선거 결과에 베팅하지 말고, 달력에 나눠 담아라
미국 중간선거…가을을 ‘매수 시간표’로 쓰는 법
[김성민 NH투자증권 팀장/정리=홍태화 기자] 폭풍이 지나간 자리에 남은 것은 침묵이었다. 8월 객장은 조용했다.
올해 상반기 한국 증시는 6개월 만에 지수가 두 배가 됐다. 그리고 7월 한 달 만에 22%가 빠졌다. 고점에서 저점까지의 하락률을 뜻하는 최대낙폭(MDD) 기준으로는 42%였다. 지수가 급락할 때 매매를 일시 중단시키는 서킷브레이커가 7월에만 네 차례 발동됐다. 1997년 외환위기 국면에 견줄 만한 속도였다.
그랬던 시장이 8월에는 서킷브레이커를 한 번도 울리지 않았다. 하루 50조원에 달하던 거래대금은 절반 수준으로 줄었다. 폭풍이 지나간 자리에 남은 것은 공포도 환호도 아니었다. 길게 이어지는 관망이었다.
창구에서 받는 질문도 달라졌다. 6월 급락장에서 가장 많았던 질문은 “예정된 분할매수를 앞당겨도 되겠느냐”였다. 요즘 가장 자주 듣는 질문은 “9월과 10월을 어떻게 보내야 하느냐”, “연말까지 무엇을 보고 기다려야 하느냐”다. 방향을 묻던 질문이 일정을 묻는 질문으로 바뀐 것이다. 큰 변동성을 두 차례 통과하며 얻은 학습효과라고 본다.
행동에서도 몇 가지 흐름이 읽힌다. 7월을 지나며 레버리지성 자금과 단기 회전매매를 정리한 고객이 눈에 띄게 늘었다. 지수 전체를 사기보다 이익이 실제 숫자로 확인되는 기업으로 압축하려는 수요가 커졌다.
8월 한 달에만 두 자릿수로 뛴 금과 4%대 후반까지 올라온 미국 장기금리를 계기로 채권 문의도 부쩍 많아졌다. 새 자금을 주식에 넣는 데는 서두르지 않는 분위기다. 자산을 늘리는 국면이라기보다, 연말 이후를 위해 진용을 정비하는 국면에 가깝다.
요컨대 지금 큰손들은 팔지도, 서둘러 사지도 않는다. 대신 달력을 본다. 그 달력 한가운데에 11월 3일, 미국 중간선거가 있다.
개표가 끝나면 사라질 비용에 계좌를 걸지 마라
시장이 멈춰 선 이유를 이해하려면 올해가 남긴 교훈부터 짚어야 한다. 상반기 지수를 두 배로 밀어올린 것은 기업 이익만이 아니었다. 사상 최대 규모의 고객예탁금(증권사에 맡겨둔 투자 대기자금)과 신용융자(빚을 내서 산 주식), 그리고 한 종목의 등락을 두 배로 따라가는 단일 종목 레버리지 상장지수펀드(ETF)로 대표되는 쏠림이 상승의 진폭을 키웠다. 7월에는 같은 구조가 정확히 반대 방향으로 작동하며 낙폭을 키웠다.
흥미로운 것은 그 사이 펀더멘털, 즉 기업의 기초체력은 크게 훼손되지 않았다는 점이다. 8월 반도체 수출은 466억5000만 달러로 역대 최대를 기록했고, 세 달 연속 400억 달러를 웃돌았다. 차세대 고대역폭메모리(HBM) 양산 소식에 목표주가를 올려 잡는 증권사 리포트도 다시 나오기 시작했다.
가격은 극단을 오갔지만 이익의 방향은 한 번도 바뀌지 않았다. 올해 수익률을 가른 것은 ‘무엇을 샀느냐’가 아니라 ‘언제, 얼마나 나눠 샀느냐’였다는 뜻이다.
이제 앞에 놓인 일정을 보자. 11월 3일 미국 중간선거는 하원 전체와 상원 3분의 1을 새로 뽑는다. 대통령 선거는 2024년에 치러졌고 다음은 2028년이니, 올해는 4년 대통령 임기의 딱 중간이다. 역사적으로 중간선거가 있는 해는 4년 주기 가운데 주가가 가장 부진했던 해다.
패턴은 반복돼 왔다. 선거를 앞둔 몇 달간 시장이 눌리고 변동성지수가 높아졌다가, 선거를 전후해 불확실성이 걷히면서 연말까지 회복하는 흐름이다. 가장 최근의 중간선거 해였던 2018년과 2022년에도 가을에 저점을 만들고 11월에 되돌리는 모습이 나타났다.
