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尹대통령 비상계엄 선포, 요건 불충족 위헌 소지 다분”
헌법학 교수·전직 헌법연구관·법조원로 등 전문가 진단
[헤럴드경제=이용경 기자] 윤석열 대통령이 3일 밤 비상계엄을 선포했다. 박정희 대통령이 사망한 1979년 10·26 사태 이후 45년 만이다. 국회의 발빠른 비상계엄 해제 요구안 가결로 사태는 6시간 만에 일단락됐지만, 헌법 전문가들 사이에서는 계엄 선포 행위를 두고 위헌 소지가 있다는 지적이 나온다.
4일 헤럴드경제 취재를 종합하면, 헌법학 교수 및 전직 헌법재판소 헌법연구관 등 헌법 전문가들은 대체로 윤 대통령의 비상계엄 선포에 위헌 소지가 있다는 의견을 냈다. 헌법 제77조에 따르면 비상계엄은 대통령이 전시나 사변 또는 이에 준하는 국가 비상사태에 군사상 필요가 있거나 공공 안녕질서를 유지할 필요가 있을 때 선포할 수 있는데, 형식적·실질적 요건 모두 갖추지 못했다는 이유에서다.
헌법재판연구원장을 지낸 이헌환 아주대 로스쿨 교수는 이날 오전 헤럴드경제와 통화에서 “이제껏 여러 국가 긴급 사태와 긴급조치 등을 경험해 봤지만, 이번에는 너무 황당해 논평을 하기도 애매하다”며 “6시간 만에 비상계엄이 끝난 상황을 보면서 참으로 ‘희극적’이라는 생각이 들었다”고 말했다.
이 교수는 “계엄 사유도 불충분했다”며 “대통령은 비상사태로 판단했다고 강변할 수 있겠지만, 그게 합리적 설명이 될 수 있느냐의 문제”라고 지적했다. 그는 “헌법상 비상계엄 요건에는 전시, 사변 또는 그에 준하는 비상사태라고 규정돼 있다. 물론 행정부 수장의 입장에서는 각종 특검이라든가 예산 확정 단계 등에서 심기가 불편할 수는 있겠지만, 이를 두고 사변이나 비상사태라고 과연 정의할 수 있는지 의문”이라고 지적했다. 그러면서 “국회와 국가 기능이 정상적으로 잘 굴러가고 있는 상황이라 이번 비상계엄 선포는 조금 황당했다”고 비판했다.
이 교수는 계엄 해제 요구안에 대해 대통령이 거부권을 행사할 수 있는지 여부에 대해서도 “전혀 상관없는 부분”이라며 논란을 일축했다. 그는 “대통령의 법률안 재의요구권 내지 거부권이라고 하는 건 입법 과정에서 대통령이 입법 과정에 관여하는 수단이지만, 국회의 계엄 해제 요구안에 대해 거부하면 그 자체가 헌법에 위반되는 것”이라고 설명했다.
헌법재판소 헌법연구관을 지낸 김진한 법무법인 클라스한결 변호사도 이날 오후 통화에서 “계엄 선포의 요건이 충족되지 않은 상태에서 행해진 대통령의 비이성적인 판단이었다고 생각한다”며 “다만 국무회의 심의 당시 국무위원들이 계엄 선포에 반대를 했었다는 뉴스가 나오고 있고, 한동훈 대표를 비롯한 여당 의원들조차도 처음부터 반대 의사를 분명히 했다는 상황에 비춰 봤을 때 국회의원들이 아주 신속하게 계엄 해제 요구를 해줬다는 점은 무척 다행스러운 지점”이라고 말했다.
김 변호사는 또한 “국회 점거 당시 군인들이나 경찰들도 실제 자신들에게 내려진 명령보다도 소극적으로 임했다는 게 알려지고 있다”며 “그들도 이번 계엄 선포가 정당하지 않다는 것을 스스로 알고 그 부분에 관한 피해를 최소화시키려고 노력한 것으로 보인다”고 덧붙였다. 김 변호사는 “군인들이 공포탄 몇 발만 쐈어도 상황은 전혀 다른 방향으로 흘러갔을 수도 있다”며 “국회에서 계엄 해제 결의를 못했다면 우리는 지금쯤 군인들에 둘러싸여 있을지도 모른다”고 강조했다.
김 변호사는 “비상계엄 선포가 우리사회의 민주주의가 아직 안전하지 않다는 의미이기도 하지만, 이런 일련의 모습들을 보면 각자 맡은 자리에서 ‘최소한의 선을 지키고 있구나’라는 생각이 들게 해 한편으론 다행”이라고 말했다. 다만 김 변호사는 “계엄 선포에 앞서 국무회의 심의를 했던 것은 지금 밝혀졌기 때문에 형식적 절차는 지켰다고 보지만, 중요한 건 계엄 선포의 실체적 요건”이라며 “병력을 동원해서만 질서를 회복할 수 있는 상황에서 내릴 수 있는 게 비상계엄이고, 지금은 그런 상황이 아니라는 것이 누가 봐도 명백한데도 이를 강행하려고 했다는 게 이성적 판단으로는 결코 가능하지 않은 일”이라고 비판했다.
익명을 요청한 또 다른 전직 헌법연구관 A씨는 “이번 계엄은 요건 충족 여부가 불명확한 상태에서 진행된 것이어서 문제가 크다”고 비판했다. B씨는 “헌법 제77조는 대통령이 ‘전시, 사변 또는 이에 준하는 국가비상사태에 있어서 병력으로써 군사상의 필요에 응하거나 공공의 안녕질서를 유지할 필요가 있을 때’에 법률이 정하는 바에 따라 계엄을 선포할 수 있게 규정하고 있는데, 극심한 정치적 견해 대립이 이 요건에 해당한다고 보기 어렵다”고 말했다.
또 그는 “계엄포고문에 의대 관련 갈등을 포함시킨 것을 보면, 대통령실의 정책 추진에 대한 반대를 ‘공공의 안녕질서를 해하는 것’이라 본 것으로 이해돼 대단히 부적절한 측면이 있다”며 “오히려 이번 계엄 선포로 인해 공공의 안녕질서를 해했다고 볼 여지가 있어 향후 정치적 불안정 상태가 지속될 것으로 보인다”고 전망했다.
헌법에 정통한 한 원로 법조인 B씨는 “이상했던 건 국회에서 국회의원 과반수가 계엄 해제를 결의하면 반드시 따라야 하는데, 그런 대비도 없이 비상계엄을 선포했다는 게 도저히 납득되지 않았다는 점”이라며 “계엄이 선포되리라곤 전혀 예상하지 못한 터라 충격이 크다. 국제적으로도 우리나라에 상당히 안좋은 영향이 있을 것 같은데, 어떻게 이러한 중요한 결정(계엄 선포)을 섣불리 할 수 있었던 것인지 국가적으로 참 불행한 일”이라고 안타까워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