재경위 “번복땐 신뢰훼손” 검토보고서
정부도 ‘과세에 문제없다’ 입장 제출
시기는 열어놔, 과세 유예 가능성도
내년 1월 시행을 앞둔 가상자산 과세를 두고 형평성과 제도 미비를 이유로 폐지·유예 요구가 이어지는 가운데, 이미 세 차례 미룬 과세 방침까지 뒤집으면 조세정책의 신뢰도가 흔들릴 수 있다는 국회 보고서가 나왔다. 특히 가상자산 시장을 주식 시장처럼 정책적으로 부양하기 적절치 않다는 진단을 내려 주목된다.
여기에 정부도 가상자산 과세를 위한 분석 시스템을 연말 개통하고, 내년부터 해외 거래에 대한 정보 파악이 가능하다는 입장을 국회에 제출했다.
업계에서는 청년층 자산 형성과 시장 위축에 대한 우려가 지속되고 여야 모두 과세 유예 법안을 발의해 내년 과세 시행을 놓고 올 하반기 정기국회에서 치열한 공방이 펼쳐질 것으로 예상된다.
21일 국회 재정경제기획위원회는 ‘가상자산 과세폐지에 관한 청원’ 검토보고서를 통해 “조세소위원회 논의 등을 통하여 이미 결정된 가상자산 소득에 대한 과세여부를 번복하는 것은 조세 정책에 대한 신뢰도를 저하시킬 수 있다”고 지적했다. 또 국내 가상자산 시장의 불안정성을 야기할 우려도 함께 고려해야 한다고 봤다. 가상자산 과세는 당초 2022년 시행될 예정이었으나 시스템 정비와 투자자 보호, 시장 여건 등을 이유로 세 차례 연기된 바 있다.
해당 청원은 민 모씨 외 5만910명이 참여해 지난 5월 위원회에 회부된 상태다. 청원인들은 금투세 폐지로 국내 주식 일반 투자자의 양도차익에 대한 비과세 체계가 유지되는 반면, 가상자산에는 연간 250만원의 기본공제만 적용해 과세하는 것이 불합리하다고 주장했다. 투자자 보호와 과세 기반이 충분히 갖춰지지 않았다며 과세폐지를 요구한 게 주요 골자다.
지난달 조 모 씨가 제기한 ‘코인과세 2년 유예에 관한 청원’ 역시 5만명 넘는 동의를 얻으면서 과세 재검토를 요구하는 투자자들의 목소리가 이어지는 상황이다. 이와 관련, 국회는 ▷주식 등 다른 금융자산과의 과세 형평성 ▷시장 상황과 청년층 자산 형성 기회 ▷손실공제·세율 등 과세 구조의 적정성 ▷과세 시행에 따른 시장 영향 등을 네 가지 쟁점으로 꼽고 청원인들의 주장과 정부 입장을 검토했다.
먼저 국회는 자산 간 과세 형평성을 둘러싼 문제 제기에 일부 근거가 있다고 봤다. 가상자산 과세 목적 중 하나가 주식 등 다른 자산과의 형평성 확보였던 만큼, 금투세 폐지를 계기로 가상자산 과세도 폐지하자는 주장이 나올 수 있다는 것이다. 다만 가상자산을 금투세와 연계하는 것은 부적절하며, 국내 주식시장과 같은 정책적 부양 필요성이 있는지도 별개라는 반론을 함께 제시했다.
과세가 시장을 위축시키고 청년층 자산 형성에 부정적 영향을 미칠 수 있다는 우려에는 공감했다. 금융정보분석원 조사에 따르면 지난해 하반기 국내 가상자산 시가총액은 87조2000억원으로 전년 동기보다 21.1% 감소했다. 거래소를 가장 많이 이용하는 연령대는 2023년부터 줄곧 30대였다. 국회는 “과세 시행이 시장의 추가 침체와 청년층 자산 형성에 부정적 영향을 미칠 가능성이 있다”면서도 “다만 가상자산 시장을 정책적으로 부양해야 하는지는 논란이 있다”고 진단했다.
