윤경식 한국건축 회장

노자의 ‘비움’이 바로 AI시대 해법

누구를 위해 지을지는 인간의 몫

이상섭 기자
이상섭 기자

“고백할 게 있습니다. 최근 20년간 건축 책을 안 봤습니다. 디자인 책도 본 적이 없어요. 그런데 그 20년 동안 세계적인 수준에 올랐습니다.”

윤경식 한국건축 회장은 2일 서울 동대문디자인플라자에서 ‘비욘드 비주얼’을 주제로 열린 헤럴드디자인라운지 2026의 마지막 세션에서 이같이 말했다. 발표 주제는 ‘불길을 넘어 새로운 탄생(From ashes to rebirth)’이었다.

윤 회장은 “작품은 보이고 만져지지만 그것을 만든 작가의 생각과 동선은 보이지 않는다”며 “그 보이지 않는 영역을 찾아내는 것이 창의력이고 인문(人文)”이라고 강조했다. 이어 “인문은 인간이 그리는 무늬이고, 아무도 가지 않은 길에 어떤 무늬를 그려갈지 꿈꾸는 것이 상상력”이라고 말했다. 그는 ‘비욘드’의 뜻에 대해 반야심경 끝 구절 ‘아제아제바라아제’ 즉 ‘건너가자, 저 피안의 세계로’라고 해석했다.

그가 이날 가장 힘줘 말한 것은 ‘비움’이었다. 윤 회장은 노자의 ‘위학일익 위도일손(爲學日益 爲道日損)’을 인용했다. 그는 “지식과 개념, 경험을 날마다 덜어내면 무위에 도달한다”며 “2500년 전 노자가 인공지능(AI) 시대를 예견한 것”이라고 말했다.

비움의 철학은 작품으로 증명됐다. 그는 전남 장성 육군 상무대 장교 명상센터에 대해 “디자인이라고는 수평선 세 줄뿐”이라며 “심사하러 온 철학자들이 ‘안에 들어가 보지 않아도 되겠다’고 했다”고 소개했다.

윤 회장은 지금까지 수상한 국제 건축상 25개 가운데 12개가 교회·사찰과 같은 종교 건물에서 나왔다고 했다. 비결은 ‘종교 색을 덜어낸 것’이었다. 경기 군포의 아파트 단지 안에 지은 ‘사랑빚는교회’는 교회처럼 보이지 않아 주민들이 다 지을 때까지 교회인 줄 몰랐다. 전남 장성 백양사의 납골당 ‘영혼의 힐링하우스’는 죽음을 어둡고 무서운 것이 아닌 잔치처럼 밝게 표현했다. 두 건물은 모두 독일 iF 디자인 어워드를 받았다.

윤 회장은 “선진국은 비주얼이 아니라 비욘드에 상을 준다”며 “비주얼에 투자하면 한계가 빨리 온다”고도 했다.

그는 “하루에도 수많은 사람이 사회관계망서비스(SNS)로 엮여 산다. 우리는 인드라망을 뼈저리게 느끼며 산다”고 말했다. 인월사는 올해 영국 세계건축상(WA Awards) 대상을 받았고 발길이 이어지는 강릉의 명소가 됐다.

윤 회장은 강연 말미에 자신만의 발상법도 공개했다. 덕(德)의 옛 글자에 담긴 ‘직심(直心)’과 장자의 ‘오상아(吾喪我)’다. 그는 “툭 드는 생각을 잡아라. 데이터를 찾고 분석하면 늦는다”며 “지식과 경험으로 만들어진 나를 장례 치러야 남는 것이 창의력”이라고 강조했다.

그러면서 “창의력은 이해와 분석이 아니라 감각과 용기, ‘와이 낫(Why not)’”이라며 “제 작품을 보고도 감동하지 마시라. ‘좀 했네’ 하는 게 창의력의 출발”이라고 말했다. 전현건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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