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일 서울 종로구 동화면세점 앞에서 열린 ‘전국약사 총궐기대회’에서 참가자들이 요구가 담긴 손팻말을 들고 있다. [연합]
20일 서울 종로구 동화면세점 앞에서 열린 ‘전국약사 총궐기대회’에서 참가자들이 요구가 담긴 손팻말을 들고 있다. [연합]

“국민 생명, 플랫폼 먹잇감 아니다”…약사·약대생 20일 광화문 총궐기

플랫폼 업계 “전면 허용 요구 아니다…안전장치 함께 만들자” 맞불

8월20일 ‘플랫폼 도매업 제한’ 법 통과한 날 정부는 약 배송 확대 논의 발표

코리아스타트업포럼 원격의료산업협의회, 21일 “협의체에 들어와 논의하자”

[헤럴드경제=홍석희 기자] “국민의 생명과 안전은 사설 민간 플랫폼의 먹잇감이 아니다”

지난 20일 서울 광화문에 흰 가운을 입은 약사와 약대생 1만여명이 모였다. 대한약사회가 개최한 ‘국민건강·건강보험 수호 전국 약사 총궐기대회’에서다. 당초 약사회가 예상한 참석자는 5000명이었지만 주최 측 집계로 약사 7000여명과 약대생 3000여명이 거리로 나왔다. 이들이 정부에 요구한 것은 비대면진료 환자를 대상으로 한 의약품 재택수령, 이른바 ‘약 배송’ 확대 정책의 철회다.

권영희 대한약사회장은 이날 “국민의 생명과 안전은 사설 민간 플랫폼의 먹잇감이 아니다”며 정부 정책을 정면으로 비판했다. 이어 “국민의 생명과 안전보다 산업 활성화와 사설 플랫폼의 이익을 앞세운 정책을 더 이상 두고 볼 수 없다”고 했다. 약사회는 약 배송 확대가 의료쇼핑과 의약품 오남용을 부추길 뿐 아니라 약국과 환자가 민간 플랫폼에 종속되는 결과로 이어질 수 있다고 주장하고 있다.

특히 약사회가 날을 세운 곳은 중소벤처기업부다. 권 회장은 집회에서 “국민 생명과 직결된 보건의료 정책에 왜 산업 논리를 앞세운 중소벤처기업부와 원격의료산업협의회가 합작해 제도를 좌우하느냐”고 비판했다. 약사회는 복지부뿐 아니라 중기부와 국무조정실 등을 찾아 항의했고 정부가 추진하는 범부처 민관협의체에도 참여하지 않겠다는 입장을 밝힌 상태다.

약대생들도 가세했다. 김백건 대한약학대학학생협회장은 “이윤 추구에 혈안이 된 민간 배달망 속에서 약이 변질되고 다른 사람 약과 뒤바뀌는 사고가 터진다면 누가 책임지나”라고 말했다. 약 배송 과정에서 발생할 수 있는 오배송과 품질관리, 개인정보 유출 등의 책임 소재가 먼저 정리돼야 한다는 주장이다.

20일 서울 종로구 동화면세점 앞에서 열린 ‘전국약사 총궐기대회’에서 참가자들이 요구가 담긴 손팻말을 들고 있다. [연합]
20일 서울 종로구 동화면세점 앞에서 열린 ‘전국약사 총궐기대회’에서 참가자들이 요구가 담긴 손팻말을 들고 있다. [연합]

이번 충돌의 발단은 지난 8월 20일이다. 국회는 이날 본회의에서 비대면진료 중개업자의 의약품 도매업 진출을 제한하는 약사법 개정안(닥터나우 방지법)을 처리했다. 의약품 도매상 허가 결격사유에 비대면진료 중개업자를 추가하고, 특수관계에 있는 도매상이 해당 플랫폼과 이용계약을 맺은 약국에 의약품을 공급하는 행위도 제한하는 내용이다. 비대면진료 플랫폼 닥터나우가 의약품 도매사업을 하고 있어 업계에서는 이 법을 ‘닥터나우 방지법’이라고 불러왔다.

당시 약사회는 “비대면 진료 중개업자의 의약품 도매업 진입에 따른 이해충돌을 차단했다”며 법 통과를 환영했다. 반면 벤처기업협회는 다음 날 “도매업 영위라는 특정 사업 모델 자체를 원천적으로 금지하는 가장 강한 방식의 금지 입법”이라고 반발했다. 협회는 “신산업 분야의 진입규제와 직역 단체의 기득권에 의해 스타트업의 작은 혁신이 좌절됐다”고 주장했다.

