상반기 전선 수출액 9430억…전력기기 6600억
AI 투자 확대로 전력 인프라 수요도 함께 높아져
전력망 노후화·차별화된 기술력, 수출 증가에 한몫
HD현대, LS 등 수요 증가에 대응해 설비증설 ‘속도’
[헤럴드경제=한영대 기자] 올해 상반기 국내 전선, 변압기 수출액이 최근 10년래 가장 높은 수치를 기록했다. 인공지능(AI) 산업을 뒷받침해 줄 전력 인프라 구축이 활발히 이뤄지면서 전선, 변압기 수요가 대폭 늘어난 것이다. AI 거품론 등장에도 글로벌 IT 기업들이 대대적 AI 투자를 공언한 만큼 국내 전선, 변압기 기업들은 증설을 통해 제품 수요에 대응한다는 계획이다.
7일 관세청 수출입무역통계에 따르면 올해 상반기 기준 우리나라 전선·케이블(전압 1000볼트 초과 기준) 수출액은 6억8520만달러(9430억원)로 집계됐다. 최근 10년간(2015~2024년) 상반기 기준 가장 높은 수치다. 지난해 같은 기간(3억6158만달러, 5000억원)과 비교했을 때 89.5% 증가했다.
전력기기 중 하나인 변압기(용량 1만㎸A 초과 기준) 수출액도 전선과 마찬가지로 최근 10년래 가장 높은 수치인 4억7647만달러(6600억원)를 달성했다. 전년 동기(3억1009만달러, 4300억원) 대비해서 53.7% 늘었다. 변압기는 발전소에서 만들어 낸 전기를 가정, 공장 등에 송전하기 이전에 전압을 낮추거나 높이는 역할을 한다.
전선, 변압기 수출액이 상승한 배경에는 AI가 자리 잡고 있다. 주요 IT 기업들은 AI 산업 성장을 위해 데이터센터 건설 등에 공격적인 투자를 진행 중이다. 마이크로소프트와 아마존, 메타, 알파벳의 AI 관련 투자액은 올해 상반기 기준 1060억달러(140조원)로 전년 동기 대비 50% 증가했다. AI 투자가 늘어나면서 이를 뒷받침해 줄 전력 인프라 수요도 자연스레 늘어났다.
주요 국가들의 전력망이 노후화된 점도 수출액 증가에 한 몫 했다. 미국의 경우 전력망 대부분이 1960~1970년대 사이에 구축됐다. 전력기기 수명이 최대 30여년인 점을 고려할 때 하루빨리 교체 작업이 이뤄져야 한다.
우리나라 제품의 우수성도 신기록 달성에 이바지했다는 평가다. LS전선은 전 세계에서 6개 기업만이 보유하고 있는 초고압 해저케이블 양산 기술을 보유하고 있다. 대한전선은 현재 상업화된 지중케이블 중 가장 높은 전압의 제품을 보유하는 등 지중케이블 분야에서 차별화된 기술력을 갖고 있다.
HD현대일렉트릭과 LS일렉트릭, 효성중공업 등 국내 전력기기 3사 역시 마찬가지다. 3사 모두 초고압 변압기 생산능력을 갖추고 있다. 초고압 변압기는 다른 전력기기들과 비교했을 때 가격이 비쌀 뿐만 아니라 기술적 난도가 높은 제품 중 하나다. 업계 관계자는 “초고압 변압기를 생산할 수 있는 기업은 손에 꼽을 정도로 적다”고 말했다.
전선, 변압기 수출 상승세는 계속 이어질 전망이다. AI가 기대보다 낮은 수익을 내면서 이른바 ‘AI 거품론’이 등장하고 있지만 AI 투자는 끊이지 않고 있기 때문이다. 일례로, 순다르 피차이 알파벳 최고경영자(CEO) 역시 올해 2분기 실적 콘퍼런스콜에서 AI에 대한 투자 의지를 밝히기도 했다.
AI 투자가 계속되면 전력 수요는 이에 상응해 늘어날 수밖에 없다. 국제에너지기구는 2030년 글로벌 전력 수요가 2021년 대비 24% 증가할 것으로 분석하고 있다. 올해부터 2026년까지는 연간 3.4%씩 늘어날 것으로 전망하고 있다.
국내 전선, 전력기기 업체들은 수요 증가에 대응해 생산능력 확충에 나서고 있다. LS전선은 2027년까지 약 1조원을 투자해 미국에 현지 최대 규모의 해저케이블 공장을 건설할 계획이다. 대한전선은 우리나라에 해저케이블 공장을 건설하는 것은 물론 해외 생산라인 구축도 고려하고 있다.
HD현대일렉트릭은 최근 북미 생산법인에 변압기 전문 보관장 시설을 준공했다. 이외에도 울산 공장 증설을 진행하고 있다. 모든 증설 작업이 마무리될 시 HD현대일렉트릭은 연간 2200억원 규모의 매출 증대 효과를 거둘 것으로 예상된다. LS일렉트릭, 효성중공업은 각각 803억원, 1000억원을 투입해 초고압 변압기 생산라인 증설을 진행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