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음악·명리학·문화행정 넘나든 전방위 문화인
[헤럴드경제=고승희 기자] 1990년대 한국 대중음악 비평의 한 시대를 이끈 강헌 한국문화예술교육진흥원 이사장이 세상을 떠났다. 향년 64세.
가욕계에 따르면 강헌 이사장은 20일 오후 별세했다. 구체적인 사인은 알려지지 않았다.
1962년 부산에서 태어난 강 이사장은 소설가를 꿈꾸며 서울대 국어국문학과에 진학했다. 이후 같은 대학 음악대학원에서 음악 이론을 공부했다. 처음 발을 디딘 곳은 영화계였다. 독립영화집단 ‘장산곶매’에서 ‘오! 꿈의 나라’, ‘파업전야’, ‘닫힌 교문을 열며’의 제작에 참여했다. 상업영화 ‘아담이 눈을 뜰 때’와 ‘정글스토리’의 시나리오, TV 드라마 ‘제3극장’의 극본도 썼다.
평론가로 들어선 계기는 후배의 부탁 때문이었다. 후배가 청한 가수 김현식에 관한 평론 한 편이 출발점이 됐다. 1991년 발표한 ‘김현식론: 통기타에서 블루노트까지’를 시작으로 강 이사장은 신문과 잡지, 방송을 오가며 가요를 비평했다. 노래를 그 노래가 태어난 사회와 역사 속에서 읽어 내는 비평이었다.
서태지와 신해철은 강헌 비평의 중심에 있던 이름이다. 1994년 계간지 ‘리뷰’ 창간호에서 강 이사장은 서태지와 마주 앉았다. 두 사람은 록 음악, 립싱크, 샘플링, 방송가의 부조리까지 깊이 있게 이야기를 나눴다. 신해철과는 남다른 인연을 이어 갔다. 신해철은 강 이사장의 제안으로 영화 ‘정글스토리’ OST(1996), 박노해 ‘노동의 새벽’ 20주년 헌정 음반(2004), 노무현 전 대통령 추모 프로젝트 ‘탈상’(2012)에 참여했다. 2014년 신해철이 세상을 떠난 뒤, 강 이사장은 신해철의 데뷔 30주년이던 2018년 ‘신해철: 인 메모리 오브 신해철(In Memory of 申海澈) 1968-2014’를 펴내 오랜 벗을 기렸다.
강 이사장은 글에만 머물지 않고 무대도 직접 만들었다. 콘서트 ‘자유’와 ‘포크 30주년 기념 페스티벌’을 열었다. 음악극 ‘끝나지 않는 노래’, ‘천변살롱’, ‘천변 카바레’, ‘공주는 잠 못 이루고’도 무대에 올렸다. 동료들과 문화계간지 ‘예감’, ‘상상’, ‘리뷰’를 만들었다. 홍익대·성공회대·단국대·성균관대 등에서는 20년간 대중음악사를 가르쳤다.
삶의 방향이 크게 바뀐 건 42세 때였다. 대동맥이 찢어져 23일 동안 혼수상태에 빠졌다가 깨어났다. 이후 명리학을 공부해 2015년 ‘명리: 운명을 읽다’를 냈다.
문화행정가로서의 이력도 길었다. 2018년 12월 경기문화재단 대표이사로 취임해 한 차례 연임했다. 임기를 넉 달가량 남긴 2022년 8월에는 건강을 이유로 사직서를 냈다. 한국광역문화재단연합회 5대 회장을 지냈고, 지난해 12월 문화체육관광부 산하 한국문화예술교육진흥원 이사장에 임명됐다. 임기는 2028년 12월까지였다.
강 이사장은 별세 직전까지 조선일보에 칼럼 ‘강헌의 히스토리 인 팝스’를 연재했다. 저서로 ‘음악의 파장 공명의 파장’, ‘전복과 반전의 순간’, ‘강헌의 한국대중문화사’, ‘명리: 운명을 읽다’, ‘명리: 운명을 조율하다’, ‘생의 찬미’ 등을 남겼다. 빈소는 21일 오전 9시 서울성모병원 장례식장 2호실에 마련될 예정이다.
shee@heraldcorp.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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