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8. 레오나르도 다빈치 ‘모나리자’
1911년 8월 세기의 명작 분실에 ‘발칵’
파리 경시청 경찰 60여명 동원해도 못찾아
2년 뒤 伊 이민자 페루자 범인으로 밝혀져
모나리자 도난으로 고작 6개월 징역살이
[0.1초 그 사이]는 역대급 몸값을 자랑하는 작품의 면면을 들여다보는 코너입니다. ‘찰나의 순간’으로 승부가 나뉘는 치열한 미술시장에서 선택받은 그림들, 그 안에 얽힌 속사정을 들려드립니다.
[헤럴드경제=이정아 기자] 1911년 8월 22일 화요일의 프랑스 파리, 루브르 박물관. 작품 ‘모나리자’(1503~1506년께 제작 추정)를 모사해왔던 화가 루이 베루드는 그림을 마무리 짓기 위해 전시실로 발걸음을 옮겼다가 깜짝 놀랐습니다. 작품이 온데간데 없이 사라졌거든요. 시선을 붙잡는 온화한 갈색 눈동자의 여인, 바로 그 모나리자가 제 자리에 없었습니다.
경비는 대수롭지 않다는 듯 그에게 말했습니다. “사진 찍고 있겠지.” 당시 박물관은 원작 기록을 위해 정기적으로 소장품을 가져다가 촬영 작업을 진행했는데, 모나리자도 그 작업을 위해 가져간 것이라 생각했던 듯 합니다. 그러나 뒤늦게 확인해보니 기록 작업을 하던 사진사도 모나리자를 가지고 있지 않았습니다.
그렇게 모나리자는 감쪽같이 자취를 감췄습니다. 24시간이 넘도록 누구 하나 눈치 챈 이가 없었다니…. 놀라울 따름이네요.
자, 이번에는 미술의 문외한도 아는, 세상에서 가장 널리 알려진 레오나르도 다 빈치의 그 유명한 작품, 모나리자에 대해 이야기를 전해드릴게요. 이 도난 사건으로 모나리자는 작품성을 뛰어넘어 대중적으로도 엄청난 명성을 얻게 됐거든요. 그림값이 천문학적으로 비싸지는 결정적인 계기가 된 겁니다.
우선, 모나리자의 가치를 추정해볼까요. 평가 방법과 관점에 따라 그 추정치는 크게 달라집니다. 지난 2022년에 일부 미술계 전문가들은 이 작품의 순수한 예술적 가치를 약 1조1150억원으로 분석했습니다. 작품 자체의 예술적 완성도와 희소성을 고려한 건데요.
반면 프랑스 정부는 모나리자의 경제적 가치를 최대 40조원으로 평가했습니다. 사실상 프랑스 국민의 문화유산으로 간주되는 이 걸작이 가져오는 관광수익과 문화적 영향력 등을 모두 포함해 내린 결론입니다.
실제로 지난해만 루브르 박물관의 연간 방문객은 890만명. 코로나 팬데믹 이전인 2018년에는 그 수가 1000만명에 달하기도 했습니다. 모든 방문객들이 모나리자를 보려고 루브르 박물관에 왔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죠. 그들에게 루브르 박물관은 곧 모나리자였을 겁니다. 모나리자 그림 한 점은 단순한 미술품이 아닌 예술, 문화, 경제적 상징으로 독보적인 권위를 갖춘, 전 세계 예술 수도로서 파리의 역사, 그 자체인 거죠.
다시 113년 전 그날로 돌아가볼까요. 모나리자 도난 사실을 알게 된 파리 경시청은 루브르 박물관을 폐관했습니다. 경찰 60명을 투입해 사라진 그림을 수색했고요. 이어 프랑스 국경을 봉쇄했죠. 당시 발견된 것은 이름표에 피렌체 화파 다빈치의 모나리자라고 기입된 그림 없는 목각 액자 뿐. 모나리자가 걸려 있던 루브르 박물관 카레관에서 불과 몇 미터 떨어진 비상계단 한쪽 구석에서 말이죠.