이유는 의외로 단순하다. 시장이 싫어하는 것은 어느 정당의 승리가 아니라 ‘결과를 모른다는 비용’이다. 그리고 그 비용은 개표와 함께 소멸한다.
물론 올해를 과거 평균에 그대로 대입하기는 어렵다. 미국 증시는 통상의 중간선거 해와 달리 이미 두 자릿수 상승을 쌓아둔 상태라, 선거를 전후해 오히려 되돌림이 나올 수 있다는 반론이 만만치 않다. 미국과 이란의 충돌이 재격화하며 국제 유가와 미국 휘발유 가격은 높은 수준을 유지하고 있고, 미국 10년물 국채금리는 4%대 후반에서 물가 부담을 반영하는 중이다.
정리하면 이렇다. 이익의 방향은 위를 보고 있지만, 9월과 10월은 금리·유가·선거라는 세 개의 관문이 겹치는 구간이다. 이 구간에서 방향을 단정하는 것은 전문가에게도 무리다. 그래서 큰손들이 내린 결론은 방향에 대한 베팅이 아니라, 시간에 대한 배분이다.
달력에 표시해 둘 날짜들
9월부터 11월 초까지, 달력에 표시해 둘 자리는 다섯 곳이다. 첫 관문은 9월 중순이다. 11일 발표되는 미국 8월 소비자물가지수(CPI)에 이어 15~16일 연방공개시장위원회(FOMC)가 열린다.
물가가 다시 오르고 있는지, 연방준비제도가 연말까지 금리를 어떻게 가져갈 생각인지가 한 주 안에 연달아 드러나는 자리다. 관건은 회의 결과와 함께 공개되는 점도표다. 연준 위원들이 각자 예상하는 금리 수준을 점으로 찍어 놓은 표인데, 지난 7월 회의에서 이미 금리 인상 소수의견이 나왔던 터라 이 점들이 위로 올라붙으면 변동성이 다시 커질 수 있다.
그로부터 일주일 뒤인 24일에는 시진핑 중국 국가주석이 미국을 찾는다. 중간선거를 앞둔 시점의 회담인 만큼 미중 갈등과 미국·이란 문제에서 합의 기류가 부각될 여지가 있고, 그 경우 유가와 물가가 함께 내려갈 수 있다. 앞선 FOMC가 위험 요인이라면 이쪽은 완화 요인에 가깝다.
9월 말에서 10월로 넘어가는 길목에는 성격이 전혀 다른 이벤트가 하나 놓여 있다. 목표 기업가치 약 2조달러, 조달 규모 최대 1000억달러가 거론되는 앤트로픽의 기업공개(IPO)다.
사상 최대급 규모라는 점보다 중요한 것은, 비상장 영역에 머물러 있던 인공지능(AI) 기업의 가치가 처음으로 공개시장의 검증대에 오른다는 사실이다. 초대형 공모는 기관 자금을 청약으로 빨아들이며 기존 AI·반도체 주식에 단기 수급 공백을 만들 수 있고, 흥행에 성공하면 반대로 AI 장세 전체의 재점화 신호가 된다. 어느 쪽이든 상장 전후 몇 주는 AI 관련 자산 전반의 변동성 구간으로 봐야 한다.
하반기 밀도가 가장 높은 구간은 10월 중하순이다. 3분기 실적 시즌이 시작되며 반도체 이익이 숫자로 확인되고, 14일에는 9월 CPI가, 27~28일에는 중간선거 직전 마지막 FOMC가 잡혀 있다. 실적과 물가와 금리가 2주 안에 한꺼번에 답을 내놓는 셈이다.
그리고 11월 3일, 중간선거다. 불확실성이 해소되는 분기점이라는 점에서 앞선 네 개의 날짜와 무게가 다르다. 시장에 재료가 되는 것은 어느 쪽이 이겼느냐가 아니라 ‘결과가 나왔다’는 사실 그 자체다.
비중은 지키되, 채우는 속도를 나눈다. 하반기 포트폴리오의 핵심은 이 문장 하나로 요약된다. 연초에 정한 목표 비중은 그대로 지키되, 그 비중을 채우는 속도를 일정에 따라 배분하는 것이다.
앞서 적은 날짜들이 곧 기준점이 된다. 분할매수 구간을 이 일정들의 전후에 걸쳐 두면, 이벤트가 만드는 급락일이 계획 밖의 사고가 아니라 ‘계획 안의 매수일’이 된다. 이 차이가 생각보다 크다.
