종묘제례로 시작된 유산의 역사

민족 정체성 담아낸 서정적 민요

풍자와 해학으로 푼 예술 세계 등

서울 인사동에서 판매하는 한지 [한국관광공사 제공]
서울 인사동에서 판매하는 한지 [한국관광공사 제공]

[헤럴드경제=김명상 기자] 천 년의 역사를 이어온 한국의 전통 제지 기술이자 문화인 ‘한지제작의 전통지식과 기술 및 문화적 실천’이 조만간 유네스코 인류무형문화유산에 등재될 전망이다.

국가유산청은 유네스코 평가기구가 한국 정부가 신청한 ‘한지제작의 전통지식과 기술 및 문화적 실천’에 대해 ‘등재 권고’ 판정을 내렸다고 5일 밝혔다. 최종 등재 여부는 오는 30일부터 내달 5일까지 중국 샤먼에서 열리는 제21차 유네스코 무형유산보호협약 정부간위원회에서 결정된다. 확정 시 한국은 총 24건의 유네스코 인류무형문화유산을 보유하게 된다.

지금까지 유네스코 인류무형문화유산에 등재된 목록을 살펴보면, 궁중 의례와 지식층의 예술에서 출발해 민중 놀이와 생활 관습, 나아가 식문화와 전통 공예 기술까지 그 지평을 넓혀왔다. 국가 주도의 의례나 특수 계층의 예술을 넘어, 민중의 삶과 맞닿은 일상 기술 및 공동체 문화 전반으로 유산의 외연이 확장되는 모습이다.

종묘제례악서 김장·한지까지…24건에 담긴 민족의 삶과 연대

종묘 [한국관광공사 제공]
종묘 [한국관광공사 제공]

한국의 유네스코 인류무형문화유산 등재 역사는 국가적 상징성을 지닌 궁중 의례와 전통 공연예술에서 출발했다. 2001년 첫 번째로 이름을 올린 ‘종묘제례 및 종묘제례악’은 조선 왕실이 역대 왕과 왕비에게 올리던 제사 의례로, 음악과 무용이 어우러진 종합 예술로서 500년 넘게 이어져 온 가치를 인정받았다.

이어 2003년 ‘판소리’는 소리꾼이 창과 아니리, 발림으로 긴 서사를 풀어내고 고수가 북장단과 추임새로 호흡을 맞추는 독창적인 구비 서사 음악으로, 2005년 ‘강릉단오제’는 대관령 산신 신앙과 관노가면극 등 민속 행사가 어우러진 공동체 축제의 전형으로 세계적 가치를 인정받았다. 이 세 종목은 당시 ‘인류구전 및 무형유산 걸작’으로 선정된 뒤 2008년 대표 목록에 통합됐다.

김치 [한국관광공사 제공]
김치 [한국관광공사 제공]

2009년을 기점으로 등재 대상은 특정 예능 보유자 중심의 예술에서 민중의 일상과 맞닿은 생활문화 및 공동체 관습으로 영역을 확장했다. 2009년 강강술래·남사당놀이·영산재·제주칠머리당영등굿·처용무 5건이 한꺼번에 이름을 올렸고, 2010년 가곡·대목장·매사냥, 2011년 택견·줄타기·한산모시짜기가 뒤를 이으며 놀이와 무예, 장인 기술까지 범위가 넓어졌다.

2012년 등재된 ‘아리랑, 한국의 서정민요’는 지역별로 다양하게 변주되며 한민족의 정서와 문화적 정체성을 결속하는 매개로서 사회적 기능을 공인받았다. 2013년 ‘김장, 김치를 담그고 나누는 문화’는 겨울을 앞두고 이웃이 함께 김치를 담그고 나누는 연대의 정신이 인류의 문화 다양성에 기여한다는 평가를 받았다. 이후 2014년 ‘농악’, 2015년 ‘줄다리기’가 등재됐고, 2016년 ‘제주해녀문화’는 산소 공급 장비 없이 물질하는 친환경 어로 방식과 여성 공동체의 자율적 규약, 바다 생태계와 공존하는 삶의 양식으로 주목받았다.

‘한국의 장 담그기 문화’에서 발효와 숙성을 유도하는 장독대 [한국관광공사 제공]
‘한국의 장 담그기 문화’에서 발효와 숙성을 유도하는 장독대 [한국관광공사 제공]

무형유산은 평화와 연대의 상징으로도 의미를 넓혔다. 2018년 ‘씨름, 한국의 전통 레슬링’은 사상 최초로 남북이 공동 등재를 이뤄 민족 동질성과 화합을 상징하는 유산으로 기록됐다. 이어 2020년에는 ‘연등회’가, 2022년에는 계층 간 갈등과 사회적 부조리를 풍자와 해학으로 다룬 ‘한국의 탈춤’이 등재됐다. 가장 최근인 2024년 등재된 ‘한국의 장 담그기 문화’는 재료 준비부터 발효·숙성, 보관과 소비에 이르는 전통 지식 체계이자 가족과 이웃의 결속을 다지는 식문화로 인정받았다.

이번 24번째 ‘한지 제작의 전통 지식과 기술 및 문화적 실천’ 등재가 확정되면, 한국의 유네스코 인류무형문화유산의 범위는 전통 종이를 만들어 온 장인의 기술과 자연 원료에 관한 지식, 공동체의 협력 체계 등으로 넓어진다. 특히 고문헌과 기록물을 오늘날까지 전해온 한지 제작 전통을 조명한다는 점에서, 유형유산의 보존을 떠받쳐 온 무형의 기술과 지식이 함께 주목받을 것으로 기대된다.


terry@heraldcorp.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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