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금감면, 기업투자 늘리는 효과 없어
부채 줄이려는 노력 오히려 경제침체로
경기 후퇴때 신중론자 역시 좀비족
과도한 정치화·정략적 당파주의가 원인
긴축·적자 등 여전한 현안 비판적 검토
바야흐로 좀비시대다. 문학과 영화, 드라마 등에서 좀비가 활개치고 있지만 현실에서도 좀비의 힘은 막강하다. ‘현실 좀비’ 퇴치에 앞장 선 이가 ‘경제학자들의 경제학자’로 불리는 폴 크루그먼이라는 사실은 흥미롭다.
폴 크루그먼에게 좀비는 실패한 정책 혹은 끈질기게 정책을 방해하는 요소들이다. 그는 ‘폴 크루그먼, 좀비와 싸우다’(부키)에서 사망선고를 받은 좀비 정책, 좀비 아이디어들이 여전히 비척비척 걸어 다니며 사람들의 뇌를 파 먹고 있다고 개탄한다.
크루그먼에 따르면, 그런 좀비들 중 죽지 않고 되살아나 세를 과시하는 최강 좀비는 ‘부자 감세’다. 부자들의 낮은 세금이 성장의 비결이라는 오랜 생각이다.
이런 신념은 1981년 8월 로널드 레이건의 대대적인 감세를 시작으로, 부시 정권을 거쳐 트럼프에서 정점에 달했다. 트럼프는 2017년 기업과 부유층을 위한 감세안을 통과시키며 경제 기적을 약속했지만 물거품으로 끝났다.
오히려 과거 정권에서 부자증세는 경제성장에 도움이 됐다. 1993년 빌 클린턴의 세금인상에 보수주의자들은 재앙을 예견했지만 오히려 대규모 경제 확장을 이끌어냈고, 버락 오바마는 시효가 만료된 몇몇 세금을 올려 오바마케어에 필요한 비용을 댔지만 경제는 느리지만 꾸준히 성장했다. “경제정의와 경제성장은 양립할 수 없는 게 아니다”는 게 크루그먼의 주장이다.
감세법안의 핵심은 법인세 대폭 인하이다. 그런데 세금 감면은 기업들이 투자를 더 늘리는 데 그닥 보탬이 되지 않는다.
크루그먼은 이를 “사업상의 결정이 보수주의자들이 주장하는 것처럼 재정적 유인책에 훨씬 덜 민감하게 반응”하기 때문이라고 설명한다. 투자를 이끌어내는 건 시장 수요에 대한 인식이며, 기업 이익에서 상당 부분은 독점력에 대한 보상이지 투자에 대한 수익이 아니라는 것이다. 즉 독점 이윤에 대한 감세는 순전히 덤이며 투자나 고용에 아무런 명분도 주지 않는다.
크루그먼은 따라서 부유세는 얼마든지 올려도 좋지만 사업 의지를 꺽을 정도가 돼선 안된다고 본다. 노벨 경제학상 수상자인 피터 다이아몬드는 최적 최고 세율을 73퍼센트로 추산했다.
크루그먼은 부채와 적자에 대한 잘못된 믿음도 끈질긴 좀비 중 하나로 지목한다. 여기에 크루그먼의 금융위기발 불황경제학이 등장한다.
크루그먼은 부채를 줄이려는 노력이 오히려 경제침체와 불황으로 빠트릴 수 있음을 당시 유럽, 독일과 그리스, 스페인 사례를 통해 보여준다. 또한 불황경제학이 우세한 때에 예산 적자를 걱정하는 태도는 악덕이 된다며, 루스벨트가 1937년 수지 균형을 맞추려다 뉴딜 정책을 거의 망칠 뻔했다는 점을 환기시킨다.
정책 변화를 신중하게 해야 한다는 신중론자들 역시 좀비족이다. 경기 후퇴가 뚜렷하게 나타날 때 늑장 대처는 경제 참사를 키울 가능성이 높다는 게 크루그먼의 지적이다. 정책 대응은 시기가 중요하다는 얘기다. 또한 불황에는 정책 목표를 정할 때 지나치다 싶을 정도로 적극적으로 행동하는 게 소극적으로 행동하는 것보다 낫다.
크루그먼은 오바마 행정부의 경기부양책이 규모도 작고 기간도 짧아 금융위기발 잔해를 치우는 데 역부족이었다고 비판한다. 그 때문에 이후 예산적자에 대한 강박적 우려로 정부 지출이 줄고 반 경기부양책으로 선회함으로써 일자리 수백만 개를 날리는 그릇된 정책전환에 발판을 마련했다는 평가다.
책에 등장하는 좀비는 한 둘이 아니다. 과학이 밝혀낸 결과도 무시하는 ‘기후 변화 부정 좀비’, 진지하고 점잖은 척하지만 사실상 저소득층 지원을 줄이고 실업률을 방치하면서 경기 회복에는 아무 순기능을 하지 못하는 ‘긴축 좀비’, 불평등은 인정하지만 그것이 4차 산업혁명과 기술 발전 때문에 발생하는 불가피한 일이라고 주장하는 ‘기술격차 좀비’등 다양하다. 종비는 경제영역에만 한정, 출현하는 게 아니다 . 이념과 사회 전반에 널리 퍼져 있다.
그렇다면 실패한 정책, 무덤 속에 들어가야 할 좀비 아이디어들이 왜 계속 거리를 떠도는 걸까?
크루그먼은 과도한 정치화, 정략적 당파주의가 객관과 과학이 가리키는 증거를 무시하고 합리적 토론을 불가능하게 만들기 때문이라고 지적한다. “많은 사람이 대체로 사실을 왜곡할 권리가 있다고 철석같이 믿고 있다.” 그 배후에 부정직한 의도, 나쁜 신념이 똬리를 틀고 있다는 것이다.
‘폴 크루그먼 좀비와 싸우다’는 2000년부터 뉴욕타임스에 쓴 글로, 3분의 1은 2008년 금융 위기와 그 여파를 다양한 측면에서 파헤쳤다. 또한 지난 21세기 각국의 화두로 등장한 불평등과 무역전쟁, 극단적 보수주의, 기후변화, 보편적 의료보험과 사회보장제도, 긴축과 적자 등 여젼한 현안들을 비판적으로 검토하는데 특히 트럼프행정부의 정책 평가가 많다. 머리말에서는 코로나정책 실패 요인들을 짚었다.
이윤미 기자/meelee@heraldcorp.com
폴 크루그먼, 좀비와 싸우다/폴 크루그먼 지음, 김진원 옮김/부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