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 ‘아침’까지만 해도 멀쩡히 병원에 걸어 들어갔던 환자가 ‘오후’에는 싸늘하게 식어서 돌아옵니다. 가족들은 납득하기 어렵습니다.
그래서 불가능에 가까운 ‘싸움’을 시작합니다. 적금을 깨고, 집을 팔아 마련한 돈은 ‘환자가 왜 죽었는지’를 밝히기 위해 쓰입니다. 하지만 환자와 가족이 의료기관의 책임을 입증하기란 여간 어려운 게 아닙니다. ‘정보의 비대칭성’ 때문입니다.
국내에서 의료분쟁은 크게 한국의료분쟁조정중재원을 통한 조정·중재 신청(연평균 약 2100건), 민사소송(연평균 약 1000건·보험연구원 연구자료) 등을 통해 이뤄집니다. 매해 ‘3000건 이상’의 의료분쟁이 ‘다윗과 골리앗’의 싸움처럼 펼쳐지고 있습니다.
헤럴드경제는 법무법인 오킴스와 함께 다양한 의료분쟁 판례를 분석하고, 다윗이 어떻게 해야 골리앗을 이길 수 있을지 톺아보려 합니다. 환자와 환자 가족들이 ‘메디컬 생존 게임’에서 살아남을 수 있도록 응원합니다. 메디컬 생존 게임은 월 2회(격주 화요일) 연재됩니다. [편집자 주]
[헤럴드경제=고재우 기자] 불행은 한꺼번에 찾아 들었다. 지난 2015년 4월 13일 오후 2시30분께, A씨는 왼쪽 귀에 피를 흘린 채 쓰러진 상태로 발견됐다. 심각한 뇌 손상 혹은 두부 외상이 의심되는 상황. 다행히 오후 2시 34분, A씨는 양산부산대병원 응급실로 이송됐다.
왼쪽 후두엽 경막외 출혈 등 진단이 내려졌다. 뒤통수 부문의 머리뼈와 경막 사이의 틈새 공간인 경막외에 피가 고인 상태다. 두통이나 구토와 같은 뇌압 상승에 의한 증상이 나타날 수 있고, 출혈량이 많아 뇌압이 높아질 경우 의식 저하, 팔다리 마비를 넘어 사망에까지 이를 수 있다.
양산부산대병원은 이튿날인 오전 5시 18분부터 8시까지 경막외 출혈 제거술에 나섰다.
순조로웠다. A씨에게는 마취에서 깨어난 직후부터 마약성 진통제인 울티바(Ultiva)가 투여됐다. 또 A씨가 신체에 연결된 도뇨관 및 수액 라인 등을 떼어내려 하는 증세를 보임에 따라 미다졸람도 추가로 들어갔다.
미다졸람은 병원에서 환자를 재우거나 진정시키기 위해 가장 흔하게 사용하는 진정제다.
A씨는 불안 및 폭력 증세를 보이는 것 외에 신체가 회복되는 듯했다. 양산부산대병원도 같은 달 20일 A씨를 중환자실에서 일반 병동으로 이동시켰다.
문제는 A씨가 일반 병동으로 옮겨진 지 ‘이틀’ 만에 발생했다. 4월 22일 오후 4시40분께, A씨는 자발적 호흡을 하지 못했고, 의식도 잃어버렸다. 급기야 체내 산소 부족으로 피부, 입술, 손톱 등이 푸르스름하게 변하는 ‘청색증’ 증상까지 나타났다.
양산부산대병원에 들어 온 지 ‘한 달’을 갓 넘은 5월 15일 오후 8시 48분, A씨는 아들 곁을 영영 떠났다.
울티바·미다졸람 문제 삼은 A씨 유족
A씨 아들은 양산부산대병원의 울티바, 미다졸람 이용에 문제를 제기했다.
의약계에 따르면 울티바(성분명 레미펜타닐)는 몸속에서 매우 빠르게 분해되는 초단시간형 마약성 진통제다. 갑자기 숨이 멈추거나 혈압이 떨어지는 치명적인 부작용이 생길 수 있다. 이 때문에 환자의 호흡과 맥박을 실시간으로 감시할 수 있는 수술실이나 중환자실에서만 안전하게 사용된다.
