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만인 사람들 변을 보면 장내 미생물 다양성 낮아
몸속 세포보다 훨씬 많은 미생물 그들의 이야기 관찰하듯 풀어내
지난해 8월 29일 세계적인 학술지 네이처(Nature)에 장내 미생물의 종다양성과 비만의 상관관계에 대한 흥미로운 논문이 실렸다. 이 논문은 프랑스 국립농학연구소(INRA)를 비롯해 전 세계 28개 기관이 참여한 대형 프로젝트의 연구 결과물로 정상 체중을 가진 실험군 123명과 비만인 실험군 169명의 분변을 채취해 장내 미생물 다양성을 분석했다. 논문에 따르면 비만인 실험군이 정상 체중을 가진 실험군보다 상대적으로 장내 미생물 종다양성 비율이 낮았다. 또한 장내 미생물이 비만에 미치는 영향이 유전적인 영향보다도 더 큰 것으로 나타났다. “물만 먹어도 살이 찐다”는 일부 사람의 엄살은 어느 정도 일리가 있는 셈이다. 그리고 그 근거 있는 엄살의 중심엔 미생물이 있다.
우리의 일상은 미생물의 천국이다. 요구르트를 비롯해 우유, 생선, 샴페인, 김치, 심지어 물에도 미생물이 존재한다. 우리가 들이마시는 한 모금의 공기조차도 30억년 전 미생물이 일으킨 ‘산소혁명’의 결과물이다. 가끔 독성을 가진 미생물이 질병을 일으키기도 하지만, 미생물이 없는 우리의 삶은 상상할 수 없다. 왜냐하면 우리 역시 결국 미생물만큼 작은 세포로 이뤄진 생명체이기 때문이다. 우리의 몸 안에는 세포 수보다도 훨씬 많은 10조~100조개에 달하는 미생물이 살아가고 있다. ‘한없이 작은 한없이 위대한’은 눈에 보이지 않지만 어디든 존재하는 지구의 지배자인 미생물에 대한 이야기를 흥미롭게 다루고 있는 책이다.
저자인 미생물학자 존 잉그럼은 우리의 주변 환경뿐만 아니라 상상을 초월하는 극한의 조건에서도 살아가는 미생물에 대한 이야기를 생활과 밀접한 예를 들어 설명해 독자의 이해를 돕는다. 바다생선이 비린내를 풍기는 이유, 날달걀이 몇 달간 상하지 않는 비밀, 소가 풀이나 건초만 먹고도 덩치를 유지할 수 있는 비결, 죽은 생선의 몸에서 빛이 나는 원인, 방귀의 원리, 치즈 구멍의 정체 등 우리 주변에서 일어나는 다양한 자연 현상들이 모두 미생물과 관련돼 있다는 이 책의 친절한 설명은 미생물, 나아가 지구의 신비를 이해하는 데 도움을 준다. 미국도서관협회는 이 책을 ‘2010년 우수 인문서’로 선정한 바 있다.
“바다 생선이 죽자마자 박테리아는 다른 사체에서 그러듯이 생선 표면에서 증식하기 시작한다. 처음에는 녀석들은 산소 호흡을 통해서 대사 에너지를 얻는다. 그렇게 빠르게 생선 표면 구석구석에서 산소를 빼앗는다. 우리와 대부분의 다른 동물에게서는 그걸로 끝이다. 산소가 없으면 더 이상 대사 에너지를 생성하지 못해 우리의 대사과정이 중단되기 때문이다. 사실 우리나 대부분의 동물들은 빠르게 죽는다. 하지만 미생물은 산소가 고갈되자마자 산소가 필요 없는 방식으로 바꾸어 대사에너지를 획득하기 시작한다. 생선에서 자라는 박테리아는 부족한 산소를 대신하기 위해서 바다 생선에 풍부한 트리메틸아민옥사이드라는 대체 화합물로 대사에너지를 계속 획득한다.”(48쪽)
저자는 미생물이 ‘이롭다’ 혹은 ‘해롭다’는 일도양단식의 결론을 내리지 않는다. 그저 저자는 독자와 함께 산책을 하듯 한발짝 떨어져서 불편부당한 시선으로 미생물을 관찰할 뿐이다.
복어의 독보다 1만배 이상 강한 독성을 지녀 생화학 무기로도 쓰이는 보톨리누스균의 독소가 극미량으로 희석되면 주름살을 펴주는 보톡스로 변신한다는 저자의 설명은 담담해서 오히려 더 깊은 인상을 남긴다.
저자는 이 책의 본문 첫 페이지에서 “겨우 10만년 전에 지구에 등장한 인류는 미생물의 고독한 여행에서 겨우 몇 걸음만 같이했을 뿐이다. 미생물이 지금까지 걸어온 길이 1㎞라면 인류가 그들과 함께한 거리는 1㎝ 정도에 불과하고, 그들이 살아온 하루 중 겨우 2.5초 정도만 함께했다”며 겸손을 표한다. 이 같은 저자의 태도는 독자가 지적 포만감을 느끼는 것을 넘어 나아가 생태계 균형의 중요성과 다양한 생명체들의 존재 당위까지 생각할 수 있도록 유도한다.
정진영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