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최근 3년 태풍 누적에너지 67% 급감
- 해수 혼합 약화로 해양생태계 위협
[헤럴드경제=구본혁 기자] 태풍이 오지 않으면 바다는 안전할까. 오히려 정반대의 상황이 벌어질 수 있다는 경고가 나왔다. 태풍이 줄어들면서 바닷물을 뒤섞는 힘이 약해지고, 고수온과 저염수, 산소 부족 현상이 장기화할 수 있다는 것이다.
21일 한국해양과학기술원(KIOST)에 따르면 2024년부터 최근 3년간 우리나라 해안선 200해리(약 370㎞) 이내를 통과한 태풍은 연평균 2.33개로 집계됐다. 1991~2020년 기후 평년 평균인 3.27개보다 28.6% 감소한 수치다.
태풍의 체류시간과 에너지는 더욱 큰 폭으로 줄었다. 평균 체류시간은 평년 66.44시간에서 31.26시간으로 53% 감소했다. 풍속과 지속시간을 반영한 누적 태풍에너지(ACE)는 평년보다 67.2% 낮았다. 평균 강도 역시 55.71노트에서 45.80노트로 약화됐다.
해안에 더 가까운 100해리(약 185㎞) 이내에서는 태풍 통과 수가 55.2%, 체류시간은 71.7% 감소했다. 누적 태풍에너지는 무려 88.6% 급감했다.
문제는 태풍 감소가 해양환경에 예상치 못한 부작용을 초래할 수 있다는 점이다.
태풍은 강한 바람과 파도로 바다 표층과 하층을 뒤섞는 역할을 한다. 뜨거워진 표층의 수온을 낮추고 수온과 염분 차이로 바닷물이 층을 이루는 ‘성층’ 현상을 약화시킨다.
하지만 태풍이 줄면 바닷물이 섞일 기회도 감소한다. 여름철 폭염과 강수, 하천수 유입으로 형성된 고수온·저염수층이 장기간 유지될 가능성이 커지는 것이다.
김성훈 KIOST 해양기후예측센터장은 “태풍의 통과 횟수와 체류시간이 줄면 수직 혼합의 기회도 줄어든다”며 “표층의 고수온·저염수가 상대적으로 오래 지속될 수 있다”고 설명했다.
특히 성층이 장기간 유지되면 저층으로 산소 공급이 원활하게 이뤄지지 않는다. 유기물 분해 과정에서 산소 소비는 계속되면서 바닷속 산소가 부족해지는 ‘빈산소’ 현상이 심화할 수 있다.
수심이 얕고 해수 교환이 제한적인 연안과 만에서는 피해가 더욱 커질 수 있다. 고수온과 저염수, 빈산소가 동시에 장기화하면 양식생물의 스트레스와 폐사 위험이 높아지고 저층 생태계와 수질에도 악영향을 미칠 수 있다는 분석이다.
태풍 감소는 중국 양쯔강에서 유입되는 저염수의 이동에도 영향을 준다.
여름철 양쯔강에서 유입된 담수는 바닷물보다 가벼워 표층에 저염수층을 형성한다. 계절풍과 해류를 따라 제주와 남해 연안까지 확산하면 양식장 등에 저염분 피해를 일으킬 수 있다.
노수연 KIOST 선임연구원은 “태풍이 줄면 저염수층이 충분히 희석되지 않아 더 넓게, 더 오래 유지될 수 있다”고 설명했다.
다만 올해는 동중국해에 영향을 준 태풍의 저기압성 순환과 평년보다 강한 동풍으로 저염수가 제주·남해가 아닌 황해 쪽으로 이동하면서 뚜렷한 저염분 피해는 나타나지 않았다. 태풍이 직접 통과하지 않더라도 바람과 해류를 변화시켜 저염수 이동 경로에 영향을 미칠 수 있다는 의미다.
태풍이 없는 동안 축적된 해양열이 다음 태풍을 더욱 강하게 만들 수 있다는 우려도 나온다.
일반적으로 태풍이 지나가면 차가운 하층수가 올라오면서 해수면 온도가 낮아지고 태풍 발달을 억제한다. 반면 따뜻한 수층이 깊거나 표층 저염수층이 혼합을 방해하면 해수면이 충분히 식지 않아 태풍에 열에너지가 지속적으로 공급될 수 있다.
김경옥 KIOST 해양순환기후연구부장은 “태풍이 적게 왔다고 바다가 안정적인 것은 아니다”며 “태풍이 오지 않는 동안 바다에 쌓인 열과 변화가 다음 태풍과 연안 바다를 위협할 수 있다”고 강조했다.
nbgkoo@heraldcorp.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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