주식은 목표 비중을 유지한다. 8월 수출 데이터에서 확인했듯 반도체 수출은 여전히 사상 최고치를 넘어서고 있다. 반도체를 주축으로 소재·부품·장비와 전력기기, 2차전지까지 분산하는 전략이 유효해 보인다.
7월 조정으로 비중이 목표 아래로 내려간 계좌라면, 부족분을 지금 한 번에 채우지 않기를 권한다. 9월부터 선거일 전후까지를 몇 개의 구간으로 나눠 날짜 기준으로 기계적으로 담는다.
역사적으로 변동성이 높았던 선거 전 구간을 피하는 것이 아니라, 그 구간 전체를 매수의 시간표로 쓰는 방식이다. 시점을 맞히려 애쓰는 대신, 어느 날 급락이 오더라도 그날이 이미 계획된 매수일 중 하나가 되게 만드는 것이다.
종목은 이익이 숫자로 확인되는 곳, 즉 수출 통계와 실적으로 검증되는 반도체 중심의 코어를 유지한다. 선거와 정책 뉴스에 출렁일 테마성 자산의 비중은 늘리지 않는다.
채권은 올해 하반기 설계에서 비중이 가장 늘어난 자산이다. 미국 10년물 4%대 후반은 향후 물가가 진정될 경우 이자 수익에 더해 자본차익까지 기대할 수 있는 수준이고, 무엇보다 주식이 흔들리는 구간에서 포트폴리오 전체의 진폭을 줄여준다. 물가와 유가가 여전히 위를 보고 있는 만큼 장기채 역시 한 번에 사지 않고 금리 레벨과 날짜를 나눠 편입한다.
금은 8월에만 두 자릿수 상승하며 헤지 자산으로서의 존재감을 다시 증명했다. 이미 보유한 고객에게는 지금 추격 매수로 늘리기보다 보유분을 유지하는 쪽을 권하고 있다.
달러를 포함한 외화 자산의 역할은 지난 기고에서 상세히 다뤘으므로 반복하지 않겠다. 그 원칙은 선거 국면에서도 그대로 유효하다.
이 자산배분에서 리스크 관리의 핵심은 단 하나다. 선거 결과에 계좌의 운명을 걸지 않는 것. 어느 당이 이기든 포트폴리오가 크게 훼손되지 않는 구조를 만들어 두면, 선거는 위험이 아니라 그저 지나가는 일정이 된다.
‘베팅’으로는 이길 수 없어
개인 투자자가 이번 가을 가장 경계해야 할 것은 ‘선거 결과에 대한 베팅’이다. 결과를 맞히는 것도 어렵지만, 진짜 어려운 것은 그 결과에 시장이 어떻게 반응할지를 맞히는 일이다. 과거 선거들을 돌아보면 예상과 결과가 같았는데도 시장이 반대로 움직인 사례가 수없이 많다. 두 번을 연속으로 맞혀야 돈이 되는 게임은 확률적으로 개인에게 결코 유리하지 않다.
그래도 큰손들의 방식에서 배울 것은 분명히 있다. 첫째, 시점을 맞히려 하지 말고 일정에 맞춘 전략을 세우는 것이다. “쌀 때 사겠다”는 계획이 아니다. 9월부터 연말까지 어느 날 얼마씩 담을지 날짜를 미리 적어두는 것이 계획이다.
둘째, 두 달을 견딜 수 없는 돈은 지금 투자하기에 적합하지 않다. 선거까지의 변동성 구간에서 흔들리는 것은 대개 종목이 아니라, 곧 써야 할 돈을 넣어둔 계좌다.
셋째, 선거 결과가 아니라 수출 통계를 보라. 매달 초 발표되는 수출 데이터는 정치와 무관하게 우리 기업의 이익 방향을 미리 보여주는 지표이고, 누구에게나 공개돼 있다. 이익이 늘고 있는 한, 선거가 만든 조정은 결국 지나간 모든 조정과 같은 운명을 맞았다.
11월 3일이 지나면 시장은 또 다음 걱정거리를 찾아낼 것이다. 그러나 선거는 두 달이면 지나가고, 기업의 이익은 남는다. 이번 가을 투자자가 할 일은 결과를 예언하는 것이 아니라, 어떤 결과가 나와도 흔들리지 않고 지킬 수 있는 일정표를 미리 적어두고 그대로 실행하는 것이다. 그렇게 보낸 하반기가 결국 2027년을 준비하는 시간이 될 것이라고 믿는다.
th5@heraldcorp.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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