과세를 시행하더라도 손실을 얼마나 반영할 것인지는 별도 쟁점으로 남는다. 가상자산 소득은 같은 해 발생한 거래손익을 합산하지만, 손실을 다음 해로 넘겨 공제하는 이월공제는 허용하지 않는다. 청원인들은 폐지된 금투세가 최대 5년간 손실 이월공제를 허용하도록 설계됐던 것과 비교해 불합리하다고 주장했다. 과거 손실을 회복하는 과정에서도 특정 연도에 이익이 발생하면 세 부담이 생길 수 있다는 것이다.
다만 보고서는 두 자산의 손실공제를 동일하게 보기 어렵다고 짚었다. 금투세는 모험자본 육성을 위해 이월공제를 허용했지만, 가상자산은 투기성을 키울 수 있다는 우려로 도입하지 않았다는 설명이다.
또 기타소득으로 분류돼 22%의 높은 세율을 부담한다는 주장에 대해 재경부는 “기본공제 250만원과 단일 소득세율 20%, 납세협력비용 완화 등을 고려하면 현행 기타소득 분류가 적절하다”는 입장이다.
사실상 과세 폐지는 쉽지 않다는 쪽에 무게가 실리면서 추가 유예 여부를 가를 핵심 쟁점은 과세 인프라가 될 것으로 분석된다. 시장에선 투자자 보호와 거래정보 관리체계가 충분히 갖춰지지 않은 상태에서 과세하면 해외 플랫폼으로 투자자금이 유출될 수 있다는 우려가 거세다. 정부 역시 그동안 유예 사유로 꼽혔던 인프라 부족 등이 실제로 얼마나 해소됐는지 입증해야 할 것으로 보인다.
이와 관련, 정부는 관련 인프라를 지속적으로 확충·보완해온 만큼 예정대로 과세하는 데 문제가 없다는 입장을 국회에 제출했다. 가상자산 거래자료 수집·관리 시스템에 더해 올해 말 통합분석시스템을 개통할 계획이다. 2027년부터는 국제적 정보교환제도(CARF)를 통해 국가 간 가상자산 거래정보를 교환한다는 구상이다. 이를 근거로 해외 거래 등에 대한 과세에도 무리가 없다는 입장이다.
다만, 정부가 업계와 만난 자리에서는 과세 시기를 둘러싼 논의 가능성을 열어둔 분위기도 감지된다. 재경부는 20일 권대영 1차관 주재로 국내 5대 원화 거래소 대표와 디지털자산거래소 공동협의체(DAXA·닥사), 학계·법조계 전문가 등이 참석한 현장간담회를 열었다. 현장에선 유예나 예정대로 시행하는 방안 중 어느 한쪽에 무게를 싣지는 않았으며, 거래소별 준비 상황을 구체적으로 점검하지도 않은 것으로 알려졌다. 과세 기준과 거래정보 확보 등 세부 쟁점을 논의하기 위해 실무진 간 워킹그룹을 구성하는 방안도 거론됐다.
업계도 과세 원칙 자체에 반대하기보다 제도적 준비와 보완이 선행돼야 한다는 입장을 전달한 것으로 파악됐다. 거래 유형별 과세 기준을 명확히 하고 손실 이월공제 등을 검토해야 한다는 취지다. 디지털자산 시장이 지급결제와 토큰증권(STO) 등 금융 연계 영역으로 확대되는 만큼 과세 체계의 국제적 정합성을 살펴야 한다는 의견도 나온 것으로 전해졌다.
한편, 현재 국회에는 과세폐지를 담은 송언석 의원안과 시행 유예를 담은 정성국·김상훈·박민규 의원안이 계류돼 있다.
유혜림·경예은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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