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킬링타임’·‘실낙원’ 등 3주 새 6편 개봉

고래 배 속부터 폐병원까지 ‘현대판 질식’

영화 ‘최종면접’ 조이현 [뉴 제공]
영화 ‘최종면접’ 조이현 [뉴 제공]

[헤럴드경제=고승희 기자] 산 채로 고래에게 삼켜진 다이버, 몰래카메라를 찍으러 간 폐병원에서 진짜 살인과 마주한 스트리머, AI(인공지능) 속 열 살 아들과 9년 만에 돌아온 진짜 아들 사이에 선 어머니, 말도 걸음도 잃은 작가의 저택에서 숨겨진 원고를 찾아낸 대필 작가, 비밀이 든 봉투 앞에서 서로를 의심하는 취업 준비생, 얼굴을 되찾은 대가로 괴물이 된 할리우드 배우….

올가을 극장가에 스릴러가 몰려온다. 3주 사이 총 6편. ‘감상적 낭만’ 대신 몰려온 것은 턱 끝까지 차오른 ‘현대판 질식’이다. 극단적 밀실부터 플랫폼 자본주의의 잔혹극, 생성형 AI가 파괴한 인간성의 심연까지 여섯 편의 영화는 동시대인들의 취약한 균열을 장르적 긴장감으로 치환한다.

60분 vs 60분, 그리고 두 시간

“고래 안에 사람 있어요! 살려줘요!”

귀를 사로잡는 외마디 외침. 영화 ‘웨일폴:고래에 먹힌 남자’(14일 개봉)다. 재난영화의 외피를 둘렀으나, 사실 관객의 신체 감각을 옥죄는 폐소공포 스릴러다.

영화는 아버지의 유해를 수습하기 위해 바다에 뛰어든 다이버 제이(오스틴 에이브람스 분)가 24m, 무게 60톤(t)의 거대한 향유고래 내부로 빨려 들어가며 시작한다. 대니얼 크라우스의 원작 소설을 바탕으로 한 영화의 공포는 ‘미지의 심해’가 아니라 ‘소화 기관’이라는 해부학적 신체에서 발원한다.

영화 ‘웨일폴:고래에 먹힌 남자’ [월트디즈니컴퍼니코리아 제공]
영화 ‘웨일폴:고래에 먹힌 남자’ [월트디즈니컴퍼니코리아 제공]

점막을 녹여내는 위산의 화학적 부식, 고래가 심해로 잠항할수록 늑골을 짓눌러오는 수압, 게이지 바늘이 0을 향해 치닫는 60분의 산소 탱크. 영화는 프레임을 가득 채우는 칠흑 같은 암흑을 비추며 인간이라는 존재가 거대한 자연의 포식 회로 안에서 얼마나 미약한지 증명한다.

에이브람스는 이 사투를 홀로 감당했다. 스쿠버다이빙 자격을 따고, 고래의 위와 식도를 본뜬 세트에서 35일을 버텼다. 그는 “고래에 삼켜진 상황을 사실적으로 전달하기 위해 최대한 직접 해내고 싶었다”고 털어놨다. 다만 이 영화에서 고래는 괴물이 아니다. 브라이언 더필드 감독은 영국 런던 프리미어 현장에서 “‘웨일폴’을 상어 영화 ‘죠스’의 정반대”라며 “여러 면에서 고래가 주인공인 영화”라고 했다.

폐병원 모니터에도 ‘60분’의 ‘킬링타임’(21일 개봉)이 뜬다. 영화는 스마트폰 화면과 실시간 라이브 스트리밍 인터페이스를 폐병원이라는 고전적 밀실과 결합했다.

영화는 과거 인터넷 방송 사고로 나락으로 떨어졌던 몰카 크리에이터들이 ‘조회수 만회’를 위해 폐병원에서 60분의 시한부 생방송을 켜는 것에서 시작한다. 재기를 노리며 카메라를 설치한 이들 앞에 얼굴을 가린 정체불명의 존재들이 등장하면 이야기는 순식간에 생존극으로 뒤집힌다.

영화 ‘킬링타임’ 속 장면 [로아앤코홀딩스·더타이틀 제공]
영화 ‘킬링타임’ 속 장면 [로아앤코홀딩스·더타이틀 제공]

장준엽 감독은 13일 기자들과 만나 “가짜로 만들어진 공포가 실제 위협이 되는 순간 긴장감이 돋보이는 작품”이라며 “제목은 시간을 가볍게 죽인다는 뜻에서 (누군가를) 죽이는 시간으로 확장해 사용했다”고 귀띔했다. 스낵 컬처로 소비되는 인터넷 방송이 자본주의의 알고리즘과 결합할 때 ‘인간의 생명’까지 담보로 한 잔혹극이 될 수 있는 현실을 보여준다.

죄책감을 안고 다시 카메라 앞에 선 스트리머 연우를 연기하는 류혜영은 “처음부터 끝까지 한 번도 멈춤 없이 단숨에 읽히는 시나리오였다”며 “이 장르를 너무 하고 싶은 절박함이 컸다”며 기대를 당부했다.

