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프냐, 나도 아프다” 고통 받는 한국 때문에…일본 반도체가 더 휘청 [비즈36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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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헤럴드경제=김지헌 기자] 메모리 반도체 시장 악화에 따라 국내 기업들이 관련 설비 투자에 주춤한 모습을 보이면서 일본 장비 업체들의 수출이 휘청이기 시작했다. 특히 미국과 중국의 반도체 패권 경쟁 탓에 중국 본토의 한국 기업 설비 투자가 제한되면서, 칩 장비를 제공해왔던 일본 기업들의 추가 피해가 예상된다.

미국과의 협력을 등에 업고 반도체 리더십 재건을 꿈꾸고 있는 일본 입장에선 셈법이 복잡해질 수밖에 없을 것으로 관측된다. 한국 메모리 칩 기업들이 일본과 공급망 협력 관계를 바탕으로 중국 칩 제조 시장에서 어떻게 실리를 확보해나갈지 주목된다.

28일 일본 반도체 제조장비 협회(SEAJ)에 따르면 일본산 반도체 제조 장비의 1월의 판매고(2022년 11월~2023년 1월의 평균)는 전년동월보다 2.1%감소한 2997억4400만엔(약 2조9000억원)을 기록했다. 전년동기보다 실적이 낮아진 것은 2020년 12월 이후 처음으로, 약 2년여만이다.

일본 외신 등은 “반도체 시황 악화로 관련 업체들이 투자를 억제하고 있다”며 “미국의 대중 수출 규제 강화로 중국 본토의 첨단 반도체 투자가 위축됐기 때문”이라고 강조했다.

일본 장비 판매량 감소의 거시적인 원인은 반도체 공급 과잉이 지속되고 있다는 점이다. 시장조사업체 트렌드포스 자료에 따르면 올해 1분기 글로벌 D램 시장의 공급초과율(시장 수요 대비 공급량)은 112.5%로 지난 2011년 D램 가격 폭락 당시 공급초과율에 육박한 것으로 나타났다. 분기 기준으로는 10여년 만에 최고치다. 공급초과율 100%를 넘어선 것은 공급량이 수요를 넘어섰다는 뜻이다.

올해 1분기의 경우 PC, 서버, 모바일 등 D램의 주요 응용처에서 모두 110%를 넘나드는 공급초과율을 기록했다. 이로 인해 메모리 가격이 심각한 하락세를 보이면서 국내 메모리 업체들이 투자 축소에 나서고 있다. 대표적인 예로 SK하이닉스가 지난해 4분기 컨퍼런스콜을 통해 “전년보다 설비투자를 50% 줄여서 집행할 계획”이라고 재차 강조한 바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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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K하이닉스의 반도체 제조 라인 모습 [SK하이닉스 제공]

일본 반도체 장비 산업이 타격을 입은 핵심적인 요인으로 중국 수출 제한이 거론된다. 미국은 지난해 10월 중국의 반도체 생산기업에 대한 미국산 첨단 반도체 장비 판매를 금지하고 인공지능(AI)과 슈퍼컴퓨터에 사용되는 반도체에 대한 수출을 제한하는 수출 통제 조치를 발표했다. 최근 일본도 첨단 칩 기술 제한 대응을 준비 중인 것으로 알려졌다. 수출 통제가 본격화되면 일본 반도체 장비업체의 타격이 예상된다. 2021년도 일본 반도체 제조 장비의 해외 매출액은 2조9705억엔(약 28조2000억원)으로, 그중 중국이 차지하는 비중(33%)이 가장 크다.

반도체 업계 관계자는 “중국 규제에 따른 파급력이 확대되고 있다”며 “일본의 제조 장비 판매가 올해 상반기 중에도 추가로 감소할 가능성이 매우 높다”고 평가했다.

일본이 자국 칩 장비 산업 피해를 감수할 수밖에 없을 것이란 평가가 나온다. 지난해 11월 반도체 기업 라피더스를 설립하고 미국 IBM과 협력을 통해 2나노 첨단 칩 개발 계획을 발표, 반도체 리더십 재건을 선언한 일본 입장에서는 미국과의 지속적 협력이 앞으로도 필수적이기 때문이다.

향후 미국의 중국 내 반도체 기술에 대한 통제는 더욱 강화될 것으로 점쳐진다. 앨런 에스테베스 미국 상무부 산업안보 차관은 23일(현지시간) 삼성과 SK에 제공한 대중 반도체 수출통제 1년 유예가 끝나면 어떻게 되느냐는 질문에 “기업들이 생산할 수 있는 반도체 수준에 한도(cap on level)를 둘 가능성이 크다”며 중국 내 한국 기업의 첨단 기술 제한 가능성을 언급했다. 이에 따라 삼성전자와 SK하이닉스 등에서 생산하는 200단대 첨단 낸드 플래시와 10나노대 D램 반도체의 중국 내 생산이 향후 막힐 것이란 우려가 커지고 있다.

한국·미국·일본·대만이 참여하는 미국 주도 반도체 공급망 협력체 ‘칩4’ 본회의가 작년 9월 예비회의 이후 5개월 만인 이달 중순 열리기도 했다. 참가국들의 반도체 공급망 현황·안정화 등에 대해 논의에 속도가 붙으면서 중국 시장에 대한 설비 투자 제한 압박도 한층 강화될 것이란 분석이다.

오정근 한국금융정보통신기술(ICT)융합학회 회장은 “중국 본토 투자가 막히게 되는 상황에서도 한국과 일본 기업의 협력은 지속될 필요가 있다”며 “중국에 대한 기술 통제 강화에 따라 피해를 입은 두 나라 기업들이 다른 나라로의 생산 공급 기지 다변화 방안을 함께 모색할 필요성이 커졌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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