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치스럽고 부끄러운 결정” 비난
수상자 필라이 “미스터리한 인물”
[헤럴드경제=고승희 기자]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올해 노벨평화상을 받지 못한 데 대해 마침내 분통을 터뜨렸다. 노벨위원회는 물론, 위원회가 있는 나라 노르웨이까지 싸잡아 비난했다. 자신이 남북한 사이의 전쟁도 막고 있다는 주장도 내놨다.
로이터통신에 따르면 트럼프 대통령은 9일(현지시간) 미국 뉴욕주 시러큐스에서 열린 공화당 주지사 후보 지원 유세에서 “이번 일은 노르웨이라는 나라와, 수치스럽고 부끄러운 결정을 내린 사람들에게 지울 수 없는 오점”이라고 쏘아붙였다. 올해 수상자인 나비 필라이(85)를 두고는 “들어본 적도 없는 사람”이라며 “미스터리한 인물”이라고 깎아내렸다.
올해 노벨평화상은 남아프리카공화국 출신 법률가 필라이에게 돌아갔다. 필라이는 국제형사재판소(ICC) 재판관과 유엔 인권최고대표를 지냈다. 지난해에는 이스라엘이 가자지구에서 집단학살을 저질렀다고 결론 내린 유엔 조사위원회를 이끌었다. 이스라엘을 지지해 온 트럼프 행정부로서는 달갑지 않은 인물이다.
트럼프 대통령은 자신이 전쟁 8개를 끝냈다는 주장을 되풀이했다. 그중 하나만 해결했어도 노벨평화상을 받을 만하다는 것이다. 그는 “여러분의 대통령인 내가 대표하는 미국이 노벨평화상을 받았어야 했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연합뉴스에 따르면 “전쟁마다 하나씩 노벨상을 8개 받았어야 했다”는 말도 덧붙였다.
특히 트럼프 대통령은 자신이 한국과 북한, 일본과 북한, 중국과 대만 사이에서 전쟁이 일어나지 않도록 막고 있다고 주장했다. 다만 로이터는 그가 근거를 내놓지 않았다고 짚었다.
트럼프 대통령이 ‘전쟁 8개’를 끝냈다는 주장에 대해서도 미국 CNN 방송은 과장됐다고 판정했다. 트럼프 대통령이 꼽는 이집트와 에티오피아의 갈등은 나일강 댐을 둘러싼 외교 다툼이었다. 세르비아와 코소보 사이에서도 그의 임기 중에 전쟁은 없었다.
노벨상 수상 불발에 대한 분노는 노르웨이로 향했다. 그는 “노벨평화상은 소수의 급진적 이념가들 때문에 영원히 신뢰를 잃었다”며 “우리는 노르웨이를 잊지 않을 것”이라고 경고했다. 블룸버그통신에 따르면 그는 수상 불발을 두고 노르웨이 같은 나라들이 미국을 이용해 이득을 챙긴다는 또 하나의 신호라고도 했다.
하지만 노벨평화상 수상자는 노르웨이 정부가 정하지 않는다. 노르웨이 의회가 뽑은 위원 5명의 노벨위원회가 독립적으로 결정한다. 요나스 가르 스퇴레 노르웨이 총리도 지난 1월 이 점을 트럼프 대통령에게 여러 차례 설명했다고 밝혔다. 당시 트럼프 대통령은 스퇴레 총리에게 “노벨평화상을 받지 못했으니 더는 평화만 생각할 의무를 느끼지 않는다”는 메시지를 보냈다.
트럼프 대통령은 이날 오전에도 불만을 드러냈다. 필라이와 노벨위원회를 비난하는 다른 사람의 글을 자신의 소셜미디어 트루스소셜에 공유했다. 그 글은 필라이를 “미국과 이스라엘을 증오하는 인물”로 규정했다. 그런데도 몇 시간 뒤 유세에서는 필라이를 들어본 적 없다고 했다.
같은 날 미국 정부는 필라이가 몸담았던 ICC에 제재를 가했다. 마코 루비오 미 국무장관은 ICC와의 거래를 금지해 재판소가 제대로 움직이지 못하게 하겠다고 밝혔다. 재판관 개인이 아니라 재판소 전체를 겨냥한 제재는 이번이 처음이다.
필라이는 수상 소식을 독일 뉘른베르크에서 들었다. 그는 박수를 보내는 동료들에게 “박수를 조금 더 치면 이 상을 트럼프와 나눌지도 모른다”고 농담을 던졌다. 지난해 수상자인 베네수엘라 야권 지도자 마리아 코리나 마차도가 올해 1월 트럼프 대통령에게 메달을 건넨 일을 빗댄 말이다. 시상식은 12월 10일 노르웨이 오슬로에서 열린다.
shee@heraldcorp.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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