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년연장 땐 기존 임금체계 적용

재고용은 임금·직무 재설정

기업 부담, 청년고용...사회적 타협 관건

65세 법정 정년연장 연내 입법 쟁취 집회를 하는 모습 [뉴시스]
65세 법정 정년연장 연내 입법 쟁취 집회를 하는 모습 [뉴시스]

[헤럴드경제=김용훈 기자]정년이 65세로 늘어나더라도 임금까지 기존 수준으로 보장되는 것은 아니다. 법정 정년을 연장해 기존 근로관계를 유지하는지, 60세 정년 이후 새로 재고용 계약을 맺는지에 따라 임금 결정 방식이 달라지기 때문이다. 실제 재고용 기업 3곳 중 1곳은 퇴직 전보다 월급을 낮췄고, 삭감 폭은 평균 20%를 웃돌았다. 정년연장 논의가 다시 본격화하면서 고용기간을 5년 늘리는 것 못지않게 그 기간의 임금과 근로조건을 어떻게 설계할지가 핵심 쟁점으로 떠오르고 있다.

한국경영자총협회가 올해 3~4월 재고용을 운영 중이거나 검토하는 기업 500곳을 조사한 결과 재고용 이후 월급을 줄였다는 기업은 34.2%로 나타났다. 임금을 삭감한 기업의 평균 감액률은 20.6%에 달했다. 월급을 기존 수준으로 유지한 기업은 59%, 오히려 올린 기업은 6.8%였다. 정년 이후 재고용이 이뤄지더라도 기존 임금이 유지된다고 보기 어렵다는 의미다.

반면 법정 정년이 연장되면 기존 근로관계가 이어지는 만큼 원칙적으로 기존 임금체계와 단체협약의 적용을 받는다. 다만 연공급 임금체계와 고령 인력의 인건비 부담을 둘러싼 기업의 우려가 커질 수 있어 임금체계 개편이 함께 논의될 가능성이 크다. 결국 정년연장 방식은 근로자의 소득 수준뿐 아니라 기업의 인건비 부담과 고령자 고용 여력에도 영향을 미친다. 재고용이 고용기간을 늘리는 대안이 될 수는 있지만, 퇴직 전 임금까지 보장하는 것은 아니라는 의미다.

더불어민주당이 정년연장특위를 재가동하면서 임금과 근로조건을 둘러싼 논의도 다시 속도를 낼 전망이다. 김민석 민주당 대표는 3일 한국노동조합총연맹(한국노총) 찾아 지난해 정기국회 입법을 약속한 법정 정년연장과 관련해 “결실을 맺고 있지 못한 상황”이라며 “현재까지 저희의 고민과 진전 부분을 함께 나누겠다”고 밝혔다. 민주당은 연내 처리를 추진하되 내년 초로 넘어갈 가능성도 열어뒀다.

민주당 특위가 지난 6월 검토한 초안은 재고용 의무를 먼저 도입한 뒤 법정 정년을 단계적으로 연장하는 방식이다. 2028년 퇴직자부터 재고용 의무를 적용하고, 2029년부터 법정 정년을 단계적으로 높여 2037년 65세에 도달하도록 하는 구조다. 이 안대로라면 법정 정년이 처음 늘어나는 세대는 1969년생이다. 1968년생은 2028년 60세가 돼 재고용 의무 적용 대상이 될 수 있지만, 2027년 시행 전에 퇴직하는 1967년생을 경과조치(법 시행 전후의 제도 공백을 줄이기 위해 기존 퇴직자에게도 새 제도를 적용하는 예외 규정)에 포함할지는 별도 쟁점이다. 다만 이는 특위가 검토한 초안으로, 정부안으로 확정된 것은 아니다. 구체적인 시행 일정과 재고용 의무의 적용 범위도 정해지지 않았다.

정년연장하면 기존 임금체계 적용…재고용은 새 계약

법정 정년을 연장하면 기존 근로관계가 이어진다. 원칙적으로 회사의 임금체계와 단체협약이 적용되기 때문에 기존 직급과 호봉에 따른 임금 수준을 유지할 가능성이 크다. 다만 임금피크제를 적용하는 사업장에서는 감액 시점과 폭에 따라 실제 받는 월급이 달라진다. 정년이 늘어난 기간에 기존 임금표를 그대로 적용할지, 임금 조정 장치를 둘지는 노사 간 협의에 달려 있다.

반면 재고용은 기존 근로관계가 끝난 뒤 새로운 계약을 맺는 방식이다. 회사는 재고용 과정에서 임금과 근로시간, 직무 등을 다시 정할 수 있다. 기존 업무를 이어갈 수도 있지만 관리직에서 물러나 숙련 전수나 품질관리 업무를 맡는 식으로 직무가 바뀔 수도 있다. 퇴직 전 임금 수준을 그대로 유지해야 할 의무가 있는 것은 아니다.

