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희대 대법원장이 22일 이재명 대통령의 대법관 후보자 재제청 요구를 “헌법적 근거가 없다”며 거부했다. 청와대는 “국민에 의해 선출된 대통령의 임명권을 무력화하는 것”이라고 반박했다. 이에 앞서 조 대법원장은 지난달 18일 신임 대법관 후보자에 대해 청와대와 사전 협의하는 관례를 깨고 손봉기 대구지법 부장판사를 서면으로 임명 제청했다. 그러자 청와대는 지난달 28일 “절차적 완결성을 갖추지 못했다”며 반려하고 재제청을 요구했다. 대법원장의 제청권이 먼저인지, 대통령의 임명권이 우선인지를 두고 사법부와 행정부가 정면으로 충돌하는 헌정사 초유의 사태다. 헌법 최고 권력기관들이 “법대로 하자”며 서로 멱살을 쥐고 국가공동체를 안으로부터 흔드는 격이다.

조 대법원장의 임기는 내년 6월까지다. 이 대통령은 그로부터 꼭 3년 후 퇴임한다. 국민의 삶과 국가공동체의 시간에 견준다면, ‘곧’ 자리에서 물러날 사람들이다. 그런 이들이 벌써 헌정사에 중대한 오점을 남겼다. 문제가 된 노태악 전 대법관의 후임 자리는 지난 3월 이후 이미 200일 이상 공석으로 사상 최장이다. 대법관 1인당 연간 평균 사건 처리 건수는 3000~5000건이다. 국민의 사법적 이익, ‘재판받을 권리’가 중대하게 침해받고 있다.

대법원장과 청와대 모두 헌법을 내세워 서로를 비판했지만, 국민에겐 ‘눈가리고 아옹’이다. 법 조항이 문제가 아니라 제한된 임기의 헌법기관 간 ‘권력투쟁’이 본질이라는 사실을 국민이 모르고 있다고 생각하면 오산이다. 대통령 선거 전이었던 지난해 5월 대법원은 2심 무죄였던 이 대통령 공직선거법 사건을 파기환송했고, 대선 후 여당이 된 더불어민주당은 조 대법원장 탄핵을 위협하는 한편, 대법관을 종전 14명에서 26명으로 증원하는 법안을 통과시켰다. 조 대법원장은 이 대통령 미국 순방 출국 다음날 바로 재제청 거부 입장을 발표했다.

‘사법부 흔들기’와 ‘정권 흔들기’가 체면치레도 없이 노골적이다. 대법원장은 지지율 떨어진 정권을 몰아붙여 국정과제야 어떻게 되든 말든 사법부의 권익만 지키려고 해선 안된다. 청와대와 여당은 증원한 대법관 12명과 현 정부 내 임기가 끝나는 10명의 자리를 모두 자기 마음에 드는 인사로 채우려는 욕심도 버려야 한다. 이번 사태로 잘 알려졌듯 헌법엔 대통령의 임명권, 대법원장의 임명 제청권, 국회의 임명 동의권만 규정돼 있다. 그 외엔 3권 분립과 견제·균형의 원리에 바탕해야 한다는 게 헌법 정신일 것이다. 시정잡배 드잡이마냥 “안되면 법대로”나 외쳐선 될 일이 아니다. 대법원장은 선출 권력을, 대통령은 사법부 독립성을 존중해야 한다. 기껏 임기 몇 년의 사람들이 역사를 그르쳐선 안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