불씨는 같은 날 정부 발표로 다시 살아났다. 정부는 8월20일 약사법 개정안이 국회를 통과한 당일 “모든 비대면 진료 환자를 대상으로 한 약 배송 확대 논의를 시작하기로 했다”고 밝혔다. 플랫폼의 의약품 도매업 진출에는 법으로 제동을 걸면서도, 환자가 약을 집에서 받을 수 있는 범위는 별도로 확대하겠다는 방향을 제시한 것이다.

오는 12월 24일부터 시행되는 개정 의료법에서는 재택수령이 가능한 환자를 섬·벽지 거주자, 장기요양수급자, 장애인, 감염병 환자, 희귀질환자 등으로 제한하고 있다. 정부는 이보다 대상을 넓히는 방안을 논의하면서 복지부·중기부·국무조정실과 약사단체, 비대면진료 중개업체 등이 참여하는 범부처 민관협의체를 꾸리겠다고 밝혔다.

코리아스타트업포럼 원격의료산업협의회는 21일 자료를 내고 “의약품 재택수령의 무조건적인 확대를 요구하는 것이 아니다. 충분한 안전장치가 마련돼야 한다는 데 동의한다”고 밝혔다. 이어 “의약품 재택수령 관련 논의를 ‘전면 허용’과 ‘전면 금지’ 중 하나를 선택하는 문제로 볼 필요는 없다”며 “약사의 복약지도 방식, 수령자 본인확인, 배송과정의 추적·관리, 의약품 품질관리, 사고 발생 시 책임체계 등 환자 안전을 위해 필요한 기준을 하나씩 수립해나가는 과정으로 보아야 한다”고 했다.

약사사회가 우려하는 플랫폼의 영향력 확대에도 답을 내놨다. 협회 측은 “플랫폼의 불공정 행위와 약국의 플랫폼 종속 가능성에 대한 우려 역시 가볍게 생각하지 않는다”며 “우리 스스로 점검해야 할 부분은 점검하고, 제도적으로 필요한 기준과 안전장치를 마련하는 논의에도 적극 참여하겠다”고 밝혔다.

그러면서 약사회에도 협의 참여를 요구했다. 업계는 “우려가 있기 때문에 대화가 필요하다”며 “각자의 입장을 성명과 보도자료를 통해 반복하는 것만으로는 환자 안전과 의약품 접근성을 함께 보장할 수 있는 수령체계를 만들기 어렵다”고 했다.

20일 서울 종로구 동화면세점 앞에서 열린 ‘전국약사 총궐기대회’에서 참가자들이 요구가 담긴 손팻말을 들고 있다. <연합뉴스>
20일 서울 종로구 동화면세점 앞에서 열린 ‘전국약사 총궐기대회’에서 참가자들이 요구가 담긴 손팻말을 들고 있다. <연합뉴스>

원격의료산업협의회가 꺼내 든 또 다른 쟁점은 환자의 ‘접근성’이다. 비대면진료를 받을 수 있도록 해놓고 처방약은 환자가 직접 약국을 찾아가 받아야 하는 현행 구조가 비대면진료의 취지와 맞지 않는다는 것이다.

협회측은 “의료취약지역 주민과 거동이 불편한 환자뿐 아니라 육아·돌봄이나 야간·휴일 등의 이유로 처방을 받고도 약을 받기 어려운 환자들의 불편은 제도 설계 과정에서 반드시 함께 살펴야 할 문제”라고 주장했다. 이어 “환자 안전과 의약품 접근성은 양자택일의 문제가 아니라 함께 달성해야 할 가치”라고 했다.

환자·소비자단체에서도 비슷한 주장이 나온다. 한국소비자연맹과 한국환자단체연합회 등은 지난 9일 “비대면진료는 의약품 수령까지 포함해야 완성된다”고 밝혔다. 다만 이들 단체 역시 플랫폼의 과도한 영향력을 경계하며 “안전한 배송체계를 설계하고 플랫폼의 불공정한 유인·알선 행위를 엄격하게 규제하라”고 요구했다.

정부는 신중한 태도다. 곽순헌 보건복지부 보건의료정책관은 지난 3일 “12월 제한적 시행을 통해 안전성과 동네약국 중심의 시장 질서를 먼저 검증하는 것이 원칙”이라고 밝혔다. 정부는 동네약국 중심의 약 배송 체계를 유지하면서 약 배송업체 선택권을 약사에게 부여해 약국이 플랫폼에 종속되는 것을 막는 방안도 검토하고 있다.

약 배송이 확대될 경우 약사의 역할을 어떻게 보상할지도 쟁점이다. 복지부는 비대면 환경에서 전화나 영상 등을 이용한 복약지도를 강화하고 이에 대해 수가를 추가 보상하는 방안을 검토하고 있다. 약 배송으로 환자가 약국에 직접 오지 않더라도 약사의 복약지도 기능이 약화되지 않도록 별도의 보상체계를 마련하겠다는 구상이다.


hong@heraldcorp.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