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연구자 경험·지식 AI에 반영, 최적 조건 탐색 20회→3~5회 단축

- 잘못된 조언은 AI가 걸러내, 차세대 자율실험실 핵심기술 확보

이번 연구를 수행한 안광노(왼쪽부터) 한국화학연구원 선임연구원과 아밀레자 모타펙 박사후연구원.[한국화학연구원 제공]
이번 연구를 수행한 안광노(왼쪽부터) 한국화학연구원 선임연구원과 아밀레자 모타펙 박사후연구원.[한국화학연구원 제공]

[헤럴드경제=구본혁 기자] “온도를 높이면 수율이 좋아질 거야.” 연구자가 말 한마디만 하면 인공지능(AI)이 이를 이해하고 다음 실험 조건을 스스로 설계하는 기술이 개발됐다. 연구자의 경험과 지식을 AI에 직접 전달해 불필요한 실험을 줄이고 신소재와 촉매 개발에 걸리는 시간과 비용을 획기적으로 낮출 수 있을 전망이다.

한국화학연구원은 화학플랫폼연구본부 안광노 박사 연구팀이 연구자의 자연어 지식을 AI가 해석해 실험 계획에 반영하는 ‘인간 참여형 최적화’ 기술을 개발했다고 14일 밝혔다.

이번 기술은 연구자가 말이나 글로 전달한 경험과 지식을 거대언어모델(LLM)이 이해하고, 이를 실험 조건을 결정하는 AI에 전달하는 것이 핵심이다. 복잡한 프로그래밍이나 수식 없이도 연구자와 AI가 대화하며 실험을 설계할 수 있다.

최근 과학계에서는 AI가 실험 결과를 학습하고 다음 실험을 스스로 결정하는 ‘자율실험실(SDL)’이 차세대 연구개발 방식으로 주목받고 있다.

기존 자동화 장비가 정해진 실험을 반복하는 데 그쳤다면 자율실험실은 AI가 실험 결과를 분석해 온도와 압력, 원료 배합 등 조건을 바꾸며 최적의 결과를 찾아낸다.

하지만 기존 자율실험실 AI는 연구자가 이미 알고 있는 지식조차 활용하지 못하고 처음부터 실험을 반복해야 하는 한계가 있었다.

특히 한 번의 합성과 분석에 반나절 이상 걸리는 촉매나 신소재 개발에서는 불필요한 실험이 연구기간과 비용을 늘리는 주요 원인으로 지적돼 왔다.

연구팀은 이를 해결하기 위해 연구자의 언어를 이해하는 LLM과 적은 실험으로 최적 조건을 찾는 ‘베이지안 최적화 AI’를 결합했다.

연구자가 “온도를 높이면 수율이 증가한다”는 식으로 경험을 전달하면 LLM이 이를 실험에 필요한 사전정보와 제약조건으로 변환한다. 이후 최적화 AI가 해당 정보를 반영해 다음 실험 조건을 선택하는 방식이다.

특히 연구자의 경험이나 판단이 잘못됐을 경우 AI가 이를 스스로 걸러내는 안전장치도 구현했다.

연구진이 입력한 코드를 살펴보고 있다.[한국화학연구원 제공]
연구진이 입력한 코드를 살펴보고 있다.[한국화학연구원 제공]

연구팀이 개발한 ‘적응형 신뢰도 검증(AWCD)’ 기술은 연구자의 조언과 실제 실험 데이터가 얼마나 일치하는지 지속적으로 확인한다. 조언이 데이터와 일정 수준 이상 어긋나면 해당 정보를 자동으로 배제하고 실제 데이터에 기반한 탐색으로 전환한다.

실제 화학반응 및 소재 데이터를 활용한 가상실험에서 여러 원료를 결합하는 반응의 최적 조건 탐색 횟수는 기존 약 30회에서 10회 이내로 줄었다.

전기전도성 복합소재의 경우 기존 약 20회 필요했던 탐색이 3~5회로 감소했다. 기존 대비 실험 횟수를 최대 4분의 1 이하로 줄인 것이다.

연구팀에 따르면 이러한 효과는 실제 실험 데이터 약 40건을 미리 확보한 것과 맞먹는 수준이다. 반나절 이상 소요되는 촉매 실험에 적용하면 초기 탐색 기간을 약 20일 단축할 수 있다는 설명이다.

연구팀은 실험 도중에도 연구자가 AI와 대화하며 방향을 수정할 수 있는 ‘AI 코사이언티스트(Co-Scientist·공동연구자)’ 인터페이스도 개발해 공개했다.

안광노 박사는 “이번 기술은 연구자와 AI가 서로 도움을 주고받으며 함께 연구하도록 돕는 실험 동료이자 자율실험실의 두뇌 역할을 하는 핵심 소프트웨어”라며 “연구개발에 투입되는 시간과 비용을 크게 줄이는 데 기여할 것”이라고 말했다.

이번 연구결과는 국제학술지 ‘저널 오브 케미컬 인포메이션 앤 모델링(Journal of Chemical Information & Modeling)’ 8월호에 게재됐다.


nbgkoo@heraldcorp.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