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유진 기자의 브랜드 백과사전, ‘브랜드피디아’
[헤럴드경제=김유진 기자] “혈세로 벤츠를 사는 게 말이 되느냐”고 따지는 이가 있다면, 기자는 “말이 되고 말고”라고 답하겠다. 공공기관 업무용 차량으로 값비싼 수입차를 쓰는 건 사실상 금기지만, 폭설 속 도시를 구하러 출동하는 ‘유니목’(Unimog, 하단 사진)이라면 얘기가 다르다.
기름값만 160만원, 600km 제설작업에 기름 350L이 드는 ‘돈 먹는 하마’지만, 감당 못할 폭설 때마다 찾게 되는 마성의 유니목. 그 정체를 알고나면, 눈길에 마주치곤 “네 덕에 고맙다!”며 아이처럼 인사하게 될 지도?
“이쯤되면 차력쇼” 물불 안 가리고 달리는 비결, 뭐길래?
유니목은 흔히 아는 벤츠의 수려한 외관과는 거리가 먼 특수장비차다. 첫 인상은 다소 겉늙고, 일 잘 할 것 같이 생긴 중고 신입 같다. 가슴팍에 벤츠 로고만은 선명하지만, 이조차도 중장비를 연결하면 가리워져 안 보이기 십상이다.
그도 그럴 것이, 유니목은 2차 세계대전 이후 암울한 상황에 처한 독일이 농업용 다목적 기계로 개발한 ‘장비’다. 이름조차 다목적 엔진구동 농기계를 뜻하는 ‘UNIversal-MOtor-Gerät’의 약자다.
처음엔 농기계로 개발됐지만 세월을 거듭하면서 제설차·소방차 등으로 쓰임이 늘어났다. 4륜구동의 견인력과 뒤틀림에 강한 차체를 무기로 폭설·화재 등 ‘큰 일’ 날 때마다 소환되는 고성능 특수장비차량으로 진화한 것이다. 유니목에 연결할 수 있는 특수장비 종류만 1000가지 이상인 것으로 알려졌다.
유니목은 물불 안 가리는 차로 유명하다. 일단, 칠레 아티카마 사막의 활화산 연구에도 활용될 정도로 내구성이 강하다. 차제가 좌우로 38도 기울어져도 달릴 수 있고, 등판경사 45도까지 감당한다. 그 덕에 오호스델살라드 산 6893m까지 차로 올라 ‘전 세계에서 가장 높은 고도에 오른 차’라는 기록까지 세웠다.
물에서도 강해 절반쯤 ‘수륙양용’에 가깝다. 주요 부품에 방수처리가 돼 있고 공기흡입구가 운전석 높이에 배치돼 있어 수심 1.2m의 강을 차로 건널 수 있다. 차축과 바퀴 사이에 기어를 장착해 차축의 높이를 높이는 ‘포털 엑슬’(Portal Axle) 덕에 일반 차량보다 높이가 높다.
“곧 있으면 팔순인데 현역”...독일 ‘명품차’ 명성 쌓은 실용주의 끝판왕
한국 상륙 50년이 넘었지만 유니목은 아직까지 ‘현역’ 모델이다. 세월에 따라 세부 모델은 진화하고 있지만, 외관에서 보이는 디자인 혁신은 없다.
한국은 1973년부터 유니목을 수입했다. 적설량이 많은 제주시와 국토교통부, 강원도청, 국방부, 한국도로공사, 소방청, 원자력발전소 등이 잇따라 유니목을 들여놨다. 국내에서는 제설 작업과 도로 주변 환경관리용으로 500대 이상 팔린 것으로 알려졌다. 대다수 20여년 가까이 험한 현장만 골라 누빈 뒤에야 새 차로 교체됐다.
국내 도로에서 가장 반길 만한 유니목의 특징은 ‘환상의 커브’다. 앞바퀴 뒤바퀴 휠베이스가 2.8m로 짧아 차를 돌릴 때 선회 반경이 승용차와 비슷한 12m 정도다. 좁은 국내 골목길에서도 여타 트럭보다 자유롭게 움직이는 비결이다. 여러 사람이 수 시간 달려들어 끝내야 할 일을 차 한대로 해결하는데, 곳곳으로 누빌 수 있는 길도 많아 강남구, 강서구, 관악구, 노원구, 서대문구, 성북구 등 여러 자치구에서 구비하고 있다.
제설차로 주로 쓰던 유니목은 2019년 소방차 용도로는 처음으로 UHE(유니목 오프로드 전용 모델) 상위 기종 2대(하단 사진)가 투입됐다. 모델 U5023에 국내형 소방장비를 추가한 장비다.
한 대에 9억 5000만원에 달하는 장비는 어디부터 배치 됐을까? 정답은 강원도 영동 지역을 책임지는 강원도동해안산불방지센터다. 양양과 강릉 사이에서 부는 국지풍과 소나무 군림 지역은 봄철 화재가 대형 산불로 번지기 쉬운 취약 지대이기 때문이다.
국내 소방차로 도입한 U5023 모델은 땅바닥부터 차체 밑바닥까지의 높이가 460㎜에 달한다. 타이어 공기압 조절 시스템(CTIS) 덕에 주행과 동시에 공기압 조절이 가능하다. 공기압을 낮추면 흙이나 낙엽이 많은 산길에서도 미끄러지지 않는다. 도로를 달리다 불길이 버진 산악지대로 급하게 진입하더라도 지체 없이 안전주행 할 수 있다.
유니목은 코레일이 철도차량을 정리할 때도 동원된다. 엔진의 최대 토크가 90kgf·m(킬로그램포스미터)에 달해 총중량 403톤인 KTX-산천 차량의 2배까지 끌 수 있는 힘을 지녔다. 저단기어를 쓰면 시간당 25㎞ 속력으로 1000톤을 견인한다.
전기차 화재로 ‘망신살’...금가는 독일 명품차 명성, 어쩌나
스테디셀러 유니목의 선전과 달리, 최근 벤츠는 가장 심혈을 기울인 전기차 시장에서 고전하고 있다. 지난 8월 인천 청라국제도시 한 아파트 지하주차장에서 벤츠 EQE350+ 전기차에서 화재가 나면서 벤츠가 쌓아온 명성에 금이 갔다.
벤츠 전기차의 배터리 결함을 의심하는 소비자들에게 경찰은 지난 28일 ‘가능성’만 제시한 수사 결과를 내놨다. 배터리팩 내부의 전기적 요인과 외부 충격에 의한 손상 개연성으로 화재가 발생했을 가능성을 배제할 수 없지만, 발화 원인은 단정할 수 없다는 게 골자다.
‘배제하지 못한 가능성’ 앞에 벤츠 전기차를 향한 의심의 눈초리는 여전하다. 청라 화재 차량인 EQE350 모델에 장착된 중국 업체 파라시스 부품을 향한 불신은 해소되지 못했다. 중국 시장에 베팅했던 벤츠의 선택은 현지 소비심리가 위축되자 3분기 실적 악화라는 부메랑으로 돌아왔다.
미래차 시대의 파고를 맞이한 벤츠에게 가장 필요한 건 뭘까. 2차 세계대전 직후 폐허가 된 독일을 일으킨 유니목은 ‘내구성과 실용성’이 그 미덕의 전부였다. 지금 소비자들이 벤츠 전기차에 기대하는 미덕 또한, 미끈한 외관만큼 견고한 ‘내실’일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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