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 장기금리 5%대 급등…2023년 폭락장 넘어서
프랑스 국채금리 한때 5%…유로존 위기 재점화
CXMT 추격에 D램 점유율 비상…K반도체 긴장
공포 구간에는 ‘현금 확보’가 용기와 만용 가른다
[강구현 미래에셋증권 수석매니저/정리=홍태화 기자] 주가가 폭락할 때마다 투자자들 사이에서는 어김없이 같은 말이 등장한다. ‘남들이 두려워할 때 용기를 내야 한다’는 것이다. 그러나 모든 폭락이 매수 기회가 되는 것은 아니다. 주가가 충분히 떨어졌다는 이유만으로 섣불리 뛰어들었다가는 더 큰 손실을 떠안을 수 있다.
중요한 것은 하락의 원인이 일시적인 공포인지, 시장의 근본적인 환경이 바뀌고 있다는 신호인지를 구분하는 일이다. 고금리와 유럽 재정위기, 중국 반도체 기업의 추격이라는 악재가 한꺼번에 덮친 지금, 국내 증시는 투자자들에게 용기와 만용의 차이를 묻고 있다.
지난 7월 말 기고문에서 필자는 투자자들에게 용기를 내야 하는 구간이라고 강조했다. 당시 코스피는 7월 한 달 동안 8000중반에서 5000초반까지 급락한 상태였다. 이후 7000선을 회복했지만 본격적인 반등보다는 방향성을 찾는 횡보에 가까웠다.
그럼에도 긍정적인 신호는 있었다. 시장을 주도해 온 반도체 업종이 주춤한 사이 그간 소외됐던 업종들이 상승하며 순환매에 대한 기대감이 커진 것이다. 하지만 프랑스발 재정위기 우려와 중국 메모리 반도체 기업 창신메모리테크놀로지(CXMT)의 추격 소식이 겹치면서 코스피는 다시 7월 저점을 향해 가고 있다.
금리는 중력…모든 것을 끌어 내린다
현재 증시에서 가장 경계해야 할 위험은 금리다. 금리는 중력과 같아서 모든 자산의 가격을 끌어내린다. 미국과 이란의 전쟁 이후 미국 국채금리는 가파르게 상승했다. 미국 국채 2년물 금리는 연 5%에 육박했고, 10년물과 30년물 금리는 각각 5.2%, 5.6% 수준까지 치솟았다. 고금리 충격으로 글로벌 증시가 급락했던 2023년 9~10월을 넘어서는 수준이다.
금리가 오르면 기업의 자금 조달 비용이 커지고, 미래에 벌어들일 이익의 현재 가치도 낮아진다. 그만큼 주식에 투자할 매력이 떨어진다는 의미다. 실제 2023년 9월과 10월 미국 국채금리가 급등하자 스탠더드앤드푸어스(S&P)500지수는 각각 4.87%, 2.2% 하락했다. 같은 기간 코스피도 3.57%, 7.59% 떨어졌다.
가장 크게 무너진 곳은 코스닥이었다. 9월 9.41%, 10월 12.48%씩 두 달 연속 급락하며 두 달 새 20% 넘게 빠졌다. 숫자가 찍히지 않고 성장의 청사진에 기대던 섹터일수록 많이 무너졌었다. 금리 부담은 이익이 먼 미래에 몰려 있는 성장주와 중소형주 시장에 가장 가혹했다. 지금의 금리 수준은 당시를 아득히 넘어선다.
더 큰 문제는 최근 금리 상승이 단순히 전쟁에 따른 유가 상승이나 인플레이션 우려만으로 설명되지 않는다는 점이다.
인공지능(AI)이 생산성을 높여 미국 경제의 장기 성장률을 끌어올릴 것이라는 기대도 장기금리 상승에 영향을 미치고 있다. 이는 반대로 AI 투자가 둔화하거나 기대했던 성과를 내지 못할 경우 성장에 대한 기대가 무너지면서 금리와 주가가 동시에 하락할 수 있다는 의미이기도 하다.
미국의 재정 불안도 금리를 밀어 올리는 요인이다. 국제 신용평가사 피치는 2023년 8월 미국의 국가신용등급을 최고 등급인 AAA에서 AA+로 낮췄다. 지난해 5월에는 무디스마저 Aaa에서 Aa1으로 강등했다. 두 기관 모두 막대한 국가부채와 재정 건전성 악화를 문제 삼았다.
