식약처 ‘오남용 지정’ 고시, 규제합리화위 본심사 넘겨져

박용진·신현영 “단순 낙인 찍기…필수 환자 치료권 침해”

국감 선 오유경 처장 “국무조정실 규제심사 중…필요성 설명”

대표적인 GLP-1 계열 약물인 위고비와 마운자로. [로이터]
대표적인 GLP-1 계열 약물인 위고비와 마운자로. [로이터]

[헤럴드경제=최은지 기자] 식품의약품안전처가 추진해 온 글루카곤 유사 펩타이드-1(GLP-1) 계열 비만치료제의 ‘오·남용우려의약품’ 지정 절차가 정부 심사 기구의 제동으로 중대한 기로에 섰다.

대통령 직속 규제합리화위원회에서 해당 안건이 유일하게 본심사로 넘겨진 데다, 정치권에서도 “단순 낙인 찍기 식 규제”라며 비판 수위를 높이고 있어서다.

오유경 식약처장은 13일 국회 보건복지위원회 국정감사에서 GLP-1 계열 비만치료제의 오남용 우려 의약품 지정 진행 상황과 관련해 “현재 국무조정실에서 규제심사를 받고 있다”고 밝혔다.

규제합리화위원회는 최근 열린 신설·강화규제 예비심사에서 식약처의 ‘오·남용우려의약품 지정에 관한 규정 개정안’을 본심사 안건으로 최종 상정했다. 당시 접수된 총 15건의 규제 안건 가운데 14건은 간이 심사를 거쳐 처리가 완료됐으나, 비만치료용 GLP-1 3개 성분(리라글루티드·세마글루티드·터제파타이드) 신규 지정 건만 유일하게 본심사 심층 검토 대상으로 분류됐다. 파급력과 사회적 갈등 소지가 크다고 판단한 셈이다.

식약처가 이들 성분을 오·남용우려의약품으로 지정하려는 핵심 명분은 유통 사각지대 차단이다. 현행 약사법상 의약분업 예외지역 약국에서는 의사의 처방전 없이도 전문의약품을 3일분 범위 내에서 판매할 수 있다.

실제 국내 GLP-1 비만약 수입액이 2024년 약 1699억원에서 2025년 1조709억원으로 폭증하는 사이, 의약분업 예외지역 약국으로 흘러 들어간 위고비 공급량은 1년 새 975.7% 급증했다. 여기에 소아·임부 등 주의 대상에 대한 부적정 처방과 온라인 불법 거래, 펜 분할 투약(나눠 맞기) 등 안전사고 우려가 잇따르자, 포장재에 ‘오·남용우려의약품’ 문구를 의무 표기하고 예외지역 무처방 판매를 원천 봉쇄하겠다는 것이 식약처의 구상이다.

그러나 규제합리화위원회가 제동을 걸면서 기류가 급변했다. 박용진 규제합리화위원회 부위원장은 “오남용 우려가 있다고 해서 약물 자체에 먼저 딱지를 붙이는 것이 최선의 정책인지 따져봐야 한다”며 “발기부전 치료제나 스테로이드와 동일한 규제 틀에 비만치료제를 묶는 것은 부적절하다”고 직격했다. 세계보건기구(WHO)가 비만을 만성질환으로 규정하고 GLP-1 치료제를 필수의약품 목록에 포함하는 글로벌 추세와 정면 배치된다는 지적이다.

의사 출신인 신현영 더불어민주당 대변인은 “많이 쓰이고 남용된다고 약물 자체를 오남용 제품으로 낙인찍는 방식은 규제과학에 맞지 않는 단순 무식한 대응”이라고 지적했다. 신 대변인은 “약물을 옥죌 것이 아니라 과다 처방을 남발하는 ‘성지의원’과 덤핑 판매를 일삼는 ‘성지약국’ 등 유통 현장 시스템부터 점검해야 한다”며 “약물에 낙인이 찍히면 정작 치료가 절실한 만성 비만·당뇨 환자들의 심리적 문턱만 높이게 된다”고 짚었다.

전문가 단체인 대한당뇨병학회도 신중론을 폈다. 학회는 앞서 식약처 행정예고 직후 발표한 성명서를 통해 “오남용 방지라는 정책 취지에는 공감하지만, 구체적 행정 지침 없이 명칭만 부여하는 것은 행정 편의주의”라며 “대사질환 치료를 위해 필수적으로 처방받는 환자들에게 불필요한 불안과 낙인을 초래해 치료 순응도를 떨어뜨릴 수 있다”는 입장을 밝혔다.

최근 한미약품이 자체 개발한 국내 45호 신약 ‘에페(성분명 에페글레나타이드)’가 품목허가를 획득한 점도 시장 변수로 작용하고 있다. 식약처 규제안은 외산 성분 3종을 특정하고 있어 에페글레나타이드가 당장 법적 규제 대상에 오르지는 않지만, 동일한 GLP-1 계열 전체로 부정적 인식이 확산될 경우 이제 막 개화한 국산 신약의 시장 안착과 연구개발 의지를 꺾을 수 있다는 업계의 우려가 적지 않다. 향후 규제 형평성에 따른 추가 지정 논란도 잠재적 부담이다.

이 같은 절차 지연과 논란은 국정감사 도마 위에도 올랐다. 오 처장은 “국무조정실 심사 과정에서 오·남용우려의약품 지정의 필요성을 좀 더 설명하겠다”고 밝혔다. 당초 9월 고시 완료 목표와 달리 규제 심사에 발목이 잡힌 사실을 공식화하면서도 지정 의지를 재확인한 셈이나, 최종 고시 시점에 대해서는 구체적인 일정을 제시하지 못했다.

식약처는 예외지역 유통 관리와 국민 안전을 위해 원안 추진 입장을 유지하고 있지만, 규제합리화위 본심사에서 포장재 경고 표기 의무는 완화하고 예외지역 판매 차단 및 현장 모니터링만 선별 강화하는 식의 절충안이 도출될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다. 오남용 억제라는 보건당국의 명분과 과잉 규제라는 반발이 맞서면서, 정부 규제심사위원회의 최종 판단에 업계와 의료계의 이목이 쏠리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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