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혜자·유인촌·오지명·이계인 등 각계 조문
김혜수, 사흘간 빈소 지키며 유족 곁에
2일 비공개 발인 뒤 여의도성당 장례미사
[헤럴드경제=고승희 기자] “죽으면 다시 만날 텐데 이게 마지막이라 하지 말라. 생각하기에 따라 마지막은 없다.”
MBC 드라마 ‘전원일기’(1980~2002)에서 22년 동안 김 회장의 아내로 살았던 배우 김혜자는 조문 첫날인 지난달 30일 빈소 앞에서 ‘마지막’ 인사는 밀어냈다. 고인을 “너무 그리운 사람”이라 부른 김혜자는 빈소에서 마주친 윤여정과 서로를 부둥켜안고 한참이나 눈물을 흘렸다. ‘영원한 수사반장’이자 ‘국민 아버지’로 불린 배우 최불암(본명 최영한)이 사흘의 조문을 마치고 2일 영면에 든다.
빈소가 차려진 지 사흘째이자 마지막 날인 1일에도 고인의 빈소인 서울 송파구 서울아산병원 장례식장 20호실에는 종일 발길이 이어졌다.
MBC ‘수사반장 1958’(2024)에서 젊은 박영한 형사를 연기한 배우 이제훈은 이날 빈소를 찾아 “최불암 선생님과 함께 연기했던 순간은 제 연기 인생에서 가장 영광스럽고 오래도록 기억에 남을 추억이 될 것”이라고 말했다.
원작 ‘수사반장’에서 박 반장을 연기한 최불암은 이 작품에 특별출연해 마지막 연기를 남겼다. 이제훈은 “선생님의 편안한 웃음과 행복하게 웃는 어린아이 같은 모습이 제게 큰 귀감이 됐다”고 회고했다. 박 반장의 웃음을 닮고 싶어 선배의 얼굴을 오래 들여다봤고, “기대하고 지켜보겠다”는 한마디에 긴장과 고민이 함께 깊어졌다고 했다. 고인이 걸어온 길은 이제훈에게 “가장 큰 길잡이”로 남았다.
최불암은 지난달 29일 밤 서울 강서구의 한 병원에서 입원 치료를 받던 중 세상을 떠났다. 향년 87세. 1939년에 태어났지만 호적에는 1940년생으로 올라 있다. 지난해 3월 허리디스크 수술을 받은 뒤 재활에 힘썼으나 건강이 급격히 나빠졌다. ‘수사반장’의 박 반장과 ‘전원일기’의 김 회장으로 안방의 아버지가 됐고, 2011년부터 지난해 3월까지 14년 동안 KBS 1TV ‘한국인의 밥상’을 이끌며 전국의 밥상과 그 밥상을 차린 사람들의 이야기를 전했다. 제14대 국회의원(전국구)을 지냈고, 1981년 초록우산 어린이재단과 인연을 맺은 뒤 1985년부터 전국후원회장을 맡아 아이들 곁을 지켰다.
“늘 아버지라 불렀다”…‘전원일기’ 가족이 먼저 왔다
지난달 30일 오전 10시 조문이 시작되자마자 빈소에 들어선 발길은 ‘전원일기’의 둘째 아들 용식, 유인촌 전 문화체육관광부 장관이었다. 유 전 장관은 고인을 평소에도 늘 아버지라 부르며 가족처럼 여겨 왔다고 했다. 그러면서 고인이 생전 “행복은 멀리 있지 않다. 네 등 뒤에 있는 창문을 열면 행복이 있을 것”이라고 일러 주던 말처럼 따뜻하게 기억될 것이라고 덧붙였다. 유 전 장관은 1일 다시 빈소를 찾아 두 번째로 고개를 숙였다.
맏며느리 은영 역의 고두심, 극 중 영남과 복길로 만나 실제 부부가 된 남성진·김지영, 임호도 차례로 빈소를 찾았다. 김지영은 고인을 “아버지이자 선생님”이라고 불렀다. 남성진은 “누구에게나 본보기가 되고 따뜻한 마음을 나누셨던 큰 어른으로 기억해 주셨으면 좋겠다”고 전했다.
극 중 김 회장의 딸로 출연한 엄유신은 마지막 날 빈소를 찾았다. 엄유신은 “시간이 많이 흘러도 선생님이 어딘가에 계실 것 같고, 어디 또 다른 드라마에 나오실 것만 같은 느낌”이라며 아직 실감이 나지 않는다고 했다.
‘전원일기’에 단역으로 얼굴을 비췄던 송일국은 초록우산 홍보대사로서 고인의 나눔을 잇겠다고 다짐했다. 송일국은 “40년 넘게 어려운 아이들 곁을 지키신 선생님은 배우의 품격이 삶을 통해 완성된다는 것을 실천으로 보여주셨다”고 기렸다.
60년 벗의 눈물, 사흘 지킨 ‘딸’
고교 시절부터 우정을 이어 온 배우 오지명은 “제일 친한 친구였는데 내가 먼저 죽을 줄 알았는데 이 친구가 먼저”라고 했다. “아주 내가 괜히 미안하다”는 말도 덧붙였다.
“불암이 형님과 평생 같이했다고 봐야 한다”던 배우 이계인은 “절 놓아두고 먼저 가시면 어떻게 하냐”며 끝내 오열했다. 지팡이를 짚고 빈소를 찾은 백일섭은 “금방 죽을 줄 몰랐다. 더 살아야 했다”며 아쉬워했다.
