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통령실·윤핵관, 나경원·안철수 압박…판세 흔들어
이준석 화려한 복귀…자서전 출간 이후 역할론 주목
후보 경쟁력·거친 교통정리 방식 우려 목소리
[헤럴드경제=김진 기자] 대통령실, 윤핵관(윤석열 대통령 측 핵심 관계자), 이준석 전 국민의힘 대표. 여당의 차기 지도부를 뽑는 3·8전당대회의 판세를 흔든 대표적인 장외주자들이다. 선거판 밖에 자리잡은 이들은 주요 국면마다 장 내에 진출하며 영향력을 발휘했다. 이들의 존재감을 바라보는 당 안팎의 시각은 엇갈린다.
‘윤심 선거’ 불씨 지핀 대통령실·윤핵관
올해 1월 나경원 전 의원의 ‘당대표 선거 불출마’ 사태는 대통령실과 윤핵관의 영향력을 보여준 대표적인 사건이다. 나 전 의원은 지난해 국민의힘이 비상대책위원회 체제로 전환한 직후부터 꾸준히 차기 당대표 후보군에 이름을 올린 유력 당권주자였다. 나 전 의원이 각종 여론조사에서 순위권을 차지하면서 그가 당권에 도전할 것이란 관측이 우세했고, 나 전 의원도 이를 부인하지 않았다.
나 전 의원의 행보에 제동이 걸린 건 대통령실과의 갈등이었다. 대통령 직속 저출산고령사회위원회 부위원장인 나 전 의원이 1월 초 기자간담회에서 언급한 ‘헝가리식 출산 장려책’이 문제가 됐다. 질의응답 과정에서 스치듯 나온 답변에 대통령실이 고위 참모진의 실명 브리핑을 통해 이례적으로 반박하면서 불출마를 압박하는 신호로 해석됐다. 뒤이어 나온 대통령실 핵심 관계자, 대통령실 고위 관계자들의 ‘공직을 맡으면서 당직 선거에 출마하는 건 바람직하지 않다’는 취지의 발언도 이런 해석에 힘을 실었다.
고조되던 긴장감이 정점을 향해 내달린 건 나 전 의원의 해임 과정에서다. 나 전 의원은 당시 저출산고령사회위 직책에 사의 표명했으나, 대통령실은 그를 저출산고령사회위와 기후환경대사직에서 전격 해임했다. 해촉이 아닌 해임 표현을 놓고 해석이 분분한 가운데 ‘윤핵관’인 장제원 의원과 대통령실의 대응이 사실상 그를 코너에 몰아넣었다. 장 의원은 “대통령을 위하는 척하며 반윤의 우두머리가 되겠다는 것”이라고 저격했고, 대통령실은 “(해임은) 대통령의 본의가 아니라 생각한다”는 나 전 의원의 메시지에 또 한번 이례적으로 반박 입장을 냈다. 불출마 압박에도 윤석열 정부의 성공을 강조하며 친윤을 자처했던 나 전 의원은 끝내 불출마를 선언했다. 유력 주자의 불출마는 ‘윤심(윤 대통령의 의중) 선거’ ‘당무 개입’ 논란으로 이어졌다.
논란은 대통령실과 안철수 후보 간 갈등에서도 다시 확대됐다. 안 후보가 서울시장 선거와 대선에서의 단일화 이력 등을 강조하며 지지를 호소하는 과정에서 ‘윤안연대(윤석열·안철수 연대)’라는 표현을 사용한 게 발단이 됐다. ‘대통령을 선거에 끌어들이지 말라’는 대통령실의 메시지에 이어 급기야 이진복 대통령실 정무수석이 2월5일 직접 국회를 찾아 안 후보를 거세게 비판하고 나섰다. “아무 말도 하지 않으면,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을 것”이라는 공개적인 경고로 해석됐다. 장제원 의원과 통화 사실을 알리며 ‘김장연대(김기현·장제원 연대)’의 균열을 알린 안철수 선거캠프의 김영우 전 의원도 국민통합위 위원에서 전격 해촉됐다. 당 안팎에서는 “안철수 후보는 윤심이 아니라는 메시지”라는 해석이 나왔다.
그 사이 친윤계의 지지를 받는 김기현 후보는 상승세를 타며 1위 후보에 올랐다. 김 후보와 안 후보의 ‘2강’ 구도가 한동안 이어졌으나, 안 후보가 대통령실과의 갈등에서 주춤하는 사이 김 후보의 ‘1강’ 구도가 굳어졌다.
