배철현 서울대 교수가 본 ‘학생’김형오는
김형오는 신비(神秘)한 사람이다. ‘신비’는 그 전체를 볼 수 없지만 창조적인 매력이 있다는 의미다.
4년 전인 2010년 가을, 서울대 최고지도자 인문학 과정을 강의할 때 김형오 국회의장을 처음 만났다. 사제지간이었다. 그는 인문학의 생소한 분야에도 지대한 관심뿐만 아니라 그것을 깊이 알려는 호기심이 대단했다. 대부분은 우리에게 익숙한 세계에 탐닉해 그것이 세상의 전부라고 착각하며 산다. 이 편견을 깨기 위해 공부가 존재한다.
그는 거의 매 시간 자신에게 낯선 주제에 집중해 질문을 했다. 질문은 질문자가 그 주제에 대한 편견을 넘어서서 자기가 가보지 못한 새로운 이해의 지평으로 진입하고자 하는 용기다. 질문을 통해 우리는 자기중심의 ‘이기심’에서 벗어나 다른 사람의 마음으로 들어가는 ‘무아(無我)’를 실천할 수 있다. 나는 김형오 의장이 새로운 세계인 니르바나로 입문하려는 구도자(求道者)라고 생각했다.
필자는 2012년 11월 김형오 의장이 출판한 ‘술탄과 황제’를 읽고 난 뒤, 그가 단순한 구도자일 뿐만 아니라 오랜 기간 배움의 무아연습을 통해 심지어는 다른 사람의 마음에 들어가 그 사람의 생각을 헤아리는 해탈의 경지에 오른 것이라고 감탄했다.
정치가라면 대개 회고록이나 자신의 치적을 자찬하는 자아 전시적인 출판을 하게 마련인데 ‘술탄과 황제’는 전혀 달랐다. 아무도 예상하지 못한, 대한민국의 인문학자들을 깜짝 놀라게 한 책을 내놓은 것이다.
그가 다룬 인물들은 세계사의 획을 그은 위대한 두 지도자이다. 그는 1453년 콘스탄티노플 함락을 다루면서 오스만 튀르크의 술탄 메흐메드 2세와 비잔틴 제국의 콘스탄티누스 11세의 마음속에 들어가 이들 각자의 입장에서 기술함으로써 이 마그눔 오푸스(위대한 공부)를 완성했다.
여기에는 누가 옳고 그른 것이 없다. 상대방의 입장에 서보려는 마음에서 저절로 나오는 조화와 공존이 있을 뿐이다. 김형오 의장은 그 도시를 콘스탄티노플도 아니고 이스탄불도 아닌 ‘이스탄티노플’이란 용어를 만들어냈다.
김형오 의장은 90세 시대에 사는 우리에게 삶의 새로운 패러다임을 제시한 혁명가(革命家)이다. 혁명가가 되려면 자기 자신의 가죽(革)에서 털과 기름을 뽑아내는 무두질을 통해 나와 다른 의견을 수용하고 나를 항상 변화시킬 수 있도록 유연하게 만들어야 한다. 심지어는 자신의 소명이라고 생각했던 명(命)을 초개처럼 바꿀 수(革) 있어야 한다.
그는 60대에 자신의 명(命)인 정치가에서 작가로 혁명을 일으켰다. 지금 생각해보면 그가 훌륭한 국회의장으로 기억되는 이유도 자신을 항상 개혁하려는 혁명가였기 때문인 것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