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엡스틴 친필 편지’ 보도로 명예훼손 소송

재판부 “‘실제적 악의’ 요건 입증 못했다” 판시

지난해 9월 제이미 래스킨 민주당 하원 의원은 하원 사법위원회 청문회에서 WSJ이 보도한 트럼프의 ‘앱스타인 편지’의 그림을 대형 패널로 만들어 공개했다. [로이터]
지난해 9월 제이미 래스킨 민주당 하원 의원은 하원 사법위원회 청문회에서 WSJ이 보도한 트럼프의 ‘앱스타인 편지’의 그림을 대형 패널로 만들어 공개했다. [로이터]

[헤럴드경제=박지영 기자]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엡스틴 편지’를 보도했던 월스트리트저널(WSJ)을 상대로 낸 100억 달러(13조3000억 원) 규모 손해배상 청구소송이 연방법원에서 재차 기각됐다.

1일 AP통신 등 외신에 따르면 마이애미 소재 플로리다 남부 연방지방법원의 대린 게일스 판사는 지난 31일(현지시간) 해당 소송에 대해 WSJ 등 피고 측에 전부승소 판결을 내렸다.

WSJ는 지난해 트럼프 대통령이 2003년 성범죄자 제프리 엡스틴의 50세 생일을 축하하기 위해 친구들이 만들어준 앨범에 트럼프 대통령의 명의로 된 편지가 포함돼있다는 내용을 보도했다. WSJ 보도에 따르면 편지에는 손으로 그린 나체 여성의 윤곽선 안에 생일 축하 메시지가 적혀 있었고 트럼프의 서명이 있었다.

트럼프 대통령은 즉각 해당 편지가 자신이 쓴 것이 아니라며 WSJ의 보도가 “허위이고 악의적”이라며 명예훼손에 따른 손해배상 소송을 제기했다. 해당 기사를 보도한 WSJ 기자와 모회사 뉴스코퍼레이션, 루퍼트 머독 뉴스코퍼레이션 명예회장, WSJ 발행사 다우존스 등이 대상이다.

판사는 트럼프 대통령이 WSJ를 상대로 명예훼손을 주장하기에는 ‘실제적 악의’(actual malice)를 입증하지 못했다고 기각 이유를 밝혔다.

‘실제적 악의’는 1964년 미국 연방대법원이 ‘뉴욕타임스 대 설리번’ 판례에서 확립한 공직자나 공인에 대한 명예훼손 소송 적용 기준이다. 원고는 언론사가 보도 내용이 허위임을 알면서도 보도했거나 진실 여부를 무모하게 도외시했다는 점을 입증해야만 한다.

게일스 판사는 WSJ가 보도에 앞서 “신중하고 상세하게 조사했다”며 트럼프 대통령 및 다른 관계자들에게 입장을 확인하려 했다는 점을 강조했다. 트럼프 대통령 측은 관련 의혹을 부인한 이상 WSJ가 보도를 중단해야 했다고 주장했지만 역시 받아들이지 않았다.

게일스 판사는 “실질적 악의의 법적 판단 기준에서 요구하는 바가 아니다”라며 “미국 수정헌법 제1조에도 반한다”고 지적했다. 보도 대상이 부인했다는 사실만으로 언론사의 악의가 증명됐다고 볼 수 없다는 취지다.

이번 기각 판결은 ‘재소 금지 조건’(with prejudice)으로 내려졌다. 1심 판결에 대한 항소는 가능하지만 똑같은 사안에 대한 소송을 재차 제기하는 것이 앞으로 불허된다는 뜻이다. 게일스 판사는 지난 4월에도 트럼프가 WSJ 등을 상대로 낸 유사한 소송을 입증 부족을 이유로 기각했다. 당시에는 게일스 판사가 수정 소장을 제출할 기회를 부여했으며, 이에 따라 원고 트럼프 대통령은 5월에 수정 소장을 제출했다. 재소 금지 조건으로 판결을 내리면서 앱스타인 보도에 대한 소송 제기는 어려워졌다.

한편 엡스틴은 2006년에 성매매 관련 혐의로 처음 체포됐고 2008년에 18개월 형을 선고받고 약 13개월을 복역한 후 2009년에 자택 거주 조건으로 석방됐다. 엡스틴은 2019년 7월에 미성년자 성매매 알선 및 공모 등 혐의로 다시 구속됐으며, 같은 해 8월에 구치소 독방에서 숨진 채 발견됐다.


park.jiyeong@heraldcorp.com
Google News Icon
Google News 에서 헤럴드경제 팔로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