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토킹처벌법 시행 5년
[헤럴드경제=김아린 기자] 최근 과잉 접근인 스토킹 범죄가 살인 등 강력범죄로 비화하는 사건이 전국에서 연달아 발생하자 김종철 경찰청장 직무대행은 22일 일선 현장을 찾아 관계성 범죄 대응 상황을 점검했다.
경찰청에 따르면 김종철 경찰청장 직무대행은 이날 오전 서울 마포경찰서를 방문해 관계성 범죄 대응 상황을 점검했다. 김 직무대행은 스토킹 범죄 피해자 보호 현황을 보고받고 긴급 신고용 스마트워치 작동 상태를 확인하는 등 피해자 안전조치 운영 실태를 살폈다.
김 직무대행은 피해자전담·학대예방경찰관 등 현장 경찰관과 간담회에서 “관계성 범죄 피해자들의 생명과 직결된 각종 안전조치가 제대로 작동하도록 세밀하게 살피고 피해자들이 피해의 고통을 홀로 감당하지 않도록 최선을 다해달라”고 강조했다.
김 직무대행의 이날 현장 행보는 이재명 대통령이 관계성 범죄에 대한 엄정 대응을 거듭 주문한 가운데 이뤄졌다.
이 대통령은 전날 서울 서대문구 경찰청에서 열린 경찰의 날 기념행사에서 “최근 벌어진 잇따른 관계성 범죄로 경찰에 대한 신뢰가 흔들리고 국민의 불안이 커진 현실을 무겁게 받아들여야 한다 ”며 “특히 스토킹 등 관계성 범죄에 대해서는 사후 대응에서 사전 예방으로 대전환해 특단의 대책을 마련하고 총력을 다해달라”고 당부했다.
앞서 이 대통령은 지난 13일 청와대에서 주재한 국무회의에서도 “관계성 범죄는 재발 위험이 크고 더 큰 범죄로 이어질 가능성도 높은 만큼 무엇보다 엄정한 초기 대처가 필요하다”며 “피해자가 가해자 때문에 일상을 포기하고 숨어다니는 이 기막힌 현실을 꼭 바꿔야 되겠다”고 말했다.
스토킹 신고에도 끝내 참변
“법 있어도 피해자 못 지켜”
여성폭력 피해자 지원 단체인 한국여성의전화는 이날 오전 서울 종로구 청와대 앞에서 기자회견을 열고 “스토킹처벌법 시행 5년이 됐지만 법이 있어도 신고를 해도 피해자가 목숨까지 잃는 비극적인 사건이 끊임없이 발생하고 있다”며 규탄했다.
지난 12일 새벽 1시38분쯤 제주시 연동에서 60대 남성 강모(61) 씨는 귀가하던 40대 여성을 강제로 차량에 태우려다 그가 저항하자 흉기로 수회 찔러 살해했다. 당시 피해자는 경찰이 지급한 스마트워치를 착용하고 있었다. 강씨는 이후 경찰 조사에서 범행에 앞서 피해자의 손목에서 스마트워치를 뜯어냈다고 진술한 것으로 알려졌다.
첫 신고는 1년여 전이었다. 피해자는 지난해 10월 18일 ‘아는 남자가 집으로 찾아왔다’며 경찰에 신고했다. 출동한 경찰은 강씨를 피해자로부터 분리한 후 상황을 종결했다. 같은 달 25일에도 피해자는 ‘전에 알던 남자로부터 계속 연락이 온다’고 신고했다. 이후에도 피해자는 강씨를 스토킹 등으로 경찰에 신고한 것으로 드러났다. 다만 피해자가 정식 수사 절차를 꺼려해 경찰은 강씨에게 경고 처분을 한 뒤 사건을 진행하지는 않았다.
지난 20일 구속송치된 장모 살해범 김성우(26)도 경찰에 스토킹으로 신고된 상태에서 범행을 저질렀다. 김성우는 지난 11일 서울 송파구에서 자신을 상대로 혼인무효 소송을 제기하고 스토킹 혐의로 신고를 접수한 아내를 강제로 끌고 가려다 이를 제지하던 50대 장모를 흉기로 찔러 살해했다.
지난 15일 전북 전주에서는 70대 남성이 스토킹으로 분리 조치를 받은 후 별거 중이던 60대 여성을 살해한 혐의로 긴급체포됐다. 지난 13일에는 충남 아산의 한 도로변에 세워진 차량 조수석에서 스토킹 피해를 당하던 50대 여성이 숨진 채 발견됐다. 경찰은 운전석에 있던 60대 남성이 여성을 살해한 것으로 보고 검거했다. 숨진 여성은 앞서 이 남성을 스토킹 혐의로 경찰에 두 차례 신고한 바 있다.
한국여성의전화는 “가해자에 대한 제재가 제대로 이루어지지 않아 피해자는 안전을 확보하기 위해 일상을 떠나게 되는 일이 여전한 현실”이라며 “신고한 피해자를 가해자가 오히려 보복성으로 역고소하는 문제도 빈번하게 발생하고 있다”고 지적했다.
경찰은 관계성 범죄 피해자 안전조치를 보다 적극적으로 시행하는 기조다. 경찰청에 따르면 경찰이 최근 5년간 범죄 피해자에게 발급한 스마트워치는 2022년 1만4208건→2023년 1만6690건→2024년 1만7508건→2025년 2만1974건→2026년 9월 1만9223건으로 매년 늘고 있다. 스마트워치를 착용하면 피해자는 위급 상황에서 신속하게 112에 신고할 수 있고 현장음도 자동으로 녹음된다. 경찰관의 재량으로 지급할 수 있다.
하지만 스마트워치를 지급한 이후에도 살인 또는 살인미수로 이어진 사례는 끊이지 않고 있다. 올해에만 지난달까지 스마트워치를 착용한 피해자 3명이 살해됐고 2건의 살인미수도 발생했다. 지난 5년간 연도별로 보면 ▷2025년 살인 5건·살인미수 4건 ▷2024년 살인미수 4건 ▷2023년 살인 1건 ▷2022년 살인 5건·살인미수 3건으로 집계됐다.
성범죄 피해자를 대리해 온 신진희 국선변호사는 “스토킹은 살인 등 극단적인 폭력의 강력한 징조”라며 “혼인·교제와 같은 친밀한 관계에서 일어난다고 해서 수사·사법기관이 가볍게 다뤄서는 안 된다”고 말했다.
예방의 중요성이 강조되고 있지만 경찰이 신고 단계에서 가해자를 물리적으로 분리하는 등 선제적으로 개입하기에는 현실적인 한계가 있다는 목소리도 나온다. 한 경찰 관계자는 “경찰관이 예방적 차원에서 체포 등 강력한 물리력을 행사하면 가해자로부터 법왜곡죄 등으로 고소당할 수 있어 일선에서 판단이 까다로운 측면이 있다”며 “경찰에 선제적인 강제 분리 권한을 부여하는 입법이 뒷받침돼야 한다”고 말했다.
2021년 10월 시행된 스토킹처벌법은 스토킹 범죄를 저지른 사람을 3년 이하의 징역 또는 3000만원 이하의 벌금에 처하도록 규정하고 있다. 2023년 7월에는 반의사불벌죄 조항이 폐지돼 피해자가 처벌을 원하지 않더라도 형사 절차를 진행할 수 있게 됐다.
arin@heraldcorp.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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