임신 인지부터 처방까지 시간 소요돼
원내조제·의사 거부권도 접근성 변수
지방은 분만 취약지…시간·비용 부담
[헤럴드경제=전새날 기자] 정부가 먹는 임신 중지약의 제도권 도입을 공식화했지만 실제 이용자가 체감하는 접근성을 확보하는 데는 여전히 적지 않은 과제가 남았다는 지적이 나온다. 임신 9주 이내라는 처방 기준과 초기 2년간 의료기관 내 처방·조제 원칙 등이 병원 접근성, 비용 부담 등과 맞물릴 경우 제도권 밖에서 약을 구하는 수요가 계속될 수 있다는 우려다.
성평등가족부와 보건복지부, 식품의약품안전처는 지난 16일 정부서울청사에서 개최된 제14회 국가정책조정회의에서 임신중지 약물 도입 방안을 보고했다. 정부는 내년 1분기 임신중지약 도입을 목표로 관련 절차를 추진하면서 초기 2년간 의사의 진단과 처방에 따른 의료기관 내 조제·투약을 원칙으로 하는 방안을 제시했다.
전문가들은 약물의 정식 도입 자체는 임신중지에 대한 안전한 의료 접근성을 높이는 계기가 될 수 있지만, 이용 조건이 지나치게 까다로울 경우 제도 도입 효과가 제한될 수 있다고 지적한다.
가장 먼저 거론되는 것이 임신 주수다. 김정혜 한국여성정책연구원 부연구위원은 “접근성 문제는 여전히 남아 있고 일단 시기가 너무 짧다”며 정부가 제시한 9주라는 기준이 이용자에게 또 다른 장벽이 될 수 있다고 말했다.
임신 사실을 인지한 뒤 임신테스트를 하고 병원을 찾는 데 시간이 걸리는 데다 거주 지역에 처방할 수 있는 의료기관이 충분하지 않을 경우 예약과 이동에 추가 시간이 필요하다는 지적이다. 병원을 찾았더라도 의사가 처방을 거부할 경우 다시 다른 의료기관을 찾아야 해 그 사이 9주를 넘길 가능성도 있다.
김 부연구위원은 “접근성을 결정하는 요인이 굉장히 여러 가지”라며 지역 내 임신중지 진료가 가능한 병원과 처방할 수 있는 의사의 수, 병원 운영시간, 비용, 사회적 낙인, 개인의 월경 주기 등을 꼽았다.
그는 “9주가 단지 여성이 9주 이내에 임신인 걸 확인하고 병원에 가면 된다는 문제가 아니다”며 “임신을 인지하고 병원에 가기까지 걸리는 시간, 병원에서 처방을 거부할 가능성 등이 모두 주수를 뒤로 미루는 요소”라고 말했다.
초기 2년간 적용될 원내 처방·조제 방식도 접근성의 변수로 꼽힌다. 강경연 건강사회를위한약사회 사무국장은 임신 주수를 확인하고 약을 복용한 뒤 경과를 확인하는 절차를 고려하면 최소 세 차례 의료기관을 방문하게 될 가능성이 있다고 설명했다.
강 사무국장은 “병원에 가서 주수를 확인하고 1제를 먹은 뒤 하루에서 이틀 있다가 2제를 먹고 일주일에서 2주 사이에 한 번 더 온다면 최소 병원 방문이 3회”라며 “상황에 따라 4회가 될 수도 있다”고 말했다.
다만 정부는 원내 처방·조제 원칙을 밝히면서도 구체적으로 어느 정도까지 의료기관에서 복용 및 경과 관찰을 하게 할지는 아직 공개하지 않았다. 강 사무국장은 “정부가 발표한 방식으로 원내 조제와 원내 투약을 한다고 하면 약물에 대한 이용 가능성이나 접근성은 확 떨어질 것”이라며 병원 방문에 따른 시간과 비용, 산부인과 진료에 대한 사회적 낙인 등이 겹칠 경우 온라인 유통 시장이 남을 가능성이 있다고 지적했다.
나영 성적권리와재생산정의를위한센터 ‘셰어’ 대표 역시 병원 접근성과 의료비 부담을 주요 장벽으로 꼽았다. 나 대표는 “결국 대부분은 병원에 가야 하는 부담과 의료비 부담 때문에 약을 고려한다”며 “보험 적용과 원내 처방·조제 규제가 완화되지 않으면 온라인에서 약을 구매하는 사람들을 안전하게 병원에서 처방받을 수 있도록 유도할 제도적인 장치가 미비하게 된다”고 말했다.
“지역별 접근성 편차 커…보완책 필요”
특히 지역별 의료기관 격차에 대한 우려도 제기됐다. 인도주의실천의사협의회 여성위원회는 지난 17일 기자 간담회에서 처방자와 의료기관을 특정 전문의와 시설을 갖춘 기관으로 한정하고 등록·허가까지 요구할 경우 지역별 접근성 격차가 커질 수 있다고 주장했다.
이 단체에 따르면 2023년 기준 전국 250개 시군구 가운데 72곳이 분만 취약지다. 산부인과가 부족한 지역에서는 인근 지역으로 이동해야 하고, 그 병원에서 처방이 이뤄지지 않을 경우 다시 다른 병원을 찾아야 해 시간과 비용 부담이 커질 수 있다.
여성위원회는 특히 의료기관이 부족한 지역의 경우 자율 신청 방식의 등록제만으로는 처방 기관 공백을 해소하기 어렵다며 처방 가능한 공공·상급의료기관 지정이나 비대면 진료·응급 처방 연계 체계 등 보완책이 필요하다고 주장했다.
원내 대기나 단기 입원 방식의 일률적인 적용에도 문제를 제기했다. 첫 번째 약인 미페프리스톤 복용 이후에는 신체적으로 느낄 수 있는 증상이 거의 없고, 두 번째 약인 미소프로스톨 이후 나타나는 출혈·복통·발열 등은 예상되는 증상인 만큼 모든 이용자에게 원내 대기를 요구할 의학적 근거가 충분하지 않다는 취지다.
이에 따라 전문가들은 임신 중지약을 전문의약품으로 관리하되 의사의 진단과 처방 이후에는 자택에서 복용할 수 있도록 하는 방식 등을 검토할 필요가 있다고 제안한다.
김 부연구위원은 “계속 이야기해 온 것은 병원 처방이 아니라 약국에서 구매할 수 있도록 하는 방안”이라며 약국에서 판매하더라도 전문의약품으로 관리하는 방식이 가능하다고 주장했다. 또 초음파 검사 등을 일률적으로 의무화하는 방식에 대해서도 재검토가 필요하다고 말했다.
강 사무국장 역시 “전문의약품으로 관리돼 의사의 진단과 처방 아래 약이 사용돼야 한다”면서도 “그 이후에는 자택에서 복용할 수 있도록 하는 방식이 접근성을 높이는 데 필요하다”고 말했다.
나 대표는 “임신 중지가 다른 질병처럼 꼭 필요한 의료 서비스로서 공식적인 의료 정보로 제공되는 환경이 조성되면 병원 진료 자체를 꺼리는 일도 많이 줄어들 것”이라며 정부 차원의 정보 제공과 제도적 접근성 개선이 함께 이뤄져야 한다고 강조했다.
newday@heraldcorp.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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