여기에 구글을 비롯한 미국의 주요 하이퍼스케일러들이 AI 투자자금을 조달하기 위해 장기채권 발행에 나서고 있다. 일부 우량기업은 미국 정부보다 높은 신용등급을 보유하면서도 국채보다 높은 이자를 제시한다. 투자자들이 미국 국채 대신 이들 기업의 회사채를 선택할 유인이 커진 것이다. 이는 미국 국채의 수요를 분산시켜 금리 상승 압력을 키울 수 있다.
2011년 유럽 재정위기 데자뷔
미국의 금리 상승에 더해 최근에는 프랑스의 재정위기까지 글로벌 금융시장을 흔들고 있다. 프랑스 10년물 국채금리는 연초 3.6% 수준에서 최근 4.96%까지 상승했다. 국가신용등급이 더 낮은 이탈리아와 그리스보다도 높은 금리를 부담하게 된 것이다.
프랑스 정부가 재정적자를 제대로 줄이지 못할 경우 신용등급이 추가로 하향될 수 있다는 경고도 나왔다. 최근 일본의 대형 자산운용사가 프랑스 국채를 전량 매도하고 독일과 일본 국채로 갈아탔다는 소식은 투자자들의 불안감을 더욱 키웠다.
프랑스는 유로존에서 독일에 이어 두 번째로 경제 규모가 큰 국가다. 프랑스의 재정위기가 단순히 한 국가의 문제로 끝나지 않을 수 있다는 의미다. 프랑스 국채에 대한 불신이 확산하면 유로존 전반의 국채금리가 흔들리고, 글로벌 금융시장에도 충격이 전해질 수 있다.
2011년 유럽 재정위기를 떠올리게 한다. 당시 그리스의 국가부채 문제가 유럽 전역으로 확산하면서 글로벌 주식시장은 급락했다. 미국도 글로벌 금융위기의 여파에서 완전히 벗어나지 못한 상태였다. 실업률은 9%대에 달했고, 국가채무 문제로 정치권이 극심한 갈등을 겪으면서 사상 처음으로 국가신용등급이 강등됐다.
당시 금융시장에서는 역설적인 현상이 나타났다. 미국의 신용등급이 강등됐는데도 미국 국채 가격은 오히려 급등한 것이다. 유럽발 위기가 확산하자 투자자들이 위험자산을 팔고 상대적으로 안전한 달러와 미국 국채로 몰려들었기 때문이다. 미국의 재정 건전성에도 문제가 있었지만 투자자들에게는 여전히 가장 믿을 만한 피난처였던 셈이다.
현재 상황이 2011년과 똑같이 전개될 것이라고 단정할 수는 없다. 미국의 부채 부담은 당시보다 커졌고 물가와 금리 환경도 다르다. 다만 글로벌 금융시장의 불안이 심화하면 달러 자산과 미국 국채에 대한 선호가 다시 높아질 가능성을 염두에 둬야 한다. 투자자들이 포트폴리오에서 달러 자산의 비중을 점진적으로 확대하는 방안을 고민해야 하는 이유다.
메모리 독주, 지속 가능한가
국내 증시로 눈을 돌리면 반도체 산업의 경쟁 구도에도 변화가 나타나고 있다. 최근 삼성전자와 SK하이닉스 주가를 흔든 주요 악재는 중국 메모리 반도체 기업 CXMT의 추격이다. CXMT는 최근 차세대 기술을 적용한 서버용 D램을 연내 출시하겠다는 계획을 발표했다.
핵심은 중국이 한국의 주력 산업인 메모리 반도체 시장에서 빠르게 존재감을 키우고 있다는 점이다. CXMT의 글로벌 D램 시장점유율은 올해 2분기 이미 10% 수준까지 높아졌다. 아직 기술력에서는 한국 기업들에 뒤처져 있다는 평가가 나오지만, 중국 기업이 생산량을 늘리고 가격 경쟁에 나선다면 삼성전자와 SK하이닉스의 수익성에도 타격을 줄 수 있다. 특히 한국 기업들이 오랜 기간 누려온 메모리 반도체 시장의 주도권이 흔들릴 가능성을 경계해야 한다.
중국 기업의 기술 개발 발표가 당장 한국 기업들의 경쟁력 상실을 의미하는 것은 아니다. 기술 개발과 안정적인 대량 생산은 별개의 문제이기 때문이다. 그럼에도 지난 7월 중국의 반도체 장비 국산화 소식과 9월 CXMT의 고대역폭메모리(HBM) 생산 관련 소식이 전해졌을 때 국내 반도체 기업들의 주가는 큰 폭으로 하락했다. 시장은 미래의 위협을 앞당겨 반영한다.
