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달 손정의 회장과 만남 전망
이 부회장, 빅딜 첫 언급 주목
모바일칩 설계 90% 점유율
손 회장도 “이번방문 기대 크다”
시스템반도체 초격차에 필수
단독·공동인수 만만찮은 과제
삼성-SK하이닉스 동맹 가능성도
이재용 삼성전자 부회장이 글로벌 팹리스(설계전문) 기업인 ARM 인수와 관련해 다음달 ARM 최대 주주인 소프트뱅크의 손정의 회장과 만날 것이라고 밝히면서 삼성의 초대형 인수합병(M&A) 관측이 급부상하고 있다. 손 회장도 삼성과의 전략적 협력 논의 계획을 언급해 기업가치 최소 50조원에 달하는 ARM 인수가 실현될지 이목이 집중된다. 복권 후 ‘뉴삼성’ 경영에 속도를 올리고 있는 이 부회장이 내릴 결단과 함께 앞서 ‘공동인수’ 의사를 밝힌 SK하이닉스와의 연합 가능성에도 촉각이 모아진다.
지난 21일 오후 서울 김포비즈니스항공센터를 통해 영국에서 귀국한 이 부회장은 ARM 인수설에 대한 취재진의 질문에 “다음 달에 손정의 회장이 서울에 올 것이다. 아마 그때 무슨 제안을 할 것 같다”고 답했다.
그동안 삼성전자 고위 경영진이 대규모 M&A를 추진하고 있다는 입장을 밝힌 적은 있으나, 이 부회장이 공식적으로 대규모 딜과 관련해 공개 발언을 한 것은 이번이 처음이다. 업계에선 이례적이란 반응이다. 22일 외신에 따르면 손 회장 역시 “이번 방문에 대한 기대가 크다”며 “삼성과 ARM 간 전략적 협력에 관해 논의할 예정”이라고 화답하며 기대감을 높이고 있다.
ARM은 컴퓨터 중앙처리장치(CPU), 스마트폰 애플리케이션 프로세서(AP) 칩 설계의 기반이 되는 핵심 기술을 보유하고 있는 기업이다. 특히 모바일 칩 설계 분야에서 ARM의 점유율은 90%에 이르며, ‘설계회사들의 설계회사’라고 불릴 정도로 기술력을 인정받고 있다.
지난 2016년 손정의 소프트뱅크 회장이 소프트뱅크와 자회사 비전펀드를 통해 인수한 ARM은 글로벌 그래픽처리장치(GPU) 선도 기업인 엔비디아에 400억달러(약 56조원)에 단독 매각될 뻔 했으나 지난 2월 초 미국, 영국, 유럽연합(EU)의 규제 당국 저항으로 다시 매물로 나왔다.
손 회장은 ARM을 기업공개(IPO) 하겠다고 밝혔으나, 글로벌 기업들은 발빠르게 ARM에 대한 공동인수 추진 의사를 밝히고 있는 상태다. 2월 팻 겔싱어 인텔 최고경영자(CEO), 3월 박정호 SK하이닉스 부회장, 5월 크리스티아누 아몬 퀄컴 CEO 등이 모두 ARM 공동 인수 추진 의사를 밝혔다. 박 부회장은 “ARM을 어느 한 기업이 독점하게 되면 반도체 생태계에서 허용하지 않을 것이기에 공동인수를 추진 하는 것”이라고 말한 바 있다. 만일 삼성전자까지 인수를 공식화하면, 그야말로 ‘초호화 공동 인수 추진단’이 구성되는 것이다.
당장 삼성전자 입장에선 ‘뉴삼성’ 구축을 위해 ARM이 매력적인 매물일 수 있다는 분석이 제기된다. 2016년 하만 인수 이후 대규모 M&A가 없는 삼성이 글로벌 기업으로서 입지를 강화하기 위해서는 대규모 인수가 필요하단 지적이 업계에선 꾸준히 제기돼 왔다.
현재 125조원이 넘는 현금 자산을 바탕으로 삼성전자가 메타버스, 로봇, 인공지능(AI) 등 기업을 물색하는 것으로 알려졌지만, 회사에서 가장 큰 이익을 내는 반도체 사업의 경쟁력 강화가 최우선 순위로 꼽힌다는 분석이 제기된다. 특히 2030년까지 시스템반도체 1위를 차지하겠다는 ‘시스템반도체 비전 2030’을 이루기 위한 방안으로 ARM 인수는 고려할 수밖에 없다는 설명이다.
시스템 반도체 내 파운드리(반도체 칩 위탁생산) 사업이 TSMC를 꺾고 글로벌 1위를 차지하는 데는 대규모 투자와 상당한 시간이 필요한 것이란 진단이 나온다는 점도 문제다. 삼성보다 3배 높은 약 56%의 파운드리 점유율을 지닌 TSMC를 시장 경쟁에서 단기에 따라잡기보다, 시스템 반도체 설계 역량을 강화할 수 있는 ARM 인수가 더 빠른 실행 대안이 될 수 있다는 분석이다.
그러나 업계에선 삼성전자가 ARM 인수에 당장 속도를 내긴 쉽지 않을 것이라는 신중론이 우세하다. 단독인수든 공동인수든 삼성이 넘어야 할 과제가 만만치 않다.
삼성전자가 ARM을 단독 인수하는 경우, ARM 인수 후 사업부 재구축을 통해 시너지를 일으킬 방안을 추가로 모색할 수 있다. 그러나 지난 2월 글로벌 반도체 기업 엔비디아가 각국 규제당국의 개입으로 인수가 무산된 사례가 있기에 단독인수를 추진하는 것은 현실적으로 불가능할 것이란 관측이 나온다.
공동인수를 할 경우 ARM에 대한 일부 지분만 확보돼 다른 기업들과의 관계에 따라 실질적인 설계 등 역량을 끌어올리는 데 한계가 있을 수 있단 지적이다.
무엇보다 현재 설계(시스템LSI사업부)와 위탁생산(파운드리사업부)를 동시에 진행하는 삼성 입장에서 ARM을 수직계열화하는 것이 부담될 수 있다는 분석도 나온다. 설계 역량을 강화하면, 설계를 맡기는 파운드리 사업부의 고객사들의 기술 유출 우려가 더 커질 수 있기 때문이다.
김양팽 산업연구원 전문연구원은 “실질적으로 공동인수, 단독인수 삼성 입장에선 단기에 하기 쉽지 않을 수 있다”며 “ARM보다 기존에 기술력을 인정받는 메모리, 이미지센서, AP 등 분야에서 M&A를 고려해 경쟁력을 강화하는 것이 신중하게 고려될 가능성이 있다”고 말했다. 김지헌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