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헤럴드경제=주소현 기자] “의원님께서는 기후위기가 경제위기라는 판단에 동의하십니까?”
이같은 질문을 받은 국회의원 101명 중 65명은 ‘그렇다’, 35명은 ‘매우 그렇다’고 답했다. ‘그렇지 않다’고 답한 의원은 1명뿐이었다.
기후위기가 경제위기로 이어진다는 데 압도적으로 동의하지만 현실은 달랐다. 법 제정 및 개정 활동을 하고 있다는 의원은 20.8%, 의정활동을 기입한 의원은 34.7%에 그쳤다.
환경의 날을 맞아 국제환경단체 그린피스와 청년환경단체 3곳(기후변화청년단체GEYK·대학생신재생에너지기자단·빅웨이브)가 국회의원을 대상으로 한 기후위기 인식 설문조사 결과를 5일 공개했다.
한국사회여론연구소에 의뢰해 국회의원 재적 299명을 대상으로 설문조사를 진행했고 이중 101명이 응답했다. 정당별로는 더불어민주당 63명, 국민의힘 33명, 정의당 1명 기본소득당·시대전환·무소속 의원 각각 1명이 조사에 응했다.
조사 결과 국회의원 대다수가 높은 기후위기 인식을 갖고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설문에 답한 국회의원 101명 중 100명(99%)는 ‘기후위기가 곧 경제위기’라는 데 동의했다.
이유로는 ‘국제 무역 환경 변화’(45%)가 가장 많이 지목됐다. RE100(기업이 사용하는 전력의 100%를 재생에너지로 충당하자는 캠페인)이나 탄소국경세·ESG공급망 실사 등 기후위기를 염두에 둔 전세계적 정책의 영향이다.
이어 ▷보건 및 식량 위기, GDP 손실 등으로 인한 시장 불안정(34%) ▷자연재해로 인한 생산성 하락 등 경제적 손실(18%) ▷연기금·자산운용사 등 금융기관의 탈화석연료 흐름과 기후공시 의무화 등 투자 환경의 변화(3%) 순으로 이유를 꼽았다.
또한 기후위기 대응이 의정 활동에서도 중요하다고 본 국회의원이 대다수였다. 중요도를 묻는 질문에 ‘매우 높은 편’ 또는 ‘높은 편’이라는 답변이 각각 24.8%, 55.4%로 80% 이상을 차지했다.
인권 관점에서 기후위기를 바라봐야 한다는 시각도 컸다. 최근 국가인권위원회에서 정부에 의견을 표명한 데 대해 93.1%가 동의했다. ‘미래세대의 생존권을 위협’(53.2%)하고, ‘한파·홍수·장마 등으로 주거환경이 열악해진다’(34.0%)는 이유에서다.
설문에 응한 국회의원 절반 이상이 미래세대의 생존권을 우려하는 것과 달리 온실가스 감축 목표에 대한 평가는 팽팽하게 맞섰다. 현재 국가 온실가스 감축 목표(NDC)에 관해 ‘충분하다’는 답변이 49.5%로, ‘불충분하다’(50.5%)는 답변에 근소하게 밀렸다. 우리나라는 2030년까지 2018년 온실가스 배출량의 40%를 줄이기로 한 상황이다.
기후위기에 대응하기 위한 국회의 역할로 ‘관련 정책 및 법률을 제·개정’이라는 답변이 58.4%를 차지해 가장 많았다. ‘예산 조정 및 배분을 해야 한다’(21.8%), ‘행정부 감시·감독’(16.8%), ‘지역구 제반 활동’(3.0%) 등의 답변이 뒤를 이었다.
그러나 국회의원들의 실제 대응은 인식과 대조적이었다. 주관식 답변에서 ‘법 제정 및 개정’을 답한 의원은 21명(20.8%)에 그쳤다. 기후위기 대응과 관련한 ‘의정활동을 하고 있다’는 국회의원도 35명(34.7%)으로 저조한 편이었다.
이날 환경단체들은 설문조사 내용을 포함한 의견서를 국회 기후위기특별위원회에 전달했다.
이들은 국회에서 계류 중인 에너지전환지원법과 풍력발전특별법안 등을 조속히 통과시킬 것을 요구했다. 또한 탄소예산에 입각한 탄소중립기본법 개정, 탄소중립 이행 점검을 위한 국회 역할 강화를 촉구했다.
이선주 그린피스 기후에너지 캠페이너는 “국제사회가 합의한 지구 기온 상승 폭 1.5도 이내 목표를 지키기 위해 미래 세대는 더 많은 탄소 감축 부담을 지게 되는 동시에 기후위기로 인한 피해에 더 많이 노출될 것”이라며 “총선이 300여일 앞으로 다가온 현 시점에서 국회는 청년 세대를 비롯한 국민의 목소리에 귀를 기울이고 기후위기에 대응해야 한다“고 밝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