.
저자는 수사권을 누가 갖나 보다 더 중요한 것은 반부패 수사 역량이라고 본다. 지금 세계는 범죄의 첨단화에 맞서 저비용·고효율의 형사 사법 시스템 구축에 힘을 쏟고 있다. 또한 반부패와의 전쟁도 한창이다. 프랑스는 1993년 반부패 개혁으로 법무부 산하에 부패방지처SCPC를 설립했으나 20년 만에 폐지하고 훨씬 강력한 독립기구인 반부패청을 만들었다.
그런데 한국은 오히려 거꾸로 가고 있다. 저자는 특히 “태어나지 말았어야 할 수사기관”이라며, 공수처(고위공직자범죄수사처)에 한 장을 할애, 신랄하게 비판한다.
공수처 스스로 범죄정보를 수집, 내사를 거쳐 수사한 인지 수사는 한 건도 없고 정치 편향성, 대선개입 논란 자초 등 반헌법적 수사기관임을 드러냈다는 지적이다. 특히 대통령이 임명하고 친여권 인사 5명이 참여하는 인사위원회를 통해 인사를 좌우 할 수 있어 대통령직속 사찰수사기구로 기능할 수 밖에 없는 구조적 문제가 있다. 검사와 군검사의 무소불위의 권한도 갖고 있어 안보상으로도 치명적이다.
공수처가 출범 1년 만에 존폐의 기로에 서게 된 건 처음부터 잘못된 설계 때문이라며 저자는 대안을 제시한다.
공수처를 폐지하고 검찰과 경찰의 직접 수사 기능을 통합, 법무부 산하에 특별수사기구를 만드는 것이다. 검찰은 직접수사 기능을 원칙적으로 폐지하면서 경찰과 특별수사기구에 대해 실효적 수사지휘와 수사 과정에서의 인권침해와 위법수사 여부를 감독하는 사법통제를 하는 ‘준사법기관’으로 개편하는 게 바람직하다는 것이다. 즉 경찰은 일반수사, 법무부 산하 특별수사기구는 중요 대형범죄의 인지수사를 담당케해 검찰, 경찰, 특별수사가 3각구도로 정립하는 방안이다.
저자는 책에서 대장동·라임·옵티머스 등 부동산개발특혜와 첨단금융경제범죄의 본질을 드러내고, 낙후된 수사현실도 보고한다. 검찰청을 공소 유지만 하는 ‘기소청’으로 전락시키고 ‘중수청’을 설립하게 되면 이런 대형금융경제범죄나 정치부패 사건수사는 불가능하다는 입장이다. 특히 범죄의 세계화로 국제공조수사가 불가피한 상황에서 공조가 불가능해진다. 외국 검찰은 경찰과 협력하지 않기 때문이다.
‘검수완박’은 나와 상관없는 그들만의 얘기일까? 저자는 “부패는 국가와 사회 모두를 파괴하고 산산조각내는 공동체의 적”이라며, “검찰의 본질과 역할을 제대로 이해하는 것이 검찰개혁의 첫걸음”이라고 강조한다.
책은 형사사법시스템을 오랫동안 연구하고 검찰 개혁을 주장해온 검사로서 우리 사회 가장 뜨거운 주제인 ‘검수완박’법의 실체와 향후 사법 개혁의 방향을 대중들이 이해하기 쉽게 전개했다.
이윤미 기자/meelee@heraldcorp.com
법치는 어떻게 붕괴하는가/김종민 지음/천년의상상