미다졸람도 호흡억제를 초래할 수 있고, 마약성 진통제와 함께 투여 시에는 호흡억제 작용이 커진다. 이 때문에 울티바, 미다졸람 투약 시 정확한 용법·용량을 지켜야 한다.
그럼에도 A씨 유가족은 양산대부산대병원이 A씨 상태를 고려하지 않은 채 권고 기준을 넘은 과도한 용량을 투여했다고 주장했다. 동시에 하루에도 여러 차례 미다졸람을 투여하는 등 A씨가 급성 호흡정지를 일으켜 사망에 이르게 했다고 덧붙였다.
더욱이 양산대부산대병원이 A씨에게 울티바, 미다졸람 등을 장기간 고용량으로 투여했음에도 불구하고, 이에 대한 관찰 의무를 성실히 이행하지 않았다고 지적했다.
수술 후 뇌에 기질적 이상을 보이는 A씨에게 울티바, 미다졸람을 장기간 고용량 투여했음에도, A씨에게 호흡정지가 발생한 사실을 뒤늦게 발견해 사망을 막지 못했다는 주장이다.
‘임상 수준’ 들어 유족 주장 물리친 법원
결론적으로 부산지방법원 제8민사부(재판장 이재덕)는 A씨 아들의 주장을 모두 물리쳤다.
법원은 의사가 의료행위를 함에 있어서 환자의 증상이나 상황에 따라 위험을 방지하기 위해 취해야 할 ‘주의의무’가 있다고 인정하면서도, 주의의무는 의료행위의 수준을 기준으로 삼아야 한다는 대법원 판례(2005년 10월 28일 선고 2004다13045 판결)를 강조했다.
우선 울티바, 미다졸람 투여 상 과실 주장에 대해 인정하지 않았다.
▷권장 미다졸람 투여량은 2~2.5mg(60세 미만 성인)이지만, 총투여량은 ‘5mg 제한’으로 A씨에게 투여한 미다졸람이 여기에 미치지 않은 점 ▷울티바 투여 후 정맥주사로 미다졸람 추가 투여 시 3mg보다 적은 양이여야 한다는 의학적 기준이 없다는 점 ▷미다졸람 반감기를 고려한 투여 등을 종합적으로 고려했다는 설명이다.
법원은 “A씨는 수술 후 불안·섬망이 심하고, 흥분성이 있어 신체에 연결된 도뇨관, 수액 라인, 모니터 라인 등을 제거하고 수술 부위를 손으로 만지기도 했다”며 “병원으로서는 적합한 치료를 위해 A씨를 진정시킬 필요가 있었다”고 밝혔다.
이어 “A씨의 불안·폭력 증세는 울티바를 투여하는 중에도 발생해 즉각적 효과를 보이는 미다졸람을 투여한 뒤에야 진정됐다”며 “환자 자신과 보호자 및 의료진에 해를 끼칠 위험을 예방하기 위해 미다졸람을 추가로 투여할 필요가 있었다”고 덧붙였다.
세부적으로 “미다졸람 반감기는 약 3시간인데, 병원은 A씨에게 투여 후 6시간 이상 경과 후 미다졸람을 투여해 총량은 약 3.75mg”이라고 했고, 울티바 투약 시기 및 간격 등에 대해서도 “A씨의 불안·폭력 증세와 신체 상태, 다른 약물의 사용 여부 등에 따라 조절했다”고 판단했다.
경과 관찰 의무에 대해서도 병원의 손을 들어줬다.
▷울티바, 미다졸람이 호흡억제 부작용을 일으킬 수 있기 때문에 인공 호흡 및 심폐소생술 등 조처를 할 수 있는 환경에서 투여해야 한다는 점 ▷울티바, 미다졸람 모두 투여 시 부작용 발생 가능성이 높다는 점 ▷약물 투여에 따른 호흡정지가 환자 상태, 약물 간 상호작용, 약물 투여 후 이상 반응 우려로 인한 관찰 필요성이 있다는 점 등을 모두 고려하고서 내린 판결이다.
