편집자 주

그림으로 이야기합니다. 그림 속 이슈, 명화에 스민 사연, 예술에 서려 있는 인간의 고민과 욕망을 들여다봅니다. 한 점의 캔버스로 시작해, 액자 밖 세상으로 나아갑니다.

존 에버렛 밀레이, 1746년의 석방 명령(일부 확대), 1852년경, 캔버스에 유채, 102.9x73.7cm, 테이트 브리튼 [Google Arts & Culture, Public Domain, wikimedia.org]
존 에버렛 밀레이, 1746년의 석방 명령(일부 확대), 1852년경, 캔버스에 유채, 102.9x73.7cm, 테이트 브리튼 [Google Arts & Culture, Public Domain, wikimedia.org]

[헤럴드경제=이원율 기자]여인은 웃지 못합니다.

감옥에 갇힌 남편의 석방을 직접 끌어내고서도, 웃음을 지을 수 없습니다. 남편은 그녀 어깨에 얼굴을 파묻었습니다. 그 또한 해방의 미소 아닌, 자책과 후회가 깃든 듯한 표정입니다. 둘은 이제 같이 살 수 있습니다. 아기, 그리고 강아지와 함께 예전 그 시절로 돌아갈 수 있습니다. 하지만 당장 기뻐하는 건, 아무것도 모르는 강아지뿐입니다.

존 에버렛 밀레이, 1746년의 석방 명령, 1852년경, 캔버스에 유채, 102.9x73.7cm, 테이트 브리튼 [Google Arts & Culture, Public Domain, wikimedia.org]
존 에버렛 밀레이, 1746년의 석방 명령, 1852년경, 캔버스에 유채, 102.9x73.7cm, 테이트 브리튼 [Google Arts & Culture, Public Domain, wikimedia.org]

존 에버렛 밀레이의 <1746년의 석방 명령>. 이 그림에는 무슨 사연이 서려 있을까요.

17세기 후반부터 영국에서는 유혈 사태가 이어지고 있었습니다. 한때 국왕이었으나 혁명 기세에 밀려 쫓겨난 제임스 2세(스튜어트 왕조) 진영, 그를 내쫓고 실권을 쥐려고 한 새로운 진영 사이 충돌이 핵심이었습니다.

이 가운데 정치 세력, 일명 ‘자코바이트’는 양측 중 제임스 2세 측에 힘을 실어줬습니다. 자코바이트란 용어 또한 제임스의 라틴어 이름, 야코부스에서 유래한 말이었습니다.

시간이 흘렀습니다. 제임스 2세가 1701년에 사망하자 그의 살아남은 아들 웨일스 공 제임스가, 이어서는 그의 장남 찰스 에드워드 스튜어트에 이르기까지. 왕위 계승권을 찾기 위한 투쟁은 대를 타고 거듭됐습니다. 자코바이트는 또한 이들에게 왕위를 “돌려줘야” 한다는 입장을 고수했습니다. 물론 그 이면에는 나름의 수싸움과 정치적 계산이 있긴 했을 겁니다.

그러다 1745년. 찰스가 스코틀랜드에서 기어코 봉기를 일으켰습니다. 그해 11월, 6000여명 병력을 이끌고 잉글랜드까지 남하(南下)하는 데도 성공했습니다. 하지만 뒷심이 부족했습니다. 그다음 해 찰스와 자코바이트군은 정부군과의 결정적 전투에서 패배했습니다. 군사 행보는 이것으로 사실상 종말을 맞았습니다.

찰스는 도망칠 수 있었지만, 함께 반기를 든 자코바이트군 중 상당수는 그러지 못했습니다.

그림 속 죄수 신세였던 이 남자. 그 또한 체포된 자코바이트군 가운데 한 명이었습니다. 혐의는 반란이었을 겁니다. 어느 시대든, 어느 나라든 중죄로 다스리는 사안입니다.

존 에버렛 밀레이, 1746년의 석방 명령(일부 확대), 1852년경, 캔버스에 유채, 102.9x73.7cm, 테이트 브리튼 [Google Arts & Culture, Public Domain, wikimedia.org]
존 에버렛 밀레이, 1746년의 석방 명령(일부 확대), 1852년경, 캔버스에 유채, 102.9x73.7cm, 테이트 브리튼 [Google Arts & Culture, Public Domain, wikimedia.org]

남편이 옥살이를 하고서 얼마 흐르지 않은 시점.

여인은 그런 남편의 석방 명령서를 구했습니다. 교도관에게 직접 보여줍니다. 간수는 믿기가 어렵다는 양 붙든 채로 읽어봅니다.

그녀는 서민입니다. 차림새를 볼 때도 분명 그렇습니다. 그렇다면 이를 어떻게 받아냈을까요. 테이트 브리튼의 큐레이터 부서에서 근무한 적 있는 미술사학자 프랜시스 파울은 한 가지 추측을 내놓았습니다.

그녀는 이 상황에서 이상할 만큼 감정을 떼어놓은 모습을 보인다.

이는 남편을 구하기 위해 자신의 정조를 희생해야 했을 수도 있음을 암시한다.

