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8분간 밝힌 비상계엄 선포 이유
178회 집회·공직자 탄핵·예산안 거론
“야당은 나라 망치는 반국가세력”
지난 4월 총선 북한 개입설 신뢰 인식
“비상계엄은 통치행위”…내란 혐의 반박
[헤럴드경제=최은지 기자] 윤석열 대통령은 12일 12·3 비상계엄 사태 이후 네 번째 담화를 통해 “도대체 2시간짜리 내란이라는 것이 있느냐”라며 28분간 변명으로 일관했다. 지난 7일 세 번째 담화에서 “국민 여러분께 진심으로 사과드린다”는 사과는 무색해졌다.
윤 대통령은 이날 오전 9시43분부터 10시11분까지 ‘국민께 드리는 말씀’이라는 제목의 영상을 통해 담화를 발표하고 “비상계엄에 관한 입장을 밝히기 위해 이 자리에 섰다”고 밝혔다. 윤 대통령은 비상계엄 선포에 대한 정당성을 강조하고 “대통령의 헌법적 결단이자 통치행위가 어떻게 내란이 될 수 있느냐”며 내란죄 혐의에 대해 조목조목 반박했다.
▶민주당에 책임 돌린 尹=윤 대통령은 비상계엄을 발표한 이유로 가장 먼저 야당을 지목했다.
대선 이후부터 178회에 달하는 탄핵 집회, 수심 명의 정부 공직자 탄핵 추진을 언급하며 “자신들의 비위를 덮기 위한 방탄 탄핵이고 공직기강과 법질서를 완전히 무너뜨리는 것”이라고 밝혔다.
‘위헌적’ 특별검사 법안을 27번이나 발의한 것은 “정치 선동 공세”라고 지적하고 “급기야는 범죄자가 스스로 자기에게 면죄부를 주는 셀프 방탄 입법까지 밀어붙이고 있다”며 민주당을 저격했다.
또한 야당의 간첩죄 수정 반대, 국정원의 대공수사권 폐지와 국가보안법 폐지 시도를 언급하며 “국가안보를 위협하는 간첩을 잡지 말라는 것 아니냐”고 항변했다.
윤 대통령은 “북한의 불법적인 핵무장과 미사일 위협 도발에도, GPS 교란과 오물풍선에도, 민주노총 간첩 사건에도, 거대 야당은 이에 동조할 뿐 아니라, 오히려 북한 편을 들면서 이에 대응하기 위해 고군분투하는 정부를 흠집내기만 했다”며 “북한의 불법 핵 개발에 따른 UN 대북제재도 먼저 풀어야 한다고 주장한다”고 밝혔다. 자신의 강경한 대북정책에 대한 야당의 지적에 대해 강한 반발심을 보인 것이다.
내년도 예산안이 정부 증액 없이 총 4조1000억원이 감액된 야당 단독 수정안으로 국회를 통과한 것에 대해 “이런 사람들이야말로 나라를 망치려는 반국가세력 아닌가”라고 목소리를 높였다.
▶계엄군, 중앙선관위 진입한 이유 밝혀=앞서 비상계엄 당시 계엄사령군이 중앙선거관리위원회에 투입해 전산실 서버를 촬영한 이유에 대해서도 구체적으로 밝혔다.
지난해 헌법기관 및 정부 기관에 대한 북한의 해킹 공격으로 국가정보원이 점검에 나섰으나 중앙선거관리위원회가 헌법기관에 대한 국정원의 보안 점검을 거부했던 점을 언급했다. 이후 선관위에서 고위직 자녀 특혜 채용 의혹과 관련해 수사가 시작되면서 문제가 불거지자, 법률상 정보보호기관인 국정원, KISA와 3자 합동으로 보안 컨설팅을 수행하는 방안을 제시했다.
윤 대통령은 “국정원 직원이 해커로서 해킹을 시도하자 얼마든지 데이터 조작이 가능했고 방화벽도 사실상 없는 것이나 마찬가지였다”며 “비밀번호도 아주 단순해 ‘12345’ 같은 식이었다”고 밝혔다.
