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헤럴드경제=김광우 기자] 한때 자동차금융 시장의 ‘신흥 강자’로 떠올랐던 은행 오토론(자동차 담보대출) 수요가 급감한 것으로 나타났다. 오토론의 인기에 위기감을 느낀 카드·캐피탈사에서 공격적인 마케팅을 펼친 데다, 금융당국의 규제가 지속됐기 때문이다. 일각에서는 자동차금융 시장에서 오토론 비중이 줄어들며, 1금융권 ‘자동차 대출’이 사라질 수 있다는 예측도 나온다.
‘신흥 강자’ 이름 무색…은행 오토론 잔액 5개월 새 4000억원 뚝↓
29일 금융권에 따르면 4대 시중은행(KB국민·신한·하나·우리)의 지난 5월 말 기준 자동차대출(오토론) 잔액은 3조5893억원으로 약 5년 전인 2018년(5조2274억원)과 비교해 1조6381억원(31.3%)가량 줄어든 것으로 나타났다.
특히 최근 들어 감소폭이 가팔라졌다. 지난해 말(4조128억원)과 비교해서도 불과 다섯 달 만에 4200억원가량 잔액이 감소했다.
기존 자동차금융 시장은 캐피탈 등 2금융권의 영향력이 컸다. 그러나 2016년 이후 은행들은 오토론 상품에 대한 공격적인 마케팅에 나서며 영향력을 넓혔다. 같은 시기 주택담보대출 등 주력 상품에 대한 규제가 강화되며, 은행들이 대체 먹거리로 오토론을 택한 것이다. 은행 오토론은 대부분 서울보증보험의 보증을 전제로 하기 때문에, 부실 위험이 적은 상품으로 분류된다.
은행권은 특히 1금융권의 장점을 앞세워 오토론 영업을 강화했다. 오토론은 고객이 자동차 값을 할부로 지급하는 2금융권 자동차할부금융보다 금리가 낮고 상환기간(최장 10년)이 길다는 특징이 있다. 이에 2016년 1조3904억원에 불과하던 4대 은행의 오토론 규모는 2017년 2조5854억원, 2018년 5조2274억원 등으로 한 해에 두 배씩 성장세를 기록했다.
그러나 ‘탄탄대로’는 오래가지 않았다. 비슷한 시기 자동차할부금융 시장에 뛰어든 카드사와 전통 강호 캐피탈사가 ‘맞불 작전’을 폈기 때문이다. 금융권 관계자는 “2010년대 후반까지만 해도, 은행들이 최저 2~3% 내외 금리로 고객을 끌어모았지만, 같은 시기 카드사 또한 자동차할부금융시장 진출을 본격화하고, 캐피탈사의 금리 인하도 시작되며 경쟁이 격화됐다”고 설명했다.
실제 2010년대 후반부터 카드업계는 신용판매 비중을 줄이고, 할부금융과 리스 등으로 사업 다각화를 추진했다. 위협을 느낀 캐피탈사는 연 1%대의 저금리 및 캐시백 이벤트를 진행하는 등 적극적인 대응에 나섰다. 카드사 또한 최저 2%대 내외 금리를 제공하며, 고객을 끌어모았다.
이에 자동차할부 시장은 카드사와 캐피탈사의 2파전으로 재편됐다. 금융감독원에 따르면 2020년 말 기준 국내 캐피탈사의 자동차할부금융 자산은 약 21조7093억원으로 2018년(17조6685억원)과 비교해 4조원가량 급증했다. 같은 기간 6개 카드사의 자동차할부금융 자산 또한 7조714억원에서 8조6636억원으로 약 1조6000억원 증가했다. 하지만 4대 은행의 자동차대출 규모는 2000억원가량 줄어들며, 역성장을 기록했다.
오토론 판매 중단도…“당국 규제 이후로 적극적 영업 어려워”
이같은 현상에는 금융당국의 규제도 큰 영향을 끼쳤다. 2010년대 후반 은행 오토론의 규모가 급증하자 당국은 자동차대출 확대에 제동을 걸었다. 연체율 상승으로 인한 부실 우려가 커진 영향이다. 은행들은 2019년부터 오토론 한도를 기존 1억원에서 6000만원으로 낮췄다. 대출 기간도 중고차 대출에 한해 10년에서 5년으로 축소했다. 금융당국은 2018년 10월부터 은행권 오토론에 총부채원리금상환비율(DSR) 대출 규제를 적용하기도 했다.
이후 은행권의 오토론 실적 또한 기세가 꺾였다. 2016년 이후 불과 3년 만에 몸집을 3배 이상 불린 오토론 실적은 지속해서 감소세를 기록했다. 시중은행 관계자는 “실질적인 자동차대출 규제가 시행되는 등 금융당국의 오토론 자제 요구가 계속되며, 비중 확대를 위한 적극적인 영업을 추진하는 데 부담을 느끼고 있는 게 사실”이라고 말했다.
일각에서는 은행권의 자동차대출 비중이 점차 줄어들고, 향후 1금융권 자동차대출이 사라질 수 있다는 관측도 나온다. 실제 농협은행은 2020년과 2021년 각각 ‘채움오토론’과 ‘오토론 전환대출’ 상품 판매를 잠정 중단했다. 지난해부터는 마지막 남은 ‘NH간편오토론’마저도 판매하지 않고 있다. 농협은행 관계자는 “당시 가계대출 물량 조절 차원에서 대출 중단이 결정됐다”며 “현재 판매 계획은 없으며 재개 여부 또한 향후 검토할 것”이라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