여인은 “당신을 구하기 위해 (아마도 고위층일)누군가에게 몸을 희생했다”고 말할 가능성을 언급한 것으로 볼 수 있습니다. 파울에 따르면 그림의 원래 제목은 ‘몸값(The Ransom)’이었습니다. 초기 스케치에는 돈주머니도 그려져 있었다고 합니다. 과거 전시 당시에도 몇몇 사람이 파울과 비슷한 주장을 했다는 설이 전해집니다.

다만, 여기에서 반드시 짚어봐야 할 지점이 있습니다.

화가는 이에 대해 따로 설명하지 않았습니다. 그런 만큼, 여인의 행적을 무작정 한쪽으로 추측하는 일부터가 차별적 시선일 뿐이라는 의견 또한 나오는 이유입니다.

(…) 주제는 쉽다.

아기를 안은 아내가 내전 중 사로잡힌 남편을 위해 석방 명령서를 들고 왔다.

 

기력 없는 남편은 울 수밖에 없다.

‘단호한 의지’를 가진 아내는 눈물을 흘리지 않는다.

(…) 그녀는 지난날의 모든 고초에 대한 보상을 얻었음을 나타내는 눈빛으로 간수를 바라본다.

이는 당시 일러스트레이티드 런던 뉴스(The Illustrated London News)의 평가였습니다.

존 에버렛 밀레이, 1746년의 석방 명령(일부 확대), 1852년경, 캔버스에 유채, 102.9x73.7cm, 테이트 브리튼 [Google Arts & Culture, Public Domain, wikimedia.org]
존 에버렛 밀레이, 1746년의 석방 명령(일부 확대), 1852년경, 캔버스에 유채, 102.9x73.7cm, 테이트 브리튼 [Google Arts & Culture, Public Domain, wikimedia.org]

웃지도, 울지도 않은 채 단호한 표정만 짓는 그녀는 수많은 감정에 사로잡혀 있을 게 분명합니다.

확실한 건, 여인은 강했습니다. 가정을 구했습니다. 남편 또한 그녀가 겪어야 했던 고생을 짚어보고 있을지도 모릅니다. 고마움과 미안함, 죄책감과 절망감에 휩싸인 모습이 나오는 건 이 때문일지도 모를 일입니다. 남편과 머리칼 색이 닮은 아기는 잠든 채 연노랑 앵초를 쥐고 있습니다. 앵초는 여러 뜻 중에서도 청춘, 그리고 젊은 시절을 상징하기도 합니다. 그 꽃잎이 바닥으로 하나둘 떨어지는 모습입니다. 콜리가 다리를 들어올려 부부의 재회를 환영합니다. 얼굴은 사내 아닌 여인을 보는 모습입니다.

화가는 남편 역할로 전문 모델을 고용했습니다. 아내는 훗날 그의 아내가 되는 에피가 나서줬습니다. 여담을 더하자면, 아기를 그리는 데 특히나 애를 먹었다고 합니다. “어찌나 고집이 센지, 내가 원하는 건 무엇도 하지 않으려고 했다.” 화가가 남긴 기록입니다. 전해지는 바에 따르면, 화가는 작품의 정확성을 높이기 위해 실제 석방 명령서를 구하러 다니기도 했다고 합니다.

존 에버렛 밀레이, 1746년의 석방 명령(일부 확대), 1852년경, 캔버스에 유채, 102.9x73.7cm, 테이트 브리튼 [Google Arts & Culture, Public Domain, wikimedia.org]
존 에버렛 밀레이, 1746년의 석방 명령(일부 확대), 1852년경, 캔버스에 유채, 102.9x73.7cm, 테이트 브리튼 [Google Arts & Culture, Public Domain, wikimedia.org]

<1746년의 석방 명령>은 1853년 로열 아카데미 전시회에 내걸렸습니다.

엄청난 인기를 끌어 그림 앞에 경찰관을 둬야 할 정도였다고 하지요. 일러스트레이티드 런던 뉴스는 “(그림이 있는)작은 구석 자리로 아카데미 회원 전체를 합친 양보다 더 많은 찬사자 무리를 끌어모았다”고 보도했습니다.

그녀가 무엇을 견뎌냈는지는 정확히 알 수 없습니다. 앞으로도 영영 그럴 겁니다. 1746년의 석방 명령이 내려진 후 가까운 미래, 그와 그녀 모두 활짝 웃을 수 있었기를 생각할 뿐입니다.

“얘는 내 자식이 아닌데?”…5년만에 온 남편, 낯선 아이 앞서 굳어버렸다[화담:畵談]

“얘는 내 자식이 아닌데?”…5년만에 온 남편, 낯선 아이 앞서 굳어버렸다[화담:畵談]

그림으로 이야기합니다. 그림 속 이슈, 명화에 스민 사연, 예술에 서려 있는 인간의 고민과 욕망을 들여다봅니다. 한 점의 캔버스로 시작해, 액자 밖 세상으로 나아갑니다.
https://biz.heraldcorp.com/article/10924389

yul@heraldcorp.com
Google News Icon
Google News 에서 헤럴드경제 팔로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