특히 법원은 ▷병원 의료진이 2015년 4월 22일 오전 8시 45분께 울티바를 투여하던 A씨에게 미다졸람 3mg을 정맥주사로 투여한 사실 ▷같은 날 오후 3시 40분 A시 활력징후와 산소포화도 측정 후에는 오후 4시께 활력징후만 측정한 사실 ▷오후 4시 40분께에야 A씨의 자발적 호흡 및 의식이 없고 청색증 증상을 보인 것을 발견했다는 사실 모두 인정했다.
그럼에도 법원은 “병원이 A씨 상태를 관찰하기 위해 간호사 스테이션 앞에 있는 병실을 사용토록 했고, 한 시간마다 의식 수준 및 활력징후를 측정했다”며 “환자를 계속 관찰할 필요는 있으나 약물 투여 후 이상 반응이 나타날 수 있는 시간을 특정하기 어려운 데다, 혈압·맥박·체온·산소포화도 등에서 이상 징후가 발견되지 않았다”고 일축했다.
나아가 “병원이 한 시간 단위로 망인 상태를 확인했다고 해서 경과 관찰이 의료 수준에 부적합하다고 단정하기 어렵다”며 “오후 4시 활력징후 측정한 이후 40분 만에 자발적 호흡 및 의식이 없는 상태로 발견됐고, 곧바로 심폐소생술 등 응급조치를 실시했다”고 부연했다.
조진석 변호사 “간헐 측정, ‘호흡억제’ 발견 어려워”
조진석 법무법인 오킴스 변호사는 활력징후와 같은 간헐적인 측정만으로 호흡억제 ‘조기’ 발견이 어렵다고 했다. 병원의 환자 경과 관찰 의무에 대해 다툼의 소지가 있다는 뜻이다.
또 법원이 준용한 당시 임상 수준을 고려한다는 대법원 판결과 관련해서도 의료진의 조치가 임상적 표준에 미치지 못했다는 점을 규명했어야 했다며 아쉬움을 나타냈다.
조 변호사는 “울티바 지속 주입이 A씨 일반병동 전동 이후에도 계속됐고, 사고 당일 미다졸람 추가 투여도 지속적인 ‘산소포화도’ 감시 없이 한 시간 단위로 이뤄졌다”며 “호흡억제는 혈압이나 맥박 등 활동징후 변화보다 앞서 진행될 수 있고, 간헐적인 측정만으로 조기에 발견하기 어렵다”고 짚었다.
이어 “마약성 진통제와 진정제를 병용하는 환자에 대한 지속적 산소포화도 감시의 필요성에 대해서는 보다 자세히 살펴볼 필요가 있다”고 덧붙였다.
아울러 “의료 과오 소송에서 의료진의 주의의무 위반 여부가 의료행위 당시의 임상 수준으로 판단된다는 점을 확인시켜 준 판결”이라고 밝히며, 진료기록 감정 단계에서 대응의 중요성을 강조했다.
▷일반병동에서 울티바 지속 주입이 해당 약제의 허가 사항이나 임상 의료 현장에서 일반적으로 허용되는지 ▷마약성 진통제 주입 중 미다졸람 반복 투여 시 요구되는 감시 수준, 이를테면 지속적 산소포화도 측정이나 호기말 이산화탄소 감시(호흡 감시 방법) 등에 대한 구체적 질의를 통해 “의료진의 조치가 임상적 표준에 미치지 못했다는 점을 규명하는 데 집중하는 것이 좋다”는 조언이다.
이에 더해 “법원이 판결의 근거 중 하나로 든 미다졸람 ‘총투여량 5mg 이하’ 기준은 주로 시술 전후 단시간 진정을 위한 용법”이라며 “마약성 진통제를 며칠에 걸쳐 지속 주입하던 중 미다졸람 반복 투여를 동일하게 적용할 수 있는 기준인지에 대한 의학적 검토도 필요해 보인다”고 말했다.
아울러 “호흡정지의 원인이 약물에 의한 것인지, 약물과 무관한 신체 상태의 변화나 다른 원인에 의한 것인지 등도 감정을 통해 살펴봐야 한다”고 밝혔다.
ko@heraldcorp.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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