대통령실은 선거를 하루 앞둔 7일까지도 판세에 영향을 미칠 전망이다. 최근 대통령실 소속 행정관이 일부 당원들에게 김 후보에 대한 ‘홍보 전파’를 요청했다는 언론보도가 나오면서다. 안 후보 측은 이에 대한 대통령실의 입장을 요구하며 법적 대응 가능성까지 열어놨다.
킹메이커 자처한 이준석…전대 후 역할 주목
지난해 당 윤리위 징계 사태로 불명예 퇴진했던 이준석 전 대표도 전당대회로 화려하게 복귀했다. 당대표 및 일반·청년최고위원 후보에 출마한 개혁 보수 성향의 ‘천아용인’을 지원하면서다. 허은아·김용태 최고위원 후보와 이기인 청년 최고위원 후보의 후원회장을 맡은 이 전 대표는 후방지원에 그치지 않았다. 그는 ‘천아용인’ 브랜드 홍보부터 선거운동 방식까지 직접 세부조율한 것으로 전해졌다. 연세대 응원단장 출신인 이기인 후보를 전면에 내세운 천아용인 후보들의 율동 영상도 이 전 대표의 아이디어다. 그의 지지를 받는 천하람 당대표 후보는 정치 신인임에도 불구하고 예비경선(컷오프)을 통과해 현재 안 후보와 2위를 놓고 견줄 만큼 성장했다.
특히 이 전 대표는 언론 인터뷰와 사회관계망서비스(SNS)에서 김기현·안철수 후보 등을 저격하며 존재감을 키웠다. 선거 막판에 논란이 된 김 후보의 ‘울산 토건비리 의혹’ 관련해서는 ‘김기현 서포터즈’를 자처하며 여론 몰이에 나섰다. 안 후보와는 만화 ‘톰과 제리’에서 고양이 톰을 괴롭히는 생쥐 제리 역을 자처하며 날을 세웠다. 대통령실과 나경원·안철수 간 갈등 관계에서도 대통령실과 윤핵관을 앞장서 비판했다. 최근에는 전대 선거 과정과 당 상황을 소설 ‘우리들의 일그러진 영웅’을 인용한 기자회견이 화제가 됐다.
막후에 머무르지 않고 전면에 나선 이 전 대표의 활약은 ‘친윤 대 비윤’ 선거 구도가 자리잡는 데 영향을 미쳤다는 평가를 받는다. 최근에는 자서전인 ‘거부할 수 없는 미래’ 출간에 따라 전당대회 이후 역할도 주목받고 있다. 한 국민의힘 관계자는 “이번 전당대회를 통해 이준석 전 대표에 대한 당원들의 지지가 수치로서 확인되면 본격적인 정치 행보를 재개할 수 있는 발판이 될 것”이라고 말했다.
“대통령실 이례적 개입 아냐” “후보 경쟁력 의문”
장외주자들의 영향력에 대한 당 내 반응은 엇갈린다. 우선 장외주자의 존재감이 커질 수록 그 지원을 받는 후보의 그늘이 짙어진다는 비판이 나온다. 실제 친윤계 지원을 받는 김기현 후보는 경쟁주자들로부터 지속적으로 후보 경쟁력에 대한 지적을 받아왔다. ‘당정 분리냐, 당정 일체냐’ 논란에 이어 ‘대통령의 명예 당대표’ 논란까지 낳았다. 천 후보 역시 경쟁주자들에게 ‘이준석 아바타’로 묘사됐다.
대통령실과 윤핵관을 놓고선 “이례적인 건 아니다”라는 반응이 지배적이다. 집권 초기인 데다 총선을 앞둔 만큼 대통령실과 당정이 완벽하게 분리될 수 없다는 시각이다. 다만 수면 위에서 공개적으로 특정 후보에 대한 견제가 이뤄진 방식을 놓고선 우려의 목소리가 나온다.
또 다른 국민의힘 관계자는 “과거였다면 물밑에서 소위 ‘세련된’ 방식으로 교통정리가 이뤄졌겠지만, 지금 방식은 매우 거칠다”며 “조급함이 반영된 것으로 보인다”고 말했다. 이어 “당 내 여론을 움직일 수 있을 만큼 영향력 있는 원로나 구심점이 없는 점도 거친 방법을 동원하게 된 이유로 보인다”고 덧붙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