파리 한복판에서 벌어진 믿을 수 없는 도난 사건은 호외를 통해 세상에 알려지기 시작했습니다. 언론이 도난 사실을 다투어 보도했는데요. 그 당시에만 해도 이 작품은 500만 달러(오늘날 가치로 1억4000만달러, 한화 약 1834억원)로 추산됐습니다.
그런데 그림이 걸려 있던 빈 자리라도 보기 위해 파리 시민들은 긴 줄을 서기 시작했습니다. 정작 벽에 걸려 있었을 때는 큰 관심을 받지 못했던 작품이었는데 말이죠. 부재(不在)가 오히려 존재(存在)의 의미를 선명하게 드러낸다고 해야할까요. 심지어 모나리자는 이 땅에 발붙이고 숨쉬는 사람보다 ‘더 살아있는 인간’처럼 취급됐습니다. 마치 하나의 인격체마냥 말이죠. 당시 파리의 화보 주간지 ‘릴뤼스트라시옹’에서도 이런 시선이 드러납니다.
이 유괴를 범한 자는 겁 없는 범죄자인가, 신비주의자인가, 미친 수집가인가, 아니면 사랑에 빠진 얼간이인가. 그리고 이 경이로운 그림의 현 주소는 어디인가.
모나리자 실종 사실이 보도된지 48시간이 지났지만, 사건은 실마리 조차 잡히지 않았습니다. 미술시장에 내놓는 것조차 불가능한 너무나 저명한 그림을 도둑이 도대체 왜 훔쳤을 지를 두고 온갖 시나리오와 괴이한 추측이 난무했고요. 모나리자는 점점 더 세상을 떠들썩하게 만든 의문의 여인, 그 자체로 의미를 더해갔습니다. 그 즈음 프랑스의 신문과 정부는 반환에 후한 포상금을 약속하기도 했습니다. 재력가들까지 자신의 사비를 털어 모나리자를 찾기 시작했죠. 당시 언론과 경찰에는 수 천통을 넘어서는 제보가 쏟아졌습니다.
그러다 화살은 느닷없이 미국인 백만장자 J. P. 모건에게 날아갔습니다. 프랑스의 걸작을 밀반출할 수 있을 정도로 절대 권력을 가진 이가 바로 그라고 의심한 겁니다. 오죽하면 J. P. 모건이 분개하며 기자들에게 “모나리자는 나에게 온 적이 없다. 그래서 유감이다. 나한테 왔다면 구입해서 프랑스에 돌려주었을 것”이라고 말했을까요.
모나리자의 행방이 열흘이 넘도록 미궁에 빠지자 급기야 시인이자 미술비평가인 기욤 아폴리네르와 화가 파블로 피카소가 유력 용의선상에 오르기에 이릅니다. 그 이유는 간단했습니다. “상상력을 마비시키는 루브르 박물관을 불태우겠다”며 협박했던 이들이 모나리자 실종 사건에 대해선 이상하리만큼 그림을 찬미하는 것 이상으로 하는 게 없었기 때문입니다.
특히 피카소는 과거에 도난당한 미술품 두 점을 산 이력이 있기도 했습니다. 두 거장은 체포되었으나, 증거 불충분으로 풀려났습니다. 과열된 경찰이 초조함에 사로잡혀 상상력으로 빚어낸 어처구니없는 사건이었죠. 행방이 묘연한 모나리자를 둘러싼 사건사고가 끊임없이 이어질수록 그림은 당대에서 가장 전설적인 작품으로 거듭났습니다.
이 즈음에서 모나리자의 면면을 좀더 살펴볼까요. 잘 알려져있다시피 모나리자는 가장자리가 부드럽게 흐려져 초점이 살짝 비켜간 사진 같습니다. 그의 옷차림에서 계급이나 재산 정도, 시대 등이 전혀 읽히도 않죠. 단 한 가닥도 없는 눈썹, 넓은 이마, 살며시 포갠 두 손, 그리고 아주 살짝 올라간 입가. 그저 말없이 관람자의 마음을 건드릴 뿐입니다.