실제 재고용 기업의 임금 조정은 적지 않다. 경총 조사에서 재고용 뒤 월급을 줄인 기업 비중은 300~999인 기업에서 51.9%, 1000인 이상 기업에서 52.6%로 절반을 넘었다. 임금을 삭감한 기업의 평균 감액률은 노조가 있는 곳에서 26.2%, 노조가 없는 곳에서 17.7%였다. 경총의 지난해 조사에서는 기업의 절반가량인 50.8%가 재고용자의 적정 임금을 퇴직 전의 70~80% 수준이라고 답했다.

재고용 과정에서 임금이 줄어드는 이유는 단순히 근로시간이나 업무가 줄어들기 때문만은 아니다. 한국노동연구원이 제조업과 도소매업 등 6개 업종의 재고용 사업체 451곳을 조사한 결과, 재고용자의 90.2%는 퇴직 전과 같은 일을 맡았다. 노세리 한국노동연구원 선임연구위원은 일부 사업체에서 직무와 근로시간이 유지되는데도 임금이 삭감됐다고 설명했다. 같은 일을 하더라도 퇴직 후 새 계약을 맺는 과정에서 임금이 낮아질 수 있다는 얘기다.

호봉제 유지하면 기업 부담…임금체계 개편이 난제

정년연장 논의에서 임금체계 개편이 빠지지 않는 이유도 여기에 있다. 근속연수가 길수록 임금이 오르는 연공급·호봉제 구조에서 정년만 늘리면 고령 근로자의 높은 임금을 지급하는 기간도 길어진다. 기업 입장에서는 인건비 부담이 커지고 신규 채용 여력이 줄어들 수 있다는 우려가 나온다.

고용노동부의 ‘2025년 임금체계 현황’에 따르면 호봉제를 운영하는 사업체는 13.1%로 2016년 21.7%보다 줄었다. 하지만 직무와 성과에 따라 임금을 정하는 체계가 충분히 확산한 것도 아니다. 300인 이상 사업체 가운데 직무급을 도입한 곳은 31.9%에 그쳤다. 기존 호봉제를 대체할 임금체계가 자리 잡지 않은 상황에서 정년만 연장하면 기업의 부담이 커질 수 있다는 것이 경영계의 주장이다.

경총이 지난해 8월 실시한 조사에서도 기업들이 60세 이후 고용 방식으로 재고용을 선호하는 이유가 드러난다. 재고용을 선택하겠다는 기업은 61.0%로 정년연장을 선택한 기업 32.7%보다 많았다. 재고용은 퇴직 이후 임금과 직무를 새로 정할 수 있어 기업이 인건비와 인력 운용을 조정하기 쉽기 때문이다.

노동계는 정년연장이 기존 근로관계를 유지하는 제도인 만큼 임금과 근로조건도 함께 보장돼야 한다는 입장이다. 반면 경영계는 연공급 임금체계를 그대로 둔 채 정년만 늘리면 기업 부담이 커지는 만큼 임금 조정이 병행돼야 한다고 맞선다. 정년연장과 임금체계 개편을 어떤 방식으로 결합할지가 노사 간 핵심 쟁점으로 떠오른 배경이다. 정년을 늘리는 데는 공감하더라도 연장된 기간의 임금을 어떻게 정할지를 두고 노사 간 입장이 엇갈리는 것이다.

민주당 정년연장특별위원회가 지난 6월 검토한 초안에도 임금체계 개편을 위한 장치가 담겼다. 정년연장 대상자의 근로시간을 조정하고 이에 맞춰 임금체계를 바꿀 수 있도록 한시적인 취업규칙 특례를 두는 방안이다. 민주노총은 노동자 동의 없이 임금과 근로조건을 후퇴시키는 수단으로 악용될 수 있다며 반발했다. 임금 조정을 허용하더라도 적용 대상과 기간, 노사 협의 절차를 어떻게 정할지가 관건이다.

다만 이 초안이 정부안으로 확정된 것은 아니다. 정부가 공개한 정책 방향은 법정 정년의 단계적 연장이지만, 재고용 의무를 먼저 도입할지와 구체적인 일정, 임금 조정 방식은 아직 정해지지 않았다. 김영훈 고용노동부 장관은 지난달 13일 국정감사에서 논의가 숙성되고 결단만 남았다고 판단되면 정부안을 조속히 밝히겠다고 말했다.

월급 500만원 직장인, 재고용 땐 397만원으로 줄 수도

정년 직전 월급이 500만원인 직장인을 가정하면 고용 방식에 따른 차이를 가늠할 수 있다. 법정 정년이 연장되고 기존 임금체계가 유지된다면 월급은 원칙적으로 500만원 수준을 이어갈 수 있다. 물론 임금피크제나 노사 합의에 따른 임금 조정이 있다면 실제 수령액은 달라진다.

