걸프 석유수출 전쟁 이전의 81% 회복
원유 91% 돌아왔지만 정제유는 60%
중동→亞 유조선 운임 하루 120만달러
“원유 부족서 정제유·운송 위기로 이동”
[헤럴드경제=서지연 기자] 이란 전쟁으로 막혔던 중동의 원유 수출이 빠르게 정상화하고 있다. 걸프 산유국의 원유와 석유제품 수출량은 전쟁 이전의 80%를 넘어섰고, 원유만 놓고 보면 90% 이상 회복했다.
그런데 국제유가는 여전히 배럴당 100달러 안팎에서 움직이고 있다. 원유를 생산하지 못해서가 아니라 생산한 원유를 안전하게 운반하고 휘발유·경유·항공유 등으로 정제하는 비용이 급증했기 때문이다. 이란 전쟁이 세계 석유시장의 병목을 ‘원유 공급’에서 ‘운송과 정제’로 옮겨놓았다는 분석이 나온다.
6일(현지시간) 로이터통신에 따르면 이란을 제외한 사우디아라비아와 아랍에미리트(UAE), 쿠웨이트, 카타르, 오만, 바레인, 이라크 등 걸프 산유국의 9월 원유·콘덴세이트·정제유 수출량은 하루 평균 1920만배럴을 기록했다.
이란 전쟁이 시작된 지난 2월 28일 이전 1년간 평균인 하루 2360만배럴의 81% 수준이다.
특히 원유와 콘덴세이트 수출은 전쟁 이전의 91%까지 회복했다. 한때 호르무즈 해협 봉쇄로 세계적인 원유 공급난이 현실화할 것이라는 우려가 나왔지만 산유국들이 새로운 수송 방식을 찾아내면서 예상보다 빠르게 수출량을 끌어올리고 있다.
사우디의 회복세가 두드러졌다. 사우디의 원유·콘덴세이트 수출량은 8월 하루 240만배럴 수준에서 9월 660만배럴로 420만배럴 급증했다. UAE와 이라크의 수출도 늘면서 다른 걸프 산유국의 감소분을 상당 부분 상쇄했다.
호르무즈 해협을 통과하는 원유 물동량도 살아나고 있다. 시장조사업체 클레플러에 따르면 지난달 26일 기준 호르무즈 해협을 통과한 원유는 7일 이동평균 하루 1420만배럴로 전쟁 이전의 약 80%까지 회복했다.
하지만 원유 가격은 물동량만큼 빠르게 정상화하지 않고 있다. 전쟁 이전 배럴당 70달러 안팎이던 브렌트유는 최근까지 100달러 안팎에서 거래되고 있다.
가장 큰 이유 중 하나가 급등한 운송비다.
호르무즈 해협을 오가는 유조선이 공격 대상이 되면서 기존처럼 걸프 산유국에서 원유를 실은 대형 유조선이 그대로 아시아까지 항해하는 방식이 어려워졌다.
대신 여러 척의 유조선을 동원하는 ‘셔틀 수송’이 확산하고 있다. 원유를 실은 유조선이 위험 지역인 호르무즈 해협을 빠져나와 오만만으로 이동한 뒤 다시 다른 선박으로 원유를 옮겨 싣고 아시아로 향하는 방식이다.
한 번의 원유 수송에 여러 척의 선박이 묶이면서 전 세계 대형 유조선 부족 현상이 심해졌다. 아시아 정유업체들이 중동 대신 미국과 남미, 서아프리카 등 대서양 지역에서 원유를 사들이면서 항해 거리까지 길어졌다.
이에 중동에서 아시아로 원유를 운반하는 초대형원유운반선(VLCC) 운임은 최근 하루 120만달러를 넘어섰다. 지난 1월 하루 약 3만달러와 비교하면 약 40배 수준이다.
원유 도착 가격에서 운송비가 차지하는 비중도 전쟁 전 약 3%에서 최근 약 27%까지 높아졌다.
호르무즈 해협을 통과하는 원유가 늘어날수록 운송 문제가 오히려 단기간 더 심해질 수 있다는 분석도 나온다. 기존 항로가 완전히 정상화되지 않은 상황에서 수출 물량만 늘어나면 셔틀 수송에 필요한 유조선 수요도 함께 증가하기 때문이다.
사우디는 호르무즈 의존도를 낮추기 위해 육상 수송망도 총동원하고 있다.
사우디 동부 유전지대에서 홍해의 얀부항까지 원유를 운반하는 동서횡단 송유관이 대표적이다. 압둘아지즈 빈 살만 사우디 에너지장관은 6일 이 송유관을 통한 원유 수송량이 하루 580만배럴까지 늘었다고 밝혔다.
세계 원유 공급량의 약 4%에 해당하는 하루 400만배럴가량이 이 송유관을 통해 우회 수송되고 있다.
하지만 이 우회로 역시 안전하지 않다. 동서횡단 송유관은 지난달 드론 공격을 받아 가동이 중단됐다가 재가동됐다. 사우디가 원유를 홍해로 빼내더라도 예멘 후티의 공격 위험이 있는 바브엘만데브 해협을 거쳐야 한다.
호르무즈를 피하면 홍해가, 홍해를 선택하면 후티가 기다리는 구조다.
더 큰 문제는 원유보다 경유와 항공유 등 정제유다.
걸프 산유국의 원유·콘덴세이트 수출은 전쟁 이전의 91%까지 회복했지만 정제유와 액화석유가스(LPG) 수출은 전쟁 이전 하루 730만배럴의 60% 수준에 머물고 있다.
중동 지역 정유시설의 가동 차질에 우크라이나의 공격으로 러시아 정유시설까지 피해를 입으면서 세계 정제유 공급망이 동시에 흔들리고 있기 때문이다.
특히 경유는 트럭과 선박, 농기계, 공장 등 산업 전반에 사용돼 가격 상승이 물가 전반으로 번질 가능성이 크다.
세계 최대 원유 중개업체 비톨의 러셀 하디 최고경영자(CEO)는 현재 중동에서 최근 하루 약 1200만배럴의 원유와 200만배럴의 정제유가 빠져나오고 있다고 밝혔다.
하디 CEO는 원유 공급량이 회복되면서 시장의 문제가 원유 부족에서 정제유와 해운으로 이동했다고 진단했다. 정제유 시장의 공급 부족은 겨울까지 이어질 가능성이 있다고 봤다.
주요 7개국(G7)이 원유와 경유 1억배럴을 비축유에서 방출하기로 한 것도 이 때문이다. 비축 원유를 풀어도 손상된 정유시설이나 부족한 유조선을 단기간에 늘릴 수 없다는 점은 한계로 꼽힌다.
글로벌 석유업계에서는 이번 전쟁을 계기로 수십 년간 구축해온 ‘적시 공급(Just-in-time)’ 체제를 바꿔야 한다는 주장도 나오고 있다.
패트릭 푸야네 토탈에너지 최고경영자(CEO) 등 글로벌 에너지업계 경영진들은 호르무즈와 바브엘만데브 같은 특정 해상로에 대한 의존도를 낮추기 위해 이라크에서 시리아를 잇는 송유관이나 UAE 푸자이라항 등 대체 수출로에 대한 투자를 확대해야 한다고 주장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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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jy@heraldcorp.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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