직장·지역 이분법 부과 체계로 인한 불형평성 발생
‘소득 있는 곳에 보험료’ 원칙 무색…“소득 중심 부과체계로 전면 개편해야”
[헤럴드경제=이태형 기자] #연봉 4000만원을 받는 직장인 A씨는 주말 단기 아르바이트로 월 100만 원의 부수입을 올리고 있지만 건강보험료는 평소와 다름없다. 월급 외 부수입에 부과되는 ‘보수외 소득월액 보험료’ 공제 문턱(연 2000만원)을 넘지 않아 ‘0원’으로 책정됐기 때문이다. 하지만 최근 보건복지부가 직장인 부수입 공제 한도를 연 1000만원으로 낮추는 방안을 검토 중이라는 소식에 불안감이 커졌다.
#은퇴 후 자녀의 피부양자로 있던 B씨는 현재 실질적인 현금 소득이 없다. 그러나 과거 마련해 둔 공시가격 9억원(재산세 과세표준 5억4000만원) 상당의 아파트 1채 때문에 피부양자 자격에서 박탈됐다. 지역가입자로 전환된 B씨에게는 주택 재산에 따른 보험료가 부과됐고, 장기요양보험료를 포함해 매달 약 21만원의 청구서가 날아들기 시작했다.
매달 국민건강보험공단이 발행하는 건강보험료 고지서는 가입자의 경제적 신분에 따라 전혀 다른 온도를 지닌다. 정기 소득 외에 부수입을 올리는 직장인에게는 관대한 반면, 평생 모은 집 한 채가 전부인 은퇴자에게는 가혹한 청구서가 날아든다. 국민건강보험법이 규정한 직장가입자와 지역가입자의 이분법적 부과 체계가 낳은 모순이다.
이 같은 고지서 격차가 발생하는 것은 현행 건강보험 부과 체계가 가진 세 가지 구조적 맹점에서 비롯된다.
실질 소득 반영의 한계로 직장가입자 ‘보수외 소득’에 대해선 관대한 면죄부를 주고 있다.
현행 건보료 체계는 배당, 이자, 임대, 사업 소득 등 직장가입자의 근로소득 외 부수입에 대해 연 2000만원이라는 높은 공제 문턱을 두고 있다. 이에 따라 N잡러 A 씨처럼 연간 1200만원을 추가로 벌어들여 뚜렷한 ‘지불 능력’이 생긴 가입자조차 추가 재정 기여를 하지 않는 무과세 사각지대에 놓인다.
반면 은퇴층 자산을 겨냥한 징벌적 ‘재산보험료’는 ‘하우스푸어’를 양산하는 구조이다.
지역가입자로 전환되는 순간, 소득 유무와 무관하게 보유 재산에 보험료가 과중하게 매겨진다. 은퇴자 B 씨의 경우처럼 현금이 들어오는 실질 소득이 전혀 없는데도 주택이라는 ‘미실현 이익’의 과세표준을 기준으로 고액의 건보료를 강제 징수당한다. 이는 고령층 은퇴자의 주거 안정을 위협하는 요인이 된다.
소득 파악 시차에 따른 ‘소득 절벽기’의 부담도 가중되는 구조다.
지역가입자의 소득 파악과 반영 정산 시스템에는 시차가 존재한다. 전년도 소득 확정치를 기반으로 보험료를 부과하고 있어 갑작스러운 퇴직이나 폐업 등으로 당장 이번 달 수입이 없는 실직 가입자도 과거 고소득 기준의 보험료를 그대로 감당해야 하는 상황이다.
김수진 한국보건사회연구원 연구위원은 “직장 가입자의 부수입에는 촘촘하게 과세하고, 소득이 없는 은퇴 가입자의 재산 부담은 과감히 덜어내는 부과 체계의 단일화 개혁만이 건보 재정 누수를 막고 국민적 신뢰를 회복하는 유일한 길”이라고 말했다.
이에 정부도 대응책 마련을 추진 중이다.
보건복지부가 추진 중인 부과 체계 개편 방향은 ‘재산 부과 비중을 점진적으로 축소·폐지하고, 모든 소득에 빈틈없이 부과하는 소득 중심 일원화’이다.
직장인 부수입 비과세 문턱을 절반으로 축소하는 방안을 추진하는 것이 대표적이다. 정부는 직장가입자에게만 부여되던 보수외 소득 공제 기준을 현행 연 2000만원에서 연 1000만원으로 축소하는 방안을 추진 중이다. 종합소득 전체에 보험료가 매겨지는 지역가입자와의 형평성을 맞추기 위함이다. 개편안이 적용되면 연 1200만원을 버는 A 씨는 공제액 1000만원을 제외한 200만원이 과표에 추가 잡히며, 현행 요율(7.19%) 기준 매달 약 1만2000원의 건보료를 추가 부담해야 한다.
지역가입자에 대해서는 재산 공제액 확대와 부담 경감을 추진한다. 소득이 없는 지역가입자를 구제하기 위해 기본 재산 공제 금액을 점진적으로 대폭 확대하고 자동차에 매기던 보험료를 폐지·축소하고 있다. 은퇴자 B 씨처럼 재산세 과표 기준에 걸려 억울하게 피부양자에서 탈락하는 계층의 실질 고지서 무게가 줄어들 전망이다.
소득 변동 흐름을 적시에 추적해 반영하는 ‘소득 정산 제도’를 보다 촘촘히 보완해 가입자가 폐업이나 실직 등으로 소득이 줄었을 때 즉각 고지 금액을 조정받을 수 있는 행정 안전장치도 강화할 계획이다.
다만 최근에 정부가 지역가입자를 포함한 직권 정산 방안을 검토 중이라는 일부 보도로 논란이 일자 당국은 진화에 나섰다. 정은경 복지부 장관은 페이스북에 “전 국민 소득정산은 국민 부담 등을 종합적으로 고려해 충분한 논의와 건강보험정책심의위원회 심의, 법령 개정 등 필요한 절차를 거쳐야 추진할 수 있는 사안”이라며 신중한 입장을 밝혔다.
thlee@heraldcorp.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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