드라마 ‘그대 그리고 나’에서 부자로 호흡을 맞춘 송승헌은 “부족했던 제게 하늘 같은 분이셨다”고 추모했다. ‘고개 숙인 남자’와 ‘영웅시대’에서 함께한 정한용은 “아직 돌아가셨다는 게 믿기지 않는다”고 했다. 이장호 감독은 “국민들 마음속에 잊지 못할 연기자로 남을 것”이라고 내다봤다.
윤여정, 나문희, 김성환, 정준호, 김미숙, 김창숙, 정영숙, 가수 김흥국도 빈소를 다녀갔다. 1일에는 고인과 제14대 국회에서 함께 의정 활동을 한 강부자를 비롯해 이덕화, 윤유선, 초록우산 홍보대사인 가수 앤디, 방송인 임백천·김연주 부부가 조문했다. 드라마 ‘미망’에서 함께한 채시라는 사회관계망서비스(SNS)에 “보여주시는 것만으로도 배움이었다”고 적었다.
김혜수는 사흘 내내 빈소를 지켰다. 1987년 드라마 ‘사모곡’에서 고인의 아내 김민자와 모녀로 만난 인연은 40년 가까이 이어졌다. 김혜수는 장례 첫날인 30일부터 1일까지 조문객을 맞았고, 조문객이 벗어 둔 신발을 가지런히 정리했다. 빈소를 나서는 김민자를 부축하고 목도리를 둘러 주는 모습도 영상에 담겼다.
2021년 ‘한국인의 밥상’ 10주년 특집에 김민자와 함께 출연한 김혜수는 부부를 “엄마 아빠 같은 존재”라고 했다. 고인에게 받은 문자메시지를 모두 간직하고 있다며 “한 편의 시와 같다”고도 했다. 뉴욕행을 앞둔 김혜수에게 고인이 보낸 문자는 이렇게 끝난다. “그럼 다녀와 혜수가 꾼 꿈 얘기 듣자고!”
마지막 길, 아이들 곁을 지나
정·재계 인사들의 발길도 이어졌다. 장례위원을 맡은 이낙연 전 국무총리는 고인이 국민에게 위화감을 주지 않으려 소박한 옷차림을 고집했다는 일화를 전하며 “돌아가신 뒤까지도 ‘최불암은 최불암’이라고 생각했다”고 말했다. 중앙중학교 동창인 김종인 전 국민의힘 비상대책위원장은 오랜 벗을 “굉장히 온화하고 애정이 깊은 성격”으로 기억했다. 1996년 제15대 총선에서 고인과 맞붙었던 김민석 더불어민주당 대표도 빈소를 찾았다. 나경원 국민의힘 의원, 정의선 현대자동차그룹 회장, 이중근 부영그룹 회장, 야구선수 박찬호도 조문했다.
정부는 고인에게 금관문화훈장(1등급)을 추서했고, 최휘영 문화체육관광부 장관이 30일 유족에게 훈장을 전달했다. 이재명 대통령은 X(옛 트위터)에 “좋은 배우가 되려면 자신이 먼저 사람이 돼야 한다”는 고인의 말을 옮기며 애도했다. 고인을 ‘회장님’이라 불러 온 방송인 이홍렬은 “존재 자체만으로도 우리에게 큰 위로가 돼주셨다”고 말했다. 60년을 함께한 ‘수사반장’ 동료 임현식의 작별 인사는 끝이 아니었다. 그는 “형님, 가 계시더라도 건강하게 계셔라. 그래야 우리 후배들이 또 줄줄이 따라 올라가서 건강하게 만나지 않겠냐”고 했다.
1일 오후 2시 30분에는 아내 김민자와 자녀들이 지켜보는 가운데 입관식이 엄수됐다. 수의는 한복 디자이너 박술녀가 지었다. 입관식이 진행되는 동안 조문객들은 잠시 걸음을 멈추고 기다렸다. 같은 날 서울 중구 무교동 초록우산 어린이재단 본부에 마련된 추모 공간에도 시민들이 찾아와 고인을 기렸다.
장례는 초록우산 어린이재단장으로 치러진다. 황영기 초록우산 회장이 장례위원장을 맡았고, 이수성·이낙연 전 국무총리와 홍문종 전 의원 등이 장례위원으로 이름을 올렸다. 발인은 2일 오전 7시 40분 서울아산병원 장례식장에서 유족의 뜻에 따라 비공개로 엄수된다. 이어 오전 9시 서울 영등포구 여의도성당에서 고인에게 세례를 준 염수정 추기경의 집전으로 장례미사가 거행되고, 팝페라 테너 임형주가 ‘아베 마리아’를 불러 고인을 배웅한다.
미사를 마친 운구 행렬은 오전 10시 40분쯤 서울 중구 무교동 초록우산 본부에 들른다. 고인이 생전 “죽으면 재단에 꼭 들러달라”고 당부한 데 따른 것이다. 임직원들이 도열해 영정을 맞고 직원 대표가 추도사를 헌정하며, 본부 1층 추모 공간에서는 장례위원들의 헌화가 이어진다. 재단을 마지막으로 돌아본 영정은 장지인 경기 파주시 동화경모공원으로 향한다.
shee@heraldcorp.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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