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때 스페인 경제 견인 핵심 항구
1980년대 공장들 줄도산에 실업률 35%까지 ↑
대기업 글로벌 진출하자 협력사들도 산업전환
정부, 항만 투자 등 ‘후방 지원’
현재는 해상풍력으로 항만 포화
[헤럴드경제(스페인 바스크)=박혜원 기자] 스페인 북부에는 도시 이름보다 랜드마크가 더 유명한 자치 지방이 하나 있다. 쇠퇴한 도시 경제를 랜드마크 하나로 되살린다는 ‘빌바오 효과’로 잘 알려진 빌바오 구겐하임 미술관의 도시, ‘바스크’다.
발전단지 전무에도 민관 협업으로 생태계 조성
중공업이 밀집한 바스크는 한때 스페인 경제를 견인하는 핵심 항구 도시였다. 그러나 1980년대 들어 산업이 경쟁력을 잃고 공장들이 줄지어 도산하면서, 실업률이 한때 35%까지 치솟았다. 당시 스페인에선 오래된 공황에서 빠져나오지 못하고 있는 바스크를 ‘블랙홀’이란 멸칭으로 부를 정도였다.
그러나 최근 들어 바스크 경제에는 다시 활기가 돌고 있다. 글로벌 해상풍력 시장이 급격하게 커지면서, 대기업 주도 아래 오래된 조선 및 철강 지역 기업들이 ‘해상풍력’으로 산업 전환에 잇달아 성공하면서다.
특이한 점은 정작 바스크엔 해상풍력 발전단지가 한 곳도 없다는 점이다. 그럼에도 대기업의 공격적인 수출, 이들과 협력한 지역 중소기업, 정부의 후방 지원이 맞물려 새로운 생태계를 만든 이례적인 사례다.
2000년대 들어 해상풍력 시장이 열린 이후, 바스크는 ‘에너지 도시’로 완전히 탈바꿈 됐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바스크 무역투자청에 따르면 해상풍력 밸류체인 공급망에 진입해 있는 바스크 기업은 150개, 이들이 창출하는 글로벌 매출은 연간 157억유로(약 23조원)에 달한다.
기업들 30년간 빌바오항에 25억유로 투자
지난 2일 방문한 430㎡ 규모의 빌바오항에선 바스크 해상풍력 산업의 규모를 짐작할 수 있었다. 빌바오항은 스페인에서 유일하게 해상풍력을 주력으로 다루는 항만이자, 북부 최대 항만이다.
욘 아나가스티 빌바오항 개발 및 운송 총괄은 이날 “지금 빌바오항은 에너지 기업들로 포화 상태”라며 “작년에 이어 올해도 증설을 진행 중”이라고 밝혔다.
이날 항만엔 해상풍력 발전기 지지에 쓰이는 대형 타워 세그먼트들이 ‘지멘스 가메사(Simens Gamesa)’라고 쓰인 포장지에 덮인 채 운송을 기다리고 있었다. 해상풍력 발전 효율을 높이기 위해 글로벌 기업들이 공격적으로 발전기 규모를 키우면서, 타워 세그먼트도 높이만 최대 40m에 달할 정도로 커졌다.
이밖에 가로 지름만 10m에 달하는 해상풍력 발전기 하부 구조물과 전력 케이블을 적재한 드럼 등 수십가지의 기자재들이 항만 곳곳에 쌓여 있었다. 물류 거점 인근에서 해상풍력 관련 기자재를 조립해 빠르게 수출하기 위해 모인 기업들이다.
항만에 생산 기지를 투자한 기업에겐 50년간 부지를 사용할 권리가 주어진다. 이런 유인책 아래 기업들이 지난 30년간 빌바오항에 투자한 돈은 25억유로에 달한다. 공공도 10억유로를 투자해 이를 뒷받침했다. 아나가스티 총괄은 “기업들로부터 항만 사용료를 받아 다시 항만 개발에 투자하는 구조”라고 설명했다.
대기업·中企 상생 구조…“풍력 화물, 일자리 큰 기여”
바스크 해상풍력 생태계의 가장 큰 특징은 지역 내 대기업과 중소기업들의 ‘상생’ 구조다. 예를 들어 지멘스 가메사는 풍력 터빈 글로벌 선도 기업이지만 타워 세그먼트 외에도 나셀, 케이블, 하부 구조물 등 핵심 기자재를 만드는 중소기업들과 협력하지 않으면 혼자 시장에 납품할 수 없다.
아나가스티 총괄은 “풍력 관련 화물은 지역과 국가의 산업 생태계, 특히 일자리에 크게 기여한다”며 “풍력 관련 공장에 부지를 제공하는 건 바스크 지역 전체 발전을 고려한 비전”이라고 강조했다.
바스크 해상풍력 산업을 이끈 건 지역의 양대 대기업, 풍력 터빈 기업 지멘스 가메사와 에너지 발전사 이베르드롤라다. 해상풍력 설비가 본격적으로 늘어난 2000년대 이들 기업이 글로벌 시장에서 활약하면서 지역 중소기업에 관련 주문을 넣어, 자연스럽게 산업전환이 이뤄졌다.
해상풍력 공급망에 진입하는 기업들이 늘면서 빌바오 항만도 매년 투자를 이어가고 있다. 빌바오 항만은 지난해 3570만유로를 투입해 신규 부지 31㎡와 부두 2개를 조성했다.
현지 보도에 따르면 올해 항만 예산에는 8710만 유로가 편성돼, 부두 역할을 하는 콘크리트 케이슨 15개를 새로 설치한 상태다. 최근에는 해상풍력 하부구조물 기업 하이제아 윈드(Haizea Wind)가 12만㎡의 부지를 새롭게 얻었다.
‘전력 회사→에너지 기업’ 이베르드롤라 “해상풍력이 지역경제 견인”
1992년 전력 회사로 시작, 글로벌 친환경 에너지 기조에 맞춰 에너지 기업으로 전환한 이베르드롤라는 설립 초기부터 지역 기업들과 함께 성장한 사례다.
지난달 30일 만난 베고냐 디아스 곤살레스 이베르드롤라 아시아·태평양 사업 담당 책임은 “이베르드롤라가 사업을 시작한 1970년대부터 바스크에는 전기 관련 부품을 생산하는 지역 기업들이 많이 있었다”며 “이어 재생에너지 분야로 사업을 확장하는 과정에서도 지역 공급업체들을 적극적으로 활용하고 협력했다”고 설명했다.
글로벌 에너지 기업으로 성장한 이베르드롤라는 지역경제를 살리기 위한 방안으로 ‘공급망’ 구축을 강조했다. 곤살레스 책임은 “해상풍력 같은 대규모 산업은 결국 산업 전반을 이끌어내는 ‘견인 효과’를 만든다”며 “주로 대기업이 주목 받지만 대기업들 역시 자체적인 공급업체를 가지고 있고, 그 업체들은 중소기업인 경우가 많아 하나의 연결된 공급망을 구성하게 되는 것”이라고 강조했다.
klee@heraldcorp.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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