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년 대법원 처리 본안사건은 5만4951건
대법원장·행정처장 外 대법관 1인당 4579건
하루 12건 이상 처리한 셈…공백 해소는 요원
[헤럴드경제=양근혁 기자] 대법관 한 명이 2024년 한 해 동안 처리한 상고심 본안사건 수가 단순 계산으로 4500건을 웃도는 것으로 나타났다. 올해 3월 노태악 전 대법관이 퇴임하면서 생긴 공백의 장기화로 대법원의 사건 처리 부담은 그보다 더 커진 상황인데, 대법원과 청와대 간 갈등이 전면전 양상으로 치달으면서 후임 대법관 인선 절차의 재개는 당분간 이뤄지기 어려워졌다는 분석이 나온다.
24일 대법원 법원행정처가 지난해 발간한 ‘2025 사법연감’을 보면, 2024년 대법원이 처리한 본안사건은 총 5만4951건이다. 전원합의체 선고에만 참여하는 대법원장과 재판 업무를 하지 않는 법원행정처장을 제외한 12명의 대법관을 기준으로 계산하면 1인당 연간 4579건, 하루 평균 12건이 넘는 사건을 처리한 셈이다. 사법연감에는 매년 대법원을 비롯한 각급 법원의 사건 처리 현황 등이 담긴다.
노 전 대법관이 퇴임한 이후 대법관이 공석인 상황은 200일 넘게 지속되고 있다. 노 전 대법관이 후임자 없이 임기를 마치면서 대법관 공석에 따른 상고심 사건 처리 부담이 불어나고 있다는 지적은 법조계에서 거듭 제기돼 왔다.
대법관 공백은 우선 소부 구성에 직접적인 영향을 미치고 있다. 대법원은 대부분의 상고심 사건을 대법관 4명으로 구성된 3개 소부에서 처리한다. 지난 19일 기준 대법원 1부와 2부에는 각각 대법관 4명이 배치된 반면 3부는 오석준·엄상필·이숙연 대법관 등 3명으로 구성돼 있다. 법원조직법에 따라 3명 이상으로 구성된 부(部)에서 사건을 심리할 수 있지만 대법관 공백만큼 다른 대법관이 처리해야 할 사건 부담이 늘어날 수밖에 없는 상황이다.
대법관 공석의 악영향은 소부 심리에만 그치지 않는다. 대법원장과 법원행정처장을 제외한 대법관들이 참여하는 전원합의체에도 주요 사건들이 올라와 있다. 현재 김건희 여사의 도이치모터스 주가조작 등 혐의 사건과 한덕수 전 국무총리, 이상민 전 행정안전부 장관의 내란 혐의 사건 등이 전원합의체에서 심리 중이다. 전원합의체의 경우 합의 과정에서 만장일치거나 압도적으로 표결이 되지 않으면 공석을 두고 결론내는 것이 적절하지 않다고 보고 표결을 자제하는 상황이 생기기도 한다.
대법관 공백 언제까지 가나…대법원-청와대 전면전
더 심각한 문제는 공백 해소 시점을 가늠하기조차 어려워졌다는 것이다. 조 대법원장이 청와대의 재제청 요구를 공식적으로 거부하고, 청와대도 물러서지 않고 정면으로 맞서면서다.
조 대법원장은 지난달 18일 노 전 대법관 후임으로 손봉기 대구지법 부장판사를 제청했다. 그러나 청와대는 같은 달 28일 손 부장판사 대신 기존 후보군에 있는 다른 후보자를 제청해 달라는 취지로 요구했다. 조 대법원장은 이후 25일간의 장고 끝에 재제청 요구에 응하지 않겠다는 입장을 22일 밝혔다.
조 대법원장은 당시 입장문에서 “대통령의 국법상 행위는 국무총리와 관계 국무위원이 부서한 문서로써 한다”며 “이번 재제청 요청 관련 문서로는 2026. 8. 28. 자 ‘대법관 후보자 재제청 요청’이 있을 뿐인데, 거기에는 재제청을 요청하는 구체적인 사유와 그 헌법적 근거가 적혀 있지 않다”고 지적했다. 그러면서 “달리 재제청 요청을 정당화할 구체적인 헌법적 근거와 사유를 찾을 수 없다”며 “그러므로 재제청 요청에 응할 수 없음을 밝힌다”고 했다.
