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 ‘아침’까지만 해도 멀쩡히 병원에 걸어 들어갔던 환자가 ‘오후’에는 싸늘하게 식어서 돌아옵니다. 가족들은 납득하기 어렵습니다.
그래서 불가능에 가까운 ‘싸움’을 시작합니다. 적금을 깨고, 집을 팔아 마련한 돈은 ‘환자가 왜 죽었는지’를 밝히기 위해 쓰입니다. 하지만 환자와 가족이 의료기관의 책임을 입증하기란 여간 어려운 게 아닙니다. ‘정보의 비대칭성’ 때문입니다.
국내에서 의료분쟁은 크게 한국의료분쟁조정중재원을 통한 조정·중재 신청(연평균 약 2100건), 민사소송(연평균 약 1000건·보험연구원 연구자료) 등을 통해 이뤄집니다. 매해 ‘3000건 이상’의 의료분쟁이 ‘다윗과 골리앗’의 싸움처럼 펼쳐지고 있습니다.
헤럴드경제는 법무법인 오킴스와 함께 다양한 의료분쟁 판례를 분석하고, 다윗이 어떻게 해야 골리앗을 이길 수 있을지 톺아보려 합니다. 환자와 환자 가족들이 ‘메디컬 생존 게임’에서 살아남을 수 있도록 응원합니다. 메디컬 생존 게임은 월 2회(격주 화요일) 연재됩니다. [편집자 주]
[헤럴드경제=고재우 기자] 시작은 ‘이갈이’ 증상이었다. 이 악물기 증상 개선을 위해 시작한 보톡스 시술은 2차 보톡스 시술로, 2차 보톡스 시술은 ‘안면마비’로 이어졌다. 최악의 결과를 받아 든 A씨는 법원에 구제를 신청했지만, 이마저도 여의찮았다. 이갈이를 위한 보톡스 시술은 A씨에 최악의 결과를 가져왔다.
지난 2015년 6월, A씨는 치과의사인 B로부터 이 악물기 증상 개선을 위해 양쪽 얼굴(측두근, 교근)에 ‘1차’ 보톡스(10unit) 시술을 받았다.
이 악물기 증상이란 의학적으로 이갈이 현상의 한 형태다. 무의식적으로 위아래 치아를 강하게 맞물리는 좋지 않은 습관이다. 음식을 씹을 때보다 최대 3배 이상 강한 힘이 치아와 턱관절에 지속적으로 가해지기 때문에, 최악의 경우 전신 통증으로 이어질 수 있다. A씨가 1차 보톡스 시술에 나선 이유다.
하지만 A씨의 보톡스 시술은 1차에서 끝나지 않았다. 1차 보톡스 시술 이후 난데없이 입술이 왼쪽으로 돌아가는 증상이 나타났다. 대략 ‘2주’ 만에 병원에 내원한 A씨의 좌측 얼굴 하단에 B 치과의사는 1.7unit 보톡스를 주사했다. ‘2차’ 보톡스 시술이었다.
그럼에도 사태는 악화했다. A씨는 2차 보톡스 시술 후 한 달가량 지나 B 치과의사를 다시 찾았다. 이번에는 왼쪽 눈이 감기지 않았고, 입술이 오른쪽으로 돌아갔다.
더 이상 B 치과의사를 믿을 수 없던 A씨는 C병원으로 발길을 돌렸다. C병원에서 측두부 MRI 촬영 및 신경 근육 기능검사를 받은 결과, 7번 및 8번 뇌신경의 세관 분절 부위에 국소적인 신호 증강 소견이 나타났다.
7번 뇌신경(안면신경)은 얼굴 근육을 움직이게 하고 침을 분비하는 역할을 한다. 8번 뇌신경(청신경)은 귀로 소리를 듣고, 몸의 중심을 잡는 균형 감각을 담당한다.
쉽게 말해 귀 안쪽에서 턱과 얼굴을 지나가는 신경 부위에 염증 증상이 발견됐고, 신경 근육 기능검사 결과로는 불완전한 좌측 안면신경 이상 진단이 나왔다. A씨로서는 청천벽력이 아닐 수 없었다.
‘두 차례’ 보톡스 시술 후 안면마비
A씨는 B 치과의사를 상대로 소송에 나섰다. ▷두 차례 보톡스 시술 후 안면마비 등 ‘시술 상의 과실’ ▷1·2차 시술 당시 보톡스 부작용을 설명하지 않은 ‘설명 의무 위반’ 등을 문제 삼았다.
상술하면 두 차례 보톡스 시술 후 안면마비 발생이 B 치과의사의 과실에 따른 것이고, 1·2차 시술 당시 B 치과의사가 보톡스 부작용에 대해 설명하지 않아 ‘자기 결정권’이 침해됐다는 취지다. 이를 이유로 A씨는 B 치과의사에게 손해배상으로 ‘2100만원’을 청구했다.
B 치과의사도 맞대응에 나섰다. B 치과의사는 A씨에게 보톡스 적절한 용량을 시술했고, 안면마비는 이와 관계없는 ‘염증’에 따른 것이라고 했다. 보톡스 시술과 안면마비는 관계없다는 이야기다.
나아가 1·2차 보톡스 시술과 안면마비 간 인과관계도 없다고 주장했다. ‘3년’ 가까운 지난한 싸움이 시작되는 순간이었다.
B 과실 인정 안 한 법원, ‘모두 기각’
서울중앙지방법원(판사 남수진) A씨가 주장한 시술 상의 과실, 설명의무 위반 등을 모두 기각했다.