반면 퇴직 후 재고용되면서 임금이 삭감된다면 상황이 달라진다. 경총 조사에서 임금을 줄인 기업의 평균 감액률 20.6%를 적용하면 월급은 500만원에서 약 397만원으로 낮아진다. 노조가 있는 기업의 감액률인 26.2%를 적용하면 약 369만원이다. 기업들이 적정하다고 본 퇴직 전 임금의 70~80%를 적용하면 월급은 350만~400만원 수준이다.

이는 임금을 삭감한 기업의 평균 감액률을 가상의 월급에 단순 적용한 예시다. 재고용 노동자 전체의 평균 임금이나 실제 지급액을 의미하지는 않는다. 실제 임금은 기업의 임금체계와 재고용 계약, 직무와 근로시간에 따라 달라진다. 정년연장 기간에 기존 호봉표가 유지되는지, 임금피크제가 적용되는지에 따라서도 차이가 난다. 같은 500만원을 받던 직장인이라도 기존 근로관계를 이어가는지, 퇴직 후 새 계약을 맺는지에 따라 소득이 달라질 수 있다.

정년연장의 효과를 고용기간만으로 판단하기 어려운 이유다. 법정 정년을 연장하더라도 임금체계가 바뀌면 월급이 줄 수 있고, 재고용으로 고용기간을 확보하더라도 새 계약에서 임금과 근로조건이 낮아질 수 있다. 정년을 65세로 늘리는 입법과 함께 임금 조정의 기준과 노사 협의 절차, 재고용자의 처우를 어디까지 보장할지 구체적으로 정해야 한다.

다만 정년연장의 혜택이 모든 고령층 노동자에게 돌아가는 것은 아니다. 국가데이터처의 올해 5월 고령층 부가조사에서 55~64세 고용률은 71.5%였지만, 가장 오래 근무한 일자리에서 여전히 일하는 사람은 30.5%에 그쳤다. 해당 일자리를 그만둔 평균 나이는 53.0세였다. 법정 정년 60세에 도달하기 전 주된 일자리에서 퇴직하는 사람이 적지 않은 만큼, 정년연장과 함께 조기 퇴직자의 재취업 지원도 필요하다.

기업 부담에 청년고용까지…정년연장 사회적 타협 관건

한국경제인협회는 정년을 65세로 연장하면 기업의 추가 고용비용이 연간 30조2000억원에 이를 것으로 추산했다. 25~29세 청년 약 90만명을 신규 채용할 수 있는 규모다. 지난 9월 15~29세 취업자는 전년 동월보다 14만7000명 줄어 47개월 연속 감소했고, 청년 고용률은 44.0%로 1.1%포인트 하락했다.

2016년 60세 정년 의무화 이후에도 고령층 일자리는 늘고 청년 일자리는 줄었다. 한국개발연구원(KDI)에 따르면 정년 연장으로 고령자 고용이 1명 늘 때 청년 고용은 10~999명 사업체에서 0.2명, 1000명 이상 사업체에서 1명 감소했다. 다만 영향은 대규모 사업체와 종전 정년이 낮았던 사업체에 집중됐다.

정년연장이 청년 채용 감소로 이어지지 않도록 보완책을 마련하는 것도 과제다. 양대 노총은 지난달 29일 민주당에 연내 입법을 촉구하며 중소기업 지원과 청년고용 확대 대책을 요구했다. 정부도 일정 요건을 갖춘 중소·중견기업에 계속고용장려금을 지급하고 있다.

정년연장은 퇴직과 연금 수급 사이의 소득 공백을 줄이는 문제이기도 하다. 프랑스는 2023년 공적연금 수급 개시 연령을 62세에서 64세로 높이는 개혁을 추진하면서 대규모 파업과 시위를 겪었다.

김윤태 고려대 사회학과 교수는 “한국은 OECD 평균 수준으로 공적연금 소득대체율을 점진적으로 높여 노인 빈곤율을 낮춰야 한다”며 “동시에 정년연장이 청년 고용 축소로 이어지지 않도록 노사정과 세대 간 상생을 위한 사회적 타협안을 마련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프랑스 파리에서 연금 개혁 반대 시위대가 행진하고 있다. 프랑스 헌법위원회가 에마뉘엘 마크롱 대통령이 추진한 연금 개혁안의 핵심 내용인 정년을 64세로 연장하는 조항을 합헌으로 인정했고 야당과 노동단체는 즉각 반발했다. [파리=AP/뉴시스]
프랑스 파리에서 연금 개혁 반대 시위대가 행진하고 있다. 프랑스 헌법위원회가 에마뉘엘 마크롱 대통령이 추진한 연금 개혁안의 핵심 내용인 정년을 64세로 연장하는 조항을 합헌으로 인정했고 야당과 노동단체는 즉각 반발했다. [파리=AP/뉴시스]

fact0514@heraldcorp.com