또 다른 시계는 ‘취준생’들을 향한다. ‘두 시간’으로 예정된 면접장의 시계. 다음 달 4일 개봉하는 ‘최종면접’은 5000대 1의 경쟁률을 뚫은 지원자 6명이 단 한 자리를 두고 겨루는 이야기다.

김정훈 감독은 “두 시간의 그룹 토론과 다섯 번의 투표를 통해 최종 합격자를 가리게 된다”고 설명했다. 각자의 비밀이 담긴 봉투가 발견되면서 판이 뒤집힌다. 예고편 속 혜인(조이현 분)은 다른 지원자들에게 경고한다. “다음은 너야.” 김재원·신승호·강유석·곽동연·배강희가 함께 출연한다.

영화 ‘실낙원’ [CJ ENM 제공]
영화 ‘실낙원’ [CJ ENM 제공]

돌아온 아들, 숨겨진 원고, 무너지는 얼굴

9년 전 버스 실종 사건으로 아들을 잃은 엄마 소영(김현주 분). 슬픔과 그리움에 빠진 부모에게 AI 프로그램은 실종된 아이들을 가상현실 속에 구현한다. 아들은 여전히 열 살의 모습으로 엄마에게 말을 건다. 그러든 어느 날 죽은 줄 알았던 아들 선우(배현성 분)가 살아 돌아온다. 흉터로 뒤덮인 몸, 어쩐지 타인 같은 눈빛, 훌쩍 자란 아들을 옆방에 두고 엄마는 다시 특수안경을 끼고 AI가 되살린 열 살 아들을 만난다. 연상호 감독의 ‘실낙원’(21일 개봉)이다. 기술이 낳은 기괴한 심리적 파국을 응시하는 영화다.

‘실낙원’의 출발점은 연 감독의 어머니가 연습장에 쓴 세 페이지짜리 글이었다. 연 감독은 최근 열린 기자간담회에서 “악한 아들과 그 아들을 너무나 사랑하는 어머니의 심리가 궁금해 그것을 탐구해 보고자 하는 마음으로 대본을 썼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인공지능에게 사색은 ‘존재하지 않는 세상’이다. 인간의 사색 덕분에 괴로움과 기쁨 등 모든 것이 생기고, 그것이 인간다움이라 생각한다”며 “우주의 풀리지 않는 사색의 공간이 인간의 심연이라 생각하고 그 방식으로 이야기 만들려고 노력했다”고 밝혔다.

순제작비 5억여 원, 촬영 14회차. 연 감독이 지난해 약 2억 원으로 만든 ‘얼굴’에 이어 내놓은 저예산 영화로, 지난달 토론토국제영화제에서 처음 공개됐다. 연 감독은 생성형 AI를 활용해 ‘실낙원’ 세계관을 확장, 2주 만에 단편 네 편도 제작했다.

앤 해서웨이 주연의 영화 베러티 [소니픽쳐스 제공]
앤 해서웨이 주연의 영화 베러티 [소니픽쳐스 제공]

앤 해서웨이가 등판한 ‘베러티’(22일 개봉)는 개봉 첫 주말 북미 박스오피스를 1위에 오른 영화다. ‘베러티’의 비밀은 원고 속에 숨어 있다. 베스트셀러 작가 베러티(앤 해서웨이 분)는 사고로 걷지도, 말하지도 못하게 됐다. 그가 끝내지 못한 소설을 대신 써 줄 대필 작가 로웬(다코타 존슨 분)이 베러티의 대저택에 들어간다. 그곳에서 로웬은 베러티가 직접 쓴 자서전 원고를 찾아낸다. 원고를 읽어 갈수록 베러티와 남편 제러미(조쉬 하트넷 분)의 비밀이 하나씩 드러난다. 콜린 후버의 동명 소설이 원작이다. 북미에서는 지난 2~4일 개봉 첫 주말 3262만 달러(한화 약 437억 원)를 벌어들였다.

점토 인형처럼 얼굴도 몸도 무너져 내린다. 떠오르는 할리우드 배우 맷 헤이건(톰 리스 해리스 분)이 범죄 조직 두목의 공격으로 얼굴이 망가지고, 실험적인 치료로 얼굴을 되찾는다. 대가는 컸다. 몸이 진흙처럼 뒤틀리며 괴물인 된 배우의 복수극이 시작된다. 영화 ‘클레이 페이스’(21일 개봉)다.

‘배트맨’ 시리즈의 악당을 주인공으로 세운 DC 스튜디오의 첫 공포 영화다. 새 DC 유니버스에서 처음으로 미국 R등급(17세 미만은 보호자 동반)을 받았다. ‘스픽 노 이블’의 제임스 왓킨스가 연출하고, ‘닥터 슬립’의 마이크 플래너건 등이 각본을 썼다. 제작자 피터 사프란은 이 영화를 “데이비드 크로넨버그 감독 스타일의 보디 호러(몸이 변하거나 무너지는 모습으로 공포를 만드는 장르)”라고 평했다.


shee@heraldcorp.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