올해 상반기 국내 소비량 415만7000배럴
1997년 이래 가장 높은 수치
정제마진 악화 속 윤활유 정유사 효자제품으로 부상
[헤럴드경제=한영대 기자] 비주류 석유제품이면서 전기차 시대 성장판이 닫힐 것으로 평가받던 윤활유가 올해 상반기 사상 최대 소비량을 기록한 것으로 나타났다. 주요 정유사들이 전체 사업에선 실적 부진을 겪었지만 윤활유는 견조한 수익성을 이어가며 ‘알짜’ 제품으로 거듭나고 있다는 평가다.
24일 한국석유공사 페트로넷에 따르면 올해 상반기 국내 윤활유 소비량은 415만7000배럴이다. 페트로넷에 공개된 1997년 수치부터 살펴봤을 때 상반기 기준 가장 높은 소비량을 기록했다. 올해 상반기 전체 석유제품의 국내 소비량(4억5563억배럴)이 지난해 같은 기간보다 3% 감소한 것과 상반된 양상이다.
올해 상반기 윤활유 수출량은 1269만7000배럴이다. 지난해(1292만8000배럴)와 비교했을 때는 소폭 감소했지만, 1000만배럴에 미치지 못했던 예년과 비교했을 때 크게 상승했다.
윤활유는 기계 마찰면에 생기는 마찰력, 마찰열을 줄이기 위해 사용하는 기름이다. 주로 자동차에 많이 사용되지만 선박, 기계공업 등 다른 산업군에도 두루 활용된다.
코로나19 여파로 부진했던 전방 산업들이 올해를 기점으로 다시 살아나기 시작하면서 윤활유 소비량이 폭발적으로 증가했다. 석유업계 관계자는 “공장이 가동될 때 윤활유가 사용되는데, 올해 들어 공장 가동률이 전반적으로 높아지면서 윤활유 수요도 자연스레 늘었다”고 설명했다.
시장 변화에 따른 정유사들의 기민한 대응도 윤활유 수요를 끌어 올렸다. 한국윤활유공업협회는 2021년 내놓은 보고서에서 “전기차 증가로 국내 윤활유 시장은 더 이상 성장하기 어려울 것으로 판단된다”고 분석한 바 있다. 시장에서 판매되는 윤활유들이 주로 내연기관 자동차에 맞춘 제품이라는 것이 이유에서다.
이에 정유사들은 전기차용 윤활유를 잇달아 선보였다. 전기차용 윤활유는 전기모터, 기어 등의 열을 빠르게 식히고 차량 구동계 내부에서 불필요하게 흐르는 전기를 차단한다. SK이노베이션 자회사인 SK엔무브는 2010년부터 전기차용 윤활유 개발을 시작, 현재 완성차 업체에 제품을 공급하고 있다. GS칼텍스는 2021년 전기차용 윤활유 브랜드 ‘킥스 이브이(Kixx EV)’를 출시했다. S-OIL도 같은 해 ‘에쓰오일 세븐 EV’를 선보였다. 아직 전기차용 윤활유를 출시하지 않는 HD현대오일뱅크도 제품 개발에 속도를 내고 있다.
높은 인기에 윤활유는 정유사들의 효자제품으로 자리 잡고 있다. 정제마진 악화로 정유사들이 올해 2분기 모두 부진한 성적표를 받았음에도, 윤활유 사업에서만큼은 호실적을 달성했다. SK이노베이션은 올해 2분기 윤활유 사업에서 영업이익 2599억원을 기록했다. SK이노베이션 전체 사업군에서 가장 많은 영업이익을 냈다.
GS칼텍스, S-OIL도 올해 2분기 정유 사업에서 적자를 거뒀음에도, 윤활유 사업에서는 각각 영업이익 1506억원, 2465억원을 기록했다. HD현대오일뱅크는 윤활기유(윤활유 주 원재료) 사업에서 전년 동기 대비 2배 이상 급증한 영업이익 618억원을 달성했다.
윤활유 사업 성장을 위해 SK엔무브, GS칼텍스 등은 연비 강화와 탄소 배출량 저감 효과가 있는 제품 개발을 진행하고 있다. 터보·하이브리드 엔진이 설치된 차량에 대응하기 위한 고품질 윤활유도 지속해서 선보이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