이어 “지난 2024년 4월 총선을 앞두고도 문제 있는 부분에 대한 개선을 요구했지만, 제대로 개선됐는지는 알 수 없다”며 “그래서 저는 이번에 국방장관에게 선관위 전산시스템을 점검하도록 지시한 것”이라고 말했다. 국회에서 민주당이 175석의 압승을 한 지난 22대 국회의원 선거에 대해 보수 일각에서 제기하고 있는 북한 개입설을 타당하다고 보는 인식이다. 앞서 김용현 국방부 장관은 지난 6일 “많은 국민들이 부정선거에 대해 의혹을 갖고 있어, 이 의혹을 해소하기 위해 필요한 조치를 한 것”이라고 밝힌 바 있다.
▶“비상계엄은 대통령 권한…내란 아냐”=윤 대통령은 비상계엄 선포는 헌법상 대통령의 권한 행사이며, 과거 계엄과 다르게 시행됐다는 점을 강조했다. 내란죄가 성립하지 않는다는 항변이다.
윤 대통령은 “애당초 저는 국방장관에게, 과거의 계엄과는 달리 계엄의 형식을 빌려 작금의 위기 상황을 국민들께 알리고 호소하는 비상조치를 하겠다고 했다”며 “그래서 질서 유지에 필요한 소수의 병력만 투입하고, 실무장은 하지 말고, 국회의 계엄 해제 의결이 있으면 바로 병력을 철수시킬 것이라고 했다”고 밝혔다.
이어 “실제로 국회의 계엄 해제 의결이 있지 국방부 청사에 있던 국방장관을 제 사무실로 오게 해 즉각적인 병력 철수를 지시했다”고 말했다.
또한 “소규모이지만 병력을 국회에 투입한 이유도 거대 야당의 망국적 행태를 상징적으로 알리고, 계엄 선포 방송을 본 국회 관계자와 시민들이 대거 몰릴 것을 대비하여 질서 유지를 하기 위한 것이지, 국회를 해산시키거나 기능을 마비시키려는 것이 아님은 자명하다”고 주장했다. 국회 및 정당 해산은 계엄법에 규정되지 않은 위법이라는 지적을 인식한 것으로 풀이된다.
그러면서 “과거와 같은 계엄을 하려면 수만 명의 병력이 필요하고, 광범위한 사전 논의와 준비가 필요하지만, 저는 국방장관에게 계엄령 발령 담화 방송으로 국민들께 알린 이후에 병력을 이동시키라고 지시했다”며 “만일 국회 기능을 마비시키려 했다면 국회 건물에 대한 단전, 단수 조치부터 취했을 것이고, 방송 송출도 제한했을 것이나, 그 어느 것도 하지 않았다”고 강조했다.
윤 대통령은 “저는 국회 관계자의 국회 출입을 막지 않도록 했고, 그래서 국회의원과 엄청나게 많은 인파가 국회 마당과 본관, 본회의장으로 들어갔고 계엄 해제 안건 심의도 진행된 것”이라며 “질서 유지를 위해 소수의 병력을 잠시 투입한 것이 폭동이란 말인가”라고 반문했다.
윤 대통령은 “대통령의 비상계엄 선포권 행사는 사면권 행사, 외교권 행사와 같은 사법심사의 대상이 되지 않는 통치행위”라고 강조했다.
또한 “국정 마비의 망국적 비상 상황에서 나라를 지키기 위해, 국정을 정상화하기 위해, 대통령의 법적 권한으로 행사한 비상계엄 조치는, 대통령의 고도의 정치적 판단이고, 오로지 국회의 해제 요구만으로 통제할 수 있는 것”이라고 말했다.
이번 담화 역시 취재진이 없이 영상으로만 송출됐다. 윤 대통령은 김 장관이 내란중요임무종사 혐의로 구속된 점, 방첩사령관이 국회의원 등 체포대상자 14명의 명단을 부른 점, 계엄을 선포한 때 지체없이 국회에 통고해야 한다는 헌법 제77조 4항을 지키지 않은 점 등에 대해서는 언급이 없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