우선 시술 상의 과실에 대해서는 A씨의 안면마비 증상이 안면신경에 발생한 염증에 따른 것이라는 점, 2차 보톡스 시술이 왼쪽으로 돌아간 입술의 균형을 맞추기 위해 진행되지 않았다는 점 등을 들었다.
세부적으로 A씨가 제출한 증거 및 D협회에 대한 진료기록감정촉탁결과을 인용해 “B 치과의사는 적정 용량에 따라 A씨에 보톡스 시술을 했고, A씨의 안면마비는 안면신경에 발생한 염증에 의한 것으로 보톡스 시술과 관련한 과실이 있다고 보기 어렵다”고 판결했다.
이어 “1차 보톡스 시술 이후 발생한 입술이 왼쪽으로 돌아가는 균형을 맞추기 위해 2차 보톡스 시술을 한 것은 1차 시술에 과실 있다는 취지란 게 A씨의 주장”이라면서도 “보톡스 정량을 주입한다고 하더라도 양쪽 이완 정도가 달라질 수 있기에 균형을 위해 2차 시술을 한 걸 과실이라고 볼 수 없다”고 물리쳤다.
설명의무 위반에 대해서도 인정하지 않았다. 설명의무 위반에 대해 ①의사에게 위자료 등 지급 의무를 부담토록 하는 것은 환자에게 예기치 못한 중대한 결과가 발생했고 ②이에 앞서 의사가 질병의 증상, 치료, 진단 방법의 내용 및 위험성에 대해 설명했더라면 ③환자가 의료행위를 받을지를 선택(자기결정권)해 중대한 결과를 회피할 수 있었음에도 ④기회를 상실하게 된 데에 따른 정신적 고통을 위자하는 것이라고 선을 그었다.
법원은 “설명의무는 의료과정 전반을 대상으로 하는 것이 아니라 수술 등 침습을 과하는 과정 및 나쁜 결과 발생의 개연성이 있는 의료행위를 하는 경우 혹은 사망 등 중대한 결과 발생이 예측되는 의료행위를 하는 경우 등 환자의 자기결정에 의한 선택이 요구되는 경우를 대상으로 하는 것”이라고 부연했다.
이를 근거로 “환자에게 발생한 중대한 결과가 의사의 침습 행위로 인한 것이 아니거나, 환자의 자기 결정권이 문제 되지 아니하는 사항에 관한 것은 위자료 지급 대상으로 설명의무 위반이 될 수 없다(대법원 2010년 5월 27일 판례)”고 덧붙였다.
B 치과의사가 보톡스 부작용에 대해 설명의무를 다했다는 사실을 증명하지 못했다는 점도 인정했다.
하지만 A씨의 안면마비와 1·2차 보톡스 시술 간 인과관계가 인정되지 않는다는 점을 들어 위자료 지급 책임이 없다고 판단했다.
법원은 “보톡스 시술로 인해 감염이 생긴 경우, 인근에 위치한 안면신경이 영향을 받을 수는 있다”면서도 “A씨 안면신경 세관 분절, 앞쪽 무릎 염증 등으로 좌측 안면마비가 발생한 것으로 추정할 수 있는데, 1·2차 보톡스 시술 부위와 위치적으로 인접해 있지 않다”고 설명했다.
이외에도 ▷보톡스 시술 부작용으로 알려진 보툴리눔 독소 확산으로 주변 근육 마비, 주사 부위와 먼 부위로 이동 부작용 등 보고 ▷2차 보톡스 시술과 왼쪽 눈이 감기지 않는 증상 간 관계 등도 받아들여지지 않았다.
각각 안면마비 증상이 안면신경 염증에 의한 것이라는 점, 2차 보톡스 시술과 왼쪽 눈이 감기지 않는 증상 간 시차(약 1개월) 등이 이유였다.
조진석 변호사 “시술-염증, 인과관계 증명”
조진석 법무법인 오킴스 변호사는 1·2차 보톡스 시술과 안면신경 염증 사이의 인과관계 증명에 적극적으로 나서야했다고 조언했다.
특히 법원이 설명의무 위반을 인정하면서도 위자료 청구 전제 조건으로 의료행위-결과 간 인과관계를 들었다는 점을 강조했다.
조 변호사는 “의료소송에서 환자가 손해배상을 인정받기 위해서는 의료행위 과정상 과실뿐만 아니라 과실-결과 간 인과관계 증명이 필수”라며 “해당 사건은 시술 부위와 병변 부위의 해부학적 위치, 증상 발현 시점, 병변 성상 등을 종합할 때 시술이 아닌 다른 원인에 의한 결과 가능성을 배제할 수 없어 인과관계가 인정되지 않은 것”이라고 분석했다.
설명의무 위반에 대해서도 “설명의무 위반에 대한 위자료 지급 책임은 환자에게 발생한 중대한 결과가 의사의 침습 행위로 인한 것임을 전제로 한다”며 “해당 사건에서는 안면마비가 시술로 인한 것이라는 인과관계가 인정되지 않으므로 위자료 지급 책임이 부정된 것”이라고 덧붙였다.
설명의무 위반이 인정되더라도 의료행위-결과 간 인과관계 부재 시 위자료 청구가 배척된다는 대법원 결과를 재차 상기한 것이다.
조 변호사는 “단순히 부정적인 결과가 발생했다는 사실이 아니라 의료행위 간 인과관계를 엄격하게 심리하고, 설명의무 위반 자체가 위자료 책임으로 이어지지 않는다는 점에서 유사한 의료분쟁에 참고가 될 만한 판결”이라고 강조했다.
ko@heraldcorp.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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