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헤럴드경제=김주리 기자] 정부기관의 강연 요청을 받은 대학교수가 강연료 30만원을 제시받은 뒤 사례금을 받지 않기로 한 사실을 공개하면서 전문가의 지식노동에 적정한 가격이 얼마인지를 두고 논쟁이 이어지고 있다.
김현철 연세대 의과대학 교수는 최근 자신의 사회관계망서비스(SNS)에 ‘지식 노동자의 정당한 대가는 얼마일까?’라는 제목의 글을 올리고 한 정부기관의 전국민 대상 토론회에서 주제 강연을 맡았던 경험을 소개했다.
김 교수는 기존 연구자료를 다시 검토하고 발표 내용을 정리해 슬라이드를 만드는 데 하루를 썼다고 했다. 강연 방향을 잡기 위해 앞선 일주일 동안 틈틈이 고민했고 행사 당일에도 하루 종일 현장에 머물렀다고 설명했다.
행사가 임박한 뒤 확인한 강연료는 30만원이었다. 김 교수는 “물리적으로만 최소 이틀이 들고, 바탕이 된 작업까지 치면 한 달 이상이 들어간 강연”이라며 결국 강연료를 받지 않고 예정된 발표만 진행했다고 밝혔다. 이후 해당 기관에서는 강연료를 조정하는 절차가 진행된 것으로 전해졌다.
“강연 1시간이 1시간 노동인가”…준비시간은 가격 밖에
논쟁의 핵심은 실제 강연시간과 준비시간을 어디까지 노동으로 볼 것인가에 있다.
전문가 강연은 이미 알고 있는 내용을 단순히 전달하는 경우도 있지만 행사 주제와 청중에 맞춰 자료를 새로 검토하고 발표 구조를 다시 짜야 하는 경우가 많다. 강연 자체는 1시간에 끝나더라도 준비에는 몇 시간에서 수일이 들어갈 수 있다.
김 교수 역시 강연시간만을 기준으로 사례금을 정하면 자료 검토와 발표 준비에 들어간 노동이 가격에 반영되지 않는다고 지적했다.
청탁금지법상 각급 학교 교직원과 학교법인 임직원 등의 외부강의 사례금 상한은 시간당 100만원이다. 이는 받을 수 있는 최대 금액을 정한 것으로, 공공기관이 반드시 100만원을 지급해야 한다는 뜻은 아니다. 실제 지급액은 기관별 예산과 내부 강사료 기준에 따라 이보다 낮게 책정할 수 있다. 국민권익위원회도 2026년 질의응답에서 학교 교직원의 외부강의 사례금 상한을 시간당 100만원으로 확인하면서, 상한 범위 안에서는 기관의 자체 지급기준에 따라 사례금을 지급할 수 있다고 설명했다.
공무원이나 공직유관단체 임직원은 기준이 다르다. 이들의 외부강의 사례금 상한은 시간당 40만원이며 1시간을 넘겨 강연해도 총액은 원칙적으로 60만원을 넘을 수 없다. 학교 교직원과 언론사 임직원 등에는 시간당 100만원 기준이 적용된다.
법이 정한 것은 ‘최대 얼마까지 받을 수 있느냐’다. 실제 현장에서 얼마를 지급하는 것이 적절한지는 별개의 문제인 셈이다.
“오은영 상담료 수백만원도 이해”…최고 전문가 시간의 가격은
김 교수는 정신건강의학과 전문의 오은영 박사의 상담료를 둘러싸고 과거 벌어진 논란도 언급했다.
그는 한 분야에서 오랫동안 전문성을 쌓은 사람의 한 시간을 일반적인 노동시간과 같은 방식으로 가격을 매기기 어렵다는 취지로 오 박사를 사례로 들었다. 당시 알려진 고액 상담료를 두고 논란이 있었지만 해당 전문가가 축적한 지식과 경험까지 고려하면 단순히 ‘한 시간에 얼마’만 놓고 비싸다고 판단하기 어렵다는 주장이다.
전문 서비스의 가격은 실제 서비스를 제공한 시간만으로 결정되지 않는 경우가 많다. 의사와 변호사, 회계사, 연구자 등의 상담이나 자문에는 해당 업무를 수행하기까지 축적한 훈련과 경험, 자료 검토 시간이 함께 반영된다.
강연도 비슷한 문제가 있다. 유명 강연자의 경우 기존 강연 내용을 반복해 준비시간이 짧을 수도 있고, 새로운 주제라면 발표 한 번을 위해 상당한 시간을 투입할 수도 있다. 강연시간만 놓고 일률적인 금액을 정하면 실제 노동량과 보수 사이에 차이가 발생할 수 있다는 지적이 나오는 이유다.
김 교수의 글에는 비슷한 경험을 했다는 교수와 연구자들의 댓글도 이어졌다. 짧은 기조연설에 수십만원을 제시받아 무료로 강연한 경험이나, 해외에서는 준비와 이동시간까지 반영해 보수를 받았지만 국내에서는 강연료가 크게 낮았다는 사례가 소개됐다.
공공기관은 “예산 한계”…높은 강연료가 항상 답은 아냐
반대 의견도 있다.
정부기관이나 공공기관, 도서관 등은 기업과 달리 국민 세금이나 제한된 사업비로 프로그램을 운영한다. 유명 전문가에게 시장 가격에 맞춘 높은 강연료를 지급하면 더 많은 사람에게 교육·강연 기회를 제공하기 어려워질 수 있다는 주장이다.
실제 강연료 상한과 적정 지급액도 구분할 필요가 있다. 청탁금지법이 대학 교직원의 사례금 상한을 시간당 100만원으로 정했다고 해서 공공기관이 모든 교수에게 시간당 100만원을 지급해야 하는 것은 아니다. 강연 내용과 준비 부담, 전문가 경력, 행사 성격, 예산 등을 종합해 기관이 지급 기준을 정할 수 있다.
문제는 지급액이 낮은 것 자체보다 강연을 의뢰하는 단계에서 업무 범위와 보수가 명확히 공유되지 않는 경우다. 전문가 입장에서는 자료를 새로 준비한 뒤 뒤늦게 사례금을 확인할 수 있고, 기관은 내부 기준에 따른 정상적인 금액이라고 판단하면서 충돌이 발생할 수 있다.
강연을 단순한 ‘현장 1시간’으로 볼 것인지, 준비 과정과 그동안 축적한 전문성까지 포함한 서비스로 평가할 것인지에 따라 적정 가격도 달라진다.
김 교수 역시 자신의 사례를 소개하며 지식노동뿐 아니라 육체노동에도 숙련도와 전문성의 차이가 존재한다고 지적했다. 이번 논쟁은 한 교수의 30만원 강연료를 넘어 공공기관이 전문가의 시간을 어떤 기준으로 평가하고, 제한된 예산 안에서 그 대가를 어디까지 지급할 것인지라는 문제로 이어지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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