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후변동위성 ‘시키사이’ 관측 이미지, 첨단 자카드 직조로 재탄생

도쿄 21_21 DESIGN SIGHT서 19일까지…우주·극지 겨냥 미래 소재도 공개

[헤럴드경제(도쿄)=김세진 기자] 우주에서 바라본 남극의 거대한 빙상과 짙푸른 바다가 한 장의 천 위에 펼쳐졌다. 일본을 대표하는 패션 브랜드 이세이 미야케와 일본 우주항공연구개발기구(JAXA)가 인공위성으로 관측한 지구의 모습을 의류와 미래 소재로 재해석하는 실험에 나섰다.

A-POC ABLE ISSEY MIYAKE는 JAXA와 공동으로 도쿄 미나토구 ‘21_21 DESIGN SIGHT(투원투원 디자인 사이트)’ 갤러리3에서 선보이고 있다.

SIGHT 갤러리3에서 특별전 ‘한 장의 천의 가능성(TYPE-XVII JAXA project by A-POC ABLE ISSEY MIYAKE)’을 열고 있다.

지난달 21일 개막한 이번 전시는 오는 19일까지 이어진다. 과학기술과 패션이라는 서로 다른 영역을 결합해 이세이 미야케가 오랫동안 추구해 온 ‘한 장의 천’이라는 개념을 미래의 의복과 생활환경으로 확장하는 것이 핵심이다.

프로젝트의 출발점은 JAXA의 기후변동관측위성 ‘시키사이(GCOM-C)’다.

시키사이는 사람의 눈으로 볼 수 있는 가시광선뿐 아니라 근자외선부터 열적외선까지 여러 파장의 빛을 이용해 지구를 관측한다. 바다와 육지, 식생, 눈과 얼음 등의 상태와 변화를 지속적으로 살펴 기후변동을 분석하고 예측하는 데 필요한 데이터를 수집한다.

패션 디자이너들이 주목한 것은 이 위성이 촬영한 남극대륙의 모습이었다.

평균 두께가 약 2㎞에 이르는 광대한 빙상과 얼음 사이로 갈라진 균열, 그 틈에서 모습을 드러내는 짙은 남색의 바다가 하나의 추상적인 문양처럼 나타났다. 자연이 만들어낸 남극의 모습을 의복 디자인으로 옮기는 작업이 여기서 시작됐다.

JAXA의 위성사진으로  얼음과 바다가 만들어내는 명암과 농담, 계조를 표현 관측 이미지를 활용한 청바지 [사진 김세진 기자]
JAXA의 위성사진으로 얼음과 바다가 만들어내는 명암과 농담, 계조를 표현 관측 이미지를 활용한 청바지 [사진 김세진 기자]

A-POC ABLE ISSEY MIYAKE는 이 관측 이미지를 고도의 자카드 직조 기술로 구현해 청바지를 제작했다. 단순히 위성사진을 천 위에 인쇄하는 방식이 아니라 직조 조직의 밀도를 변화시키면서 얼음과 바다가 만들어내는 명암과 농담, 계조를 표현했다.

남극의 위성 데이터가 디지털 이미지에서 직물로, 다시 사람이 입을 수 있는 의류로 바뀐 셈이다.

전시는 여기서 한 단계 더 나아간다. JAXA의 관측 이미지를 활용한 청바지를 넘어 미래의 의복과 생활환경에 활용할 수 있는 새로운 직물 구조의 가능성을 제시한다.

특히 종이접기의 기하학과 구조를 연구해 온 도쿄대 다테 도모히로 연구실과 협력해 천 자체에 입체적인 구조를 부여하는 소재 개발을 진행했다.

전시장에는 열을 가하면 천의 특정 부분이 수축하면서 입체적인 형태를 만들어내는 ‘스팀 스트레치(Steam Stretch)’ 기술을 활용한 프로토타입도 공개돼 있다.

한 장의 천이 접히고 수축하면서 스스로 입체적인 형태를 만들도록 설계한 것이 특징이다. 이를 통해 봉제에 대한 의존도를 낮추면서 다양한 형태의 의류를 구성할 수 있는 가능성을 실험했다.

이 같은 연구가 바라보는 곳은 일반적인 패션시장에만 머물지 않는다.

옷뿐 아니라 실내 인테리어 소재와 건축 자재 등 사람의 몸을 둘러싼 공간 전반으로 직물의 역할을 확대하는 방안까지 연구 대상에 포함됐다. 장기적으로는 우주와 극지처럼 인간이 앞으로 활동 영역을 넓혀갈 특수한 환경에서 사용할 수 있는 소재와 구조로 발전시킨다는 구상이다.

우주나 극지에서는 사용할 수 있는 물질과 장비, 공간이 제한적이다. 이 프로젝트는 이 같은 제약을 불편함으로만 보지 않고 새로운 구조와 기능을 만들어내는 ‘창조의 조건’으로 바라봤다.

A-POC은 ‘A Piece of Cloth’, 즉 ‘한 장의 천’을 의미한다. 고(故) 이세이 미야케가 1998년 파리에서 발표한 개념으로, 한 장의 직물에서 옷이 만들어지는 과정 자체를 새롭게 바라보려는 시도에서 출발했다.

2021년 출범한 A-POC ABLE ISSEY MIYAKE는 이 개념을 패션에 한정하지 않고 기술과 과학, 공예 등 다른 분야와 연결하는 프로젝트를 이어가고 있다.

이번 JAXA와의 협업 역시 그 연장선에 있다. 수백㎞ 상공의 인공위성이 바라본 지구의 모습과 인간의 몸에 가장 가까이 닿는 옷을 하나의 프로젝트 안에서 연결했다는 점에서다.

우주에서 포착한 남극의 얼음이 청바지가 되고, 한 장의 천에 대한 연구가 다시 우주와 극지의 생활환경을 향한다.

‘한 장의 천의 가능성’전은 패션 전시를 넘어 지구관측 기술과 디자인이 만났을 때 의복의 역할을 어디까지 넓힐 수 있는지를 보여주는 실험장이 되고 있다.


sjkim@heraldcorp.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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