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기차 고집 대신 HEV·EREV 확장
美 점유율 12.9% 역대 최고
中 철수 대신 ‘현지 개발 거점’으로
로봇도 양산산업으로…2028년 연 3만대
자산 37%·매출 59%·직원 21%↑
커진 몸집에도 전략은 ‘민첩하게’
[헤럴드경제=정경수 기자] “과감하게 방식을 바꾸고 틀을 깨며 일할 때 비로소 혁신을 실현할 수 있습니다”
정의선 현대자동차그룹 회장이 올해 신년회에서 임직원들에게 던진 주문이다. 오는 14일 회장 취임 6주년을 맞는 정 회장의 경영 행보를 관통하는 키워드를 하나 꼽는다면 ‘유연함’이다. 시장과 기술 변화에 발맞춰 일하는 방식을 과감히 바꾸고, 필요하면 사업의 속도까지 조정해 왔다.
11일 업계에 따르면 정 회장은 2019년 수석부회장 시절부터 ‘유연한 기업 문화’를 강조해 왔다. 2023년 신년사에서도 “유연한 업무방식을 생활화 해달라”며 “변화를 멈춘 문화는 쉽게 오염된다”고 변화에 대응하는 조직문화를 주문했다.
그는 2020년 10월 취임 직후 현대차그룹은 자동차 제조사를 넘어 스마트 모빌리티 설루션 기업으로의 전환을 전면에 내걸었다.
현재도 그 목표는 유효하다. 그러나 6년 동안 현대차그룹을 둘러싼 환경은 예상보다 훨씬 빠르게 변했다. 코로나19와 차량용 반도체 공급난을 거쳐 전기차 수요 둔화, 러시아 시장 철수, 미국을 중심으로 한 보호무역 강화, 중국 업체의 급성장까지 연이어 맞닥뜨렸다. 이 과정에서 정 회장의 전략도 하나의 해법을 고수하기보다 시장 변화에 맞춰 선택지를 넓히는 방향으로 진화했다.
EV 캐즘엔 HEV·EREV, 中선 현지화…고집 대신 전략 전환
대표적인 사례가 전동화 전략이다. 일부 글로벌 완성차 업체들이 전기차 ‘올인’ 기조를 이어갈 때 현대차그룹은 일찌감치 하이브리드를 함께 키우며 캐즘(일시적 수요 정체)에 대비했다. 전기차 투자는 지속하면서도 수요 둔화가 현실화하자 하이브리드 라인업과 생산능력을 빠르게 확대했고, 주행거리연장형 전기차(EREV)까지 새로운 선택지로 추가했다.
정 회장의 주문 현대차그룹이 기민한 대응에 나서는 사이 전기차 수요 둔화에 대한 대응이 늦었던 경쟁사들은 실적 악화와 구조조정에 직면했다. 폭스바겐그룹은 지난해 영업이익이 전년 대비 53% 급감한 데 이어 올해도 65% 이상 감소할 것으로 점쳐진다. 올해 10만명 감원과 독일 공장 4곳 폐쇄까지 검토하고 있다. 포드도 지난해 전기차 사업에서 48억달러의 영업손실을 냈고, 혼다는 전기차 투자 부담이 커지자 올해 북미 전기차 3종 개발을 중단하고 하이브리드 확대에 다시 무게를 싣고 있다.
현대차·기아는 지난 7~8월 두 달 연속 미국 월간 점유율 3위에 올랐고, 8월에는 역대 최고인 12.9%를 기록했다. 1~8월 누적 점유율도 11.8%로 3위 포드(12.2%)와의 격차를 0.4%포인트까지 좁혔다.
중국에서는 과거 글로벌 모델을 현지에 투입하는 방식에서 벗어나 올해 ‘중국에서, 중국을 위해, 세계를 향해’를 새 전략으로 내걸었다. 중국 소비자 취향에 맞는 차를 현지에서 개발하고, 이를 다시 글로벌 경쟁력으로 연결하겠다는 구상이다.
현대차와 베이징자동차는 베이징현대에 80억위안을 공동 투자하고 향후 5년간 20종의 신차를 내놓기로 했다. 중국을 전기차·소프트웨어 개발 거점으로 다시 정의한 셈이다.
자동차 다음은 로봇…‘두 번째 양산산업’ 만든다
정 회장의 유연한 리더십은 기존 자동차 사업을 넘어선 영역에서 더 선명하게 드러난다.
현대차그룹이 2021년 보스턴다이나믹스를 인수할 당시만 해도 ‘자동차 회사가 왜 로봇 회사를 사느냐’는 물음이 따라붙었다. 5년 뒤인 올해 1월 CES에서 현대차그룹은 ‘피지컬 AI 기업’으로의 도약을 공식화하며 그 질문에 답을 내놨다. 특히 휴머노이드 로봇 ‘아틀라스’는 자동차를 넘어 로봇을 새로운 성장축으로 키우겠다는 전략의 상징이 됐다.
현대차그룹은 현지 생산에도 속도를 내고 있다. 현대차그룹은 오는 2028년부터 미국에 연산 3만대 규모의 로봇 생산체제를 구축하고, 그룹 제조현장에서 로봇을 먼저 검증한 뒤 축적한 데이터와 양산 경험을 제품 개선과 외부 판매로 연결할 계획이다.
몸집은 커지고 전장은 넓어졌다…더 중요해진 ‘유연함’
정 회장의 '유연한 리더십'을 바라보는 시장의 시선은 '우려'보다 '기대'에 무게가 실린다. 토요타·폭스바겐·제너럴모터스(GM) 등 완성차 업체끼리 경쟁하던 데서 벗어나 로보택시·AI·로봇으로 무대가 넓어졌다. 구글의 자율주행 자회사 웨이모에는 로보택시용 아이오닉 5를 공급하며 협력하고, 휴머노이드에서는 테슬라·피규어AI·애질리티로보틱스 등과 비교된다. 사업 영역이 넓어지면서 경쟁과 협력의 경계도 이전보다 복잡해졌다.
정 회장 취임 전과 비교하면 현대차그룹의 몸집도 한층 커졌다. 자산총액은 2019년 235조원에서 지난해 321조원으로 37%, 매출은 같은 기간 185조원에서 295조원으로 59% 늘었다. 직원 수도 16만6000명에서 20만2000명으로 21% 증가했고, 시가총액은 현재 약 200조원으로 두 배 이상 커졌다.
몸집이 커질수록 빠르게 방향을 바꾸기는 쉽지 않지만, 정 회장은 ‘퍼스트무버’를 지향하면서도 시장의 흐름이 달라지면 기존 전략을 고집하지 않았다.
이 같은 변화 가능성에 대한 외부의 평가도 이어지고 있다. 젠슨 황 엔비디아 CEO는 지난 6월 현대차그룹을 방문해 “지금은 현대차의 시간이다. 그간 쌓아온 모든 것과 전문성이 AI와 결합하면 폭발적인 변화가 일어날 것”이라고 말했다.
kwater@heraldcorp.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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