이에 청와대는 두 차례 입장을 내고 조 대법원장을 비판했다. 첫 번째 입장문을 통해서는 “대통령의 제청 반려에도 불구하고 노 전 대법관 후임 대법관 후보자를 재제청하지 않겠다는 대법원장의 입장 발표에 대해 깊은 유감을 표한다”며 “대법원장의 입장 발표는, 대법원장의 제청권이 대통령의 임명권보다 우위에 있다는 것으로 대한민국 헌법에 위배되는 인식”이라고 밝혔다.
이후 두 번째 입장문에선 “대법원장은 대법관 후보자 재제청 요청과 관련한 입장을 언론에 전하며, 서두에 ‘대통령의 국법상 행위는 국무총리와 관계 국무위원이 부서한 문서로써 한다’라고 했다”며 “이는 마치 대통령의 재제청 요청이 헌법상 문서주의와 부서제도를 준수하지 않은 흠결이 있는 것처럼 사실관계를 왜곡하는 입장 발표”라고 날을 세웠다.
청와대는 “대통령의 2026. 8. 28.자 ‘대법관 후보자 재제청 요청’ 공문은 전자문서로 시행됐고, 그 전자문서에는 국무총리가 부서했다”며 “그간 대법원장 및 대법관 임명 시 국무총리의 부서만으로 임명이 이루어졌다. 관계 국무위원의 부서가 없어 제청 반려 및 재제청 요청이 무효라는 취지라면, 지금까지 국무총리 부서만으로 임명된 대법원장과 대법관에 대한 임명 효력을 스스로 부정하는 것”이라고 했다.
또 “제청을 반려하는 헌법적 근거는 공문에서 분명히 밝혔고, 구체적인 사유에 대해서는 수석대변인 브리핑을 통해 국민들께 소상히 말씀드렸다”며 “국민들이 다 아시는 반려 사유를 유독 대법원장만 ‘공문에 그 내용이 없으니 모르겠다’ 라고 하는 것인지 그 의도를 가늠하기 어렵다”고 했다.
조 대법원장은 이튿날인 23일 대법원을 통해 또 다시 입장문을 냈다. 첫 번째 입장문에 대한 추가적인 설명을 보태기 위해서다. 조 대법원장은 “먼저, 개인적인 부친상과 국제행사 준비 관계로 입장 발표 시기가 늦어진 점, 양해 부탁드린다”고 운을 뗐다.
이어 “(22일 밝힌) 입장문 내용 중 대통령의 국법상 행위는 부서된 문서로써 하여야 한다는 부분은, 헌법 제82조에 따라 대통령의 국법상 행위는 형식을 갖춘 문서로써 하고 그 해석도 오로지 문서에 따라 이뤄져야 한다는 원론적인 내용이지, 8월 28일자 공문에 형식적 하자가 있다는 취지는 아님을 말씀드린다”고 설명했다.
아울러 “특히 재제청 요청과 관련해 언론 등을 통해 알려진 ‘제청과정에서의 절차적 흠결’이 존재한다는 사유는 헌법과 법률의 규정에 기초해 볼 때 수긍하기 어렵다”고 했다. 그러면서 “대법관 공백 장기화로 인한 국민 불편에 대해서는 송구스럽게 생각하고 있으며, 신속히 절차가 마무리될 수 있도록 최선을 다하겠다”고 강조했다.
양측 모두 헌법을 거론하며 평행선을 달리고 있어 후임 인선을 재개할 뚜렷한 경로가 보이지 않는다는 우려가 나온다. 그간 법조계에서는 조 대법원장이 청와대의 요구대로 기존 대법관후보추천위원회(추천위)가 추천한 후보군 가운데 손 부장판사를 제외한 다른 후보자를 다시 제청하거나, 추천위를 새로 구성해 절차를 원점에서 밟는 방안이 거론됐다. 하지만 현재는 어느 쪽도 곧장 추진되기는 어려워졌다는 분석이 나오고 있다.
청와대와 대법원이 제청·임명 절차를 둘러싼 입장 차를 좁히지 못할 경우, 조 대법원장의 퇴임까지 대법관 한 자리가 비어 있는 이례적인 상황이 이어질 가능성까지 제기된다. 조 대법원장의 임기는 내년 6월까지다.
yg@heraldcorp.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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