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 반도체 지원법, 이익공유·가드레일 조항 겨냥
與 “시장 질서 침해…美 정부와 협상에 총력”
野 “국내 반도체 산업 위협…피해 최소화 대책”
여야 공제율 이견, K칩스법 3월 임시국회 주목
[헤럴드경제=이승환 기자] 여야가 미국 ‘반도체 지원법(CHIPS Act)’에 대해 ‘한목소리’로 우려감을 드러냈다. 정부를 향해서는 모든 역량을 동원해 미국 정부와 협상에 나서는 동시에 국내 산업 피해 가능성에 대응한 전략을 마련하라고 입을 모았다. 반도체산업의 위기감에 여야 공감대가 형성된 만큼 반도체특별법(조세특례제한법) 등 반도체산업 지원과 관련된 입법 논의에 탄력이 붙을 전망이다.
6일 정치권에 따르면 여야가 미국의 반도체 지원법 가운데 여야가 공통의 문제의식을 갖고 있는 부분은 이익 공유와 가드레일 관련 조항이다. 지난달 28일 미국 상무부가 발표한 반도체지원법의 보조금 지급 기준은 미 정부에서 1억5000만달러(약 2000억원) 이상의 보조금을 받은 기업은 예상을 넘는 이익이 나면 보조금의 75%까지 환수한다는 내용을 담고 있다. 아울러 보조금 수령 기업의 10년간 중국 내 반도체 설비투자를 제한하는 가드레일 조항도 포함됐다.
성일종 국민의힘 정책위원회 의장은 이날 “미국이 반도체 보조금 지급 기준을 발표했다. 사실상 반도체 보조금을 앞세워 미국 경제를 우선시하는 조치”라며 “이번 조치는 시장질서를 침해할 수도 있는 내용까지 포함돼 있어 상당한 우려를 표명한다”고 말했다.
성 의장은 “특정 금액 이상의 보조금을 받은 기업이 기대 수익을 초과하면 초과이익의 일부를 미국 정부와 공유하는 ‘초과이익 환수 조항’이나, 보조금을 받은 기업이 10년간 중국 등 우려 국가에 반도체 중대 투자를 못하게 하는 ‘가드레일 조항’ 등은 중국과 미국 양국에서 공장을 운영하고 있는 우리나라 기업에는 매우 부정적인 영향을 주는 조항”이라고 강조했다.
성 의장은 미국 반도체 지원법에 대응해 정부의 적극적인 외교 협상을 강조했다. 국회 차원에서는 반도체산업 지원을 뒷받침할 입법적 조치를 신속히 취하겠다는 의지도 내비쳤다.
그는 “정부는 모든 역량을 총동원해 미국 정부와 협상에 나서는 등 외교력과 협상력을 발휘해주기 바란다”며 “국민의힘도 정부를 뒷받침해 필요한 모든 입법적 조치를 신속하게 취할 수 있도록 최선을 다하겠다”고 말했다.
더불어민주당 역시 이번 미국의 반도체 지원법에 대해 우려를 표명하며 윤석열 정부을 신속한 대책 마련을 촉구했다.
박홍근 민주당 원내대표는 이날 “미국 정부가 반도체 보조금 심사 기준을 발표했는데 하나하나가 우리나라 반도체산업을 위협하는 요인으로 작동할 수 있는 독소 조항”이라며 “보조금 받는 게 오히려 손해라는 이야기가 나온다”고 말했다.
박 원내대표는 “지금부터라도 기업의 피해 최소화할 전략과 대책 마련해야 한다”며 “글로벌 경제전쟁에 영원한 우군 없다 우리 국익을 오로지 지키는 관점에서 최대한의 외교력을 발휘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그러면서 “앞으로 구체화될 가드레인 조항에 대한 협상에 대해 칩4(미국 주도의 반도체 공급망 협력체)를 통해 구체적 목소리를 낼 것을 촉구한다”고 덧붙였다.
국내 반도체산업에 대한 위기감은 고조되면서 여야가 반도체산업 지원을 뒷받침해줄 입법 조치에 적극적으로 나설 것이란 전망이 나온다.
현재 여야는 ‘K칩스법’의 구체적인 내용을 놓고 갑론을박을 이어왔다. K칩스법은 ‘조세제한특례법 개정안’에 포함된 반도체 특별법을 가리킨다.
정부·여당은 대기업의 반도체 설비투자 세액공제율 15% 올려야 한다는 입장이다. 민주당은 초부자 감세라고 비판하고 있다.
지난해 말 대기업 공제세율을 6%에서 8%로 올리는 정부안이 국회를 통과했다. 하지만 국회를 통과하지 한 달 만에 대기업 공제율을 15%로 올리는 정부 안이 국회에 제출됐다. 윤석열 대통령이 국회를 통과한 정부 안에 아쉬움을 표하며 추가 지원을 주문했기 때문이다. 민주당은 이에 대해 ‘급조한 정부 안’이라는 문제의식으로 K칩스법 처리에 부정적인 입장을 고수하고 있다.
시장에서는 국내 반도체산업에 이미 경고등이 켜졌다는 분석이 많다. 국회에서 논의되는 반도체 지원 관련 입법 조치가 더는 미뤄지면 안 된다는 주장이 힘을 받는 이유다.
통계청에 따르면 지난 1월 반도체 재고율은 265.7%로, 1997년 3월(288.7%) 이후 25년10개월 만에 가장 높은 수치를 기록했다. 올해 1월 팔리지 않고 쌓인 반도체 재고율이 26년 만에 가장 높은 수준이라는 것이다. 반도체 불황이 지속되고 있다는 뜻으로, 수출 중심의 한국 경제에 끼칠 악영향이 우려된다.
더욱이 미국 반도체 지원법의 보조금 지급 기준을 발표하면서 글로벌 반도체업계 상황이 더욱 긴박하게 전개되고 있다. 이에 K칩스법의 처리 여부는 3월 임시국회에서 최대 관심사로 부각될 가능성이 크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