오롯이 나만을 지긋이 바라보는 듯한 그의 눈을 마주하고 있다보면 아리송한 질문만이 더해질 뿐입니다. 과연 모나리자는 누구였을까요. 다빈치는 어떤 생각으로 그를 그렸을까요. 그림 속 여인은 진짜 실재하는 여자였을까요, 아니면 다빈치가 상상으로 그려낸 허구의 인물이었을까요.
모나리자가 사라진 그해 말, 안타깝게도 사라진 미소를 둘러싼 실마리는 단 하나도 남아있지 않았습니다. 수사관들은 파리에서 보르도, 바르셀로나, 브뤼셀, 뉴욕 등지를 찾았고 런던과 마드리드, 모스크바, 겐트 등을 급습했습니다. 그러나 매번 허탕이었죠. 프랑스 정부는 모나리자가 실종된 지 열다섯 달 만에 공식적으로 희망을 접었습니다.
모나리자 절도는 완전범죄로 영영 남을 수도 있었습니다. 그런데 미궁에 빠졌던 이 사건이 2년여 뒤에 수면 위로 다시 떠오르게 되는데요. 이탈리아 피렌체의 미술상에게 느닷없이 도착한 한 편지가 발단이 됐습니다. 서명자의 이름은 ‘레오나르도’. 도난당한 모나리자를 자신이 가지고 있음을 고백한 글이었습니다. 그는 작품을 판매하겠다고 했죠. 미술상은 진품 여부를 판단하기 위해 우피치미술관장과 ‘레오나르도’를 만났고, 경찰에 즉각 신고했습니다.
그렇게 밝혀지게 된 범인은 루브르 미술관에서 액자 유리공으로 일했던 이탈리아 출신 이민자 빈센초 페루자. 그런데 그는 자기를 체포하는 것은 형식적인 절차에 불과하다고 여겼습니다. 실제로 그는 “이탈리아인인 다빈치가 그린 모나리자가 이탈리아 고국으로 반환돼야 한다”고 생각해 이와 같은 범죄를 저질렀다고 진술했거든요. (그림이 도난당한 직후 모나리자 그림의 가치가 크게 상승할 것이라는 동료의 꼬드김에도 영향을 받았던 것으로 전해집니다.)
느닷없이 모나리자가 나타난 이 사건은 그야말로 파란을 일으켰습니다. 전 세계에서 가장 널리 알려진 여인의 얼굴이 2년간 보이지 않다가, 기적처럼, 다빈치가 그림을 그리기 시작한 집에서 그리 멀리 떨어지지 않은 곳에서 나타났거든요. 페루자는 자기 집 침대 밑에 2년 동안 모나리자를 숨겨뒀다고 했죠. 그리고 그는 이 범죄로 고작 6개월간 감옥살이를 했습니다. 사실상 이탈리아에서는 그가 ‘국민적 돈키호테’와 같은 존재였으니까요. 감방엔 온갖 선물과 편지가 넘쳤고 페루자의 보석금을 대신 내주는 이들까지 있었을 정도였습니다.
다만 에두아르도 드 발피에르노라는 사기꾼이 6점의 위작을 진품으로 속여 부자들에게 판매한 전모도 드러났습니다. 발피에르노가 이 일을 벌이기 위해서 페루자를 시켜서 훔치게 한 다음에 위작을 만든 게 아니냐는 말이 나오는 이유이기도 하고요.
우피치미술관에서 2주간의 순회 전시를 마친 모나리자는 1914년 1월 4일, 마침내 다시 루브르 박물관의 원래 자리에 걸리게 됩니다. 그리고 독자분들이 이 글을 읽는 지금 이 순간에도, 영영 유실될 뻔한 모나리자를 보고자 수많은 사람들이 루브르 박물관으로 향하고 있습니다. 모나리자는 그 어떤 높은 신분의 여왕보다도 고귀한 대접을 받으며 호사를 누리고 있는 것이겠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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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참고자료>
사라진 미소, R.A. 스코티 지음, 이민아 옮김, 시사IN북
In pictures: The greatest art heists in history, Nosheen Iqbal and Tim Jonze, The Guardian.