반도체 산업의 미래를 판단하는 데 더 중요한 것은 글로벌 AI 기업들의 투자 여력이다. 지금까지 반도체 호황을 이끌어 온 원동력은 구글과 마이크로소프트 등 거대 기술기업들의 막대한 AI 설비투자였다. 그러나 최근에는 이들이 투자에 쏟아붓는 돈만큼 충분한 현금을 벌어들이고 있는지에 대한 의구심이 커지고 있다.
실제 최근 들어 하이퍼스케일러들의 잉여현금흐름(FCF)이 악화하면서 우려가 커졌다. AI 기업 앤트로픽의 3분기 매출은 전 분기보다 46% 증가했지만, 매출이 두 배 이상 늘었던 2분기와 비교하면 성장 속도가 둔화됐다. 대규모 AI 인프라 투자를 진행해 온 코어위브의 재무 건전성에 대한 우려도 확대되고 있다.
결국 AI 기업들이 막대한 투자비를 회수할 만큼의 수익을 창출할 수 있느냐가 관건이다. 이들 기업의 현금창출 능력이 개선되고 설비투자가 지속될 것이라는 확신이 생겨야 국내 반도체 산업에 대한 투자심리도 본격적으로 회복될 수 있다.
공포와 환희의 사이클, 지금 위치는…
증시 내부의 수급 상황 역시 불안하다. 한때 130조원을 넘어섰던 고객예탁금은 은행으로 돌아가면서 100조원 수준까지 줄었다. 반면 신용거래융자 잔고는 8월 초 30조원가량에서 최근 34조원 수준까지 늘어났다. 증시에서 현금은 빠져나가고 있지만, 빚을 내 주식을 사는 투자자는 오히려 늘어난 것이다.
특히 개인투자자들은 삼성전자와 SK하이닉스에 대한 기대를 쉽게 내려놓지 못하는 모습이다. 지난 7월 코스피 저점 이후 외국인과 기관은 대규모 매도에 나섰지만 개인투자자의 매도 규모는 상대적으로 제한적이었다.
문제는 시장이 빠르게 반등하지 못할 경우다. 빚을 내 주식을 매수한 투자자들이 증거금 부족으로 반대매매에 내몰리면 대규모 매도 물량이 쏟아질 수 있고, 이는 다시 주가 하락을 부추기는 악순환으로 이어질 위험이 있다. 반도체 업종의 반등만을 기다리며 무리하게 투자 비중을 늘리는 전략이 위험할 수 있는 이유다.
주식시장은 언제나 공포와 환희가 반복되는 곳이다. 성공적인 투자를 위해서는 공포가 극에 달했을 때 현금을 쓸 수 있어야 하고, 반대로 시장이 상승하며 위험을 잊어갈 때는 현금을 확보해야 한다. 하지만 실제 투자에서는 정반대의 행동을 하기 쉽다. 주가가 오를 때는 더 큰 수익을 기대하며 무리하게 투자하고, 주가가 하락하면 정작 좋은 기회가 찾아와도 투자할 여력이 남아 있지 않은 것이다.
따라서 평소 일정 수준의 현금을 확보해 두는 습관이 중요하다. 단기채권 상장지수펀드(ETF)나 예금 등 상대적으로 안정적인 자산을 활용하는 것도 방법이다. 이는 단순히 손실을 피하기 위한 방어 수단이 아니라, 시장이 공포에 휩싸였을 때 기회를 잡기 위한 준비이기도 하다.
필자가 투자하면서 가장 많이 읽었던 책 중 하나는 오크트리캐피털 회장 하워드 막스의 ‘투자와 마켓 사이클의 법칙’이다. 이 책에서 강조하는 핵심은 시장의 미래를 정확하게 예측하는 것보다 현재 시장이 어떤 국면에 놓여 있는지를 이해하는 일이 중요하다는 점이다.
지금 증시는 분명 투자자들의 용기를 시험하는 구간이다. 하지만 주가가 많이 하락했다는 이유만으로 무작정 매수에 나서는 것은 용기가 아니다. 높은 금리와 글로벌 금융시장 불안, 산업 경쟁력 변화라는 위험을 충분히 살피고 자신이 감당할 수 있는 범위에서 투자해야 한다. 공포 속에서도 기회를 찾는 것은 용기지만, 위험을 외면한 채 과거의 상승만을 기대하는 것은 만용이다. 지금 투자자들에게 필요한 것은 무조건적인 낙관도, 지나친 비관도 아닌 냉정한 판단과 이를 실행할 수 있는 준